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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yell Dec 04. 2024

[prologue] 뜨거운 태양

에그타르트 - 먹어도 됨

솔은 짜증과 체념 사이의 표정을 한 채 눈을 감았다. 자신과 같은 표정을 한 다른 이들을 눈앞에서나마 치워버리고 싶었다.


"현재 차량 내 냉방장치를 최대로 가동하고 있습니다."

제발 진정해 달라는 듯 차장이 5분에 한번 꼴로 방송을 내보냈지만, 퇴근길의 폭도들은 여전히 화가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로가 지난 9월이지만 아직도 무더위가 가시질 않았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하철 안도 시원해질 생각을 않는다.


"내릴게요."

마지막 남은 인내심을 쥐어 짜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솔의 앞에 서 있던 앳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겨우 공간을 내어 준다. 그렇게 둑이 무너지듯 사람들과 함께 쏟아 나온 플랫폼은 지하철 보다 더 후덥지근다. 


이런 날 태양 아래에서 버스를 기다려야 하다니, 솔은 한숨을 푹하고 내쉬었다.

'가자마자 샤워부터 해야겠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여전히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퇴근 계획을 세다.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짜증이 오후 6시에도 뜨거운 해 때문인지 하루의 피곤 때문인지 솔도 알기를 포기한 모양이다. 어쩌면 온몸을 휘감는, 땀에 젖은 옷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에어컨을 틀고는 옷가지를 벗어 세탁바구니 위로 던졌다.


'빨래가 왜 해도 해도 줄어들 생각을 안 하냐'

산더미 같은 빨래를 보고 또 한번 한숨을 내쉰다.

아무래도 솔은 잘 모르는 듯 하지만 이건 솔의 탓도 있다.


솔의 회사는 나름 사내문화가 괜찮은 편이라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솔은 긴바지만을 고집한다.

그 덕에 더운 날이면 꼬박꼬박 하루에 한 장씩 땀에 찌든 슬랙스가 빨래통에 쌓이는 것이다.


그래도 샤워를 하고 에어컨 아래로 나오니 기분이 누그러지는 모양이다. 느릿느릿 손을 움직여 짜파게티 끓이고 위에 계란프라이를 올렸다. 단백질이 좀 부족하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솔은 뭘 더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입이 좀 심심한데...'

결국 짜파게티와 프라이로 저녁을 때운 솔은 냉장고 문을 열고 눈으로 속을 훑는다. 곧 그 안에서 작은 종이가 붙은 금박 컵을 발견하고는 얼른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안에 든 걸 망설임도 없이 몇 베어 물더니 풀린 눈으로 열심히 씹어 삼켰다.


"아 이제 좀 살겠다."

웬일인지 소리 내 혼잣말을 입 밖으로 뱉은 솔은 좀 전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무심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옅은 미소를 띠며 소파에 기대앉아있다. 금박 컵에서 떼어낸 종이에는 손으로 휘갈겨 쓴 짧은 글이 적혀 있다.


「에그타르트(맑) - 먹어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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