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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yell Dec 03. 2024

[prologue] 스타작가의 인터뷰

급할 때는 타임랩스를 켜라

'이건 사실 공원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다가 깨달은 사실일 뿐이에요. 하하.'

'어우, 별이 작가님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남다르시네요.'

상상 속의 진행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아녜요, 아녜요.'라고 말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다 이내 그만두고는 장면을 되감기 한다. 다시 멈춘 곳은 인터뷰의 중간 장면쯤 되는 모양이었다.


'요즘 디지털 디톡스다, 뭐다, 하면서 거창한 것들을 하시는 모양인데, 그럴 필요가 없어요. 핸드폰을 멀리하고 싶다면 공원에 누워서 구름을 찍어보세요!'

말소리는 마음속으로만 뱉었지만, 부산스러운 손이며 의기양양한 표정은 미처 숨기지 못했다.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다른 아파트 주민이 뒤따라 타자, 그제서야 조금 부끄러운 듯 두 손을 멈췄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문득 아까 찍은 영상이 생각나 갤러리를 열었다.


파란색 하늘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나뭇잎과 구름이 찍혀있다. 빨리 감기라도 한 듯 화면에는 구름이 흩어졌다 다시 피어나기를 반복하고 그 아래로 작은 사람들이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




있지도 않은 진행자와 인터뷰를 하는 상상은 별이의 오랜 습관이자 취미생활이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생각하-게 된 날이면 취미생활에 불이 붙는다. 역시 있지도 않은 방청객에게 깨달은 바를 조리 있게 전달하기 위해 대사를 고치고 또 고친다.


대사를 고치는 노력에 비하면 그 깨달음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사소한 것인데,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세상을 살아갈 때는 일정량 이상의 설렘이 필요하다.' 라든가 '잠깐 반짝이는 감정은 글로 적어두어야 오래 간직된다.' 같은 것들. 깨달았다고 해서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거니와 모른다고 해도 전혀 문제없는 것들.


이런 사소한 것을 알게 되면 별이는 누군가를 붙들고서라도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돗자리를 펴고 누워있는 게 저의 낙이에요. 사람이 적은 평일 낮이면 들리는 건 새소리와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 밖에는 없어요.'

상상 속의 인터뷰는 다시 처음 대답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제가 최근에는 공원까지 찾아가서도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더라구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으면서도 잘 고쳐지지가 않더라구요.'

방청객들이 공감의 끄덕임을 보내왔다.


'어쩔 수 없지 하고 있었는데, 오늘 구름이 너무 예쁜 거 있죠? 그래서 구름사냥을 나서기로 했어요. 네? 아 구름사냥은 구름 영상을 찍는 걸 말해요. 특히 타임랩스로 찍는 거죠.'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면서도 이 비밀스러운 취미생활은 끝날 생각을 않는다.


'타임랩스로 구름을 찍으려면 30분 정도는 핸드폰을 가만히 둬야 해요. 유튜브도 웹툰도 못 보죠. 그럼 자연스럽게 디지털 디톡스가 되는 거예요!'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느라 끈적해진 손을 씻으며 대답을 이어간다.


'특히 좋은 점은 구름 영상을 더 길게 찍고 싶은 욕심에, 자연스럽게 더 오랫동안 핸드폰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드디어 질문 1에 대한 답변이 끝났다.


이렇게 사소하면서도 긴 인터뷰를 누가 들어나줄까 싶은데 상상 속의 방청객과 진행자는 인내심이 상당한 모양이다.


드디어 만족스러답변을 완성시켰는지, 질문이 하나뿐인 인터뷰는 끝이 났다. 홀가분해진 별이는 그대로 거실 소파에 누웠다. 옷에서는 공원에서 묻혀온 흙내가 풍긴다. 


현실의 회사원 별이는 오늘 연차를 쓴 덕에 오랜만에 평일 낮을 느긋하게 보냈다. 조금 이따가는 수영복을 챙겨서 운동을 갈 참이다. 내일은 다시 지겨운 회사로 출근을 해야 하지만 일단은 조금 졸리다. 자신의 깨달음을 조리 있게 전달하느라 머리를 너무 많이 쓴 탓일까. 아직은 더운 늦여름 날 그렇게 소파에서 까무룩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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