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개념 분노 조절법

7 염병 레몬타르트

by rabyell

하이볼이나 화요토닉을 마실 때 빠질 수 없는 게 레몬입니다. 그렇지만 생으로 까먹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죠. (물론 저에게는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저희 엄마는 생으로 까서 드십니다.) 하나씩 사다 쓰면 참 좋은데, 요즘 마트에서는 봉으로 더 자주 만나는 거 같습니다. 덕분에 레몬이 잔뜩입니다.


레몬청을 만들면 다 쓰기에는 좋지만 영 먹어지질 않더라고요. 안 그래도 작년에 만든 레몬청이 아직 냉장고에 있어요.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어요.


seedless lemon. 씨가 없으니 쓰기 좋아요.


레몬으로 타르트를 굽기로 했습니다.


어렸을 때 실패한 기억이 강렬해서, 언젠가는 성공해보고 싶었거든요.


참고한 책은 『Bake It Better: 70 Show-Stopping Recipes to Level Up Your Baking Skills』- Matt Adlard (Author)입니다. 영국인 인플루언서가 쓴 책이라, 아마존에만 파는가 보더라고요. 양장본의 풀컬러 요리책을 참을 수 없는 병에 걸린 저는 1년 전쯤 사두었습니다. 허허.


우선 타르트지를 먼저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둡니다.



스탠드 믹서는 참 좋지만 재료의 양이 적으면 오히려 시간이 더 오래 걸려요. 그 적당한 양의 기준도 찾게 되겠죠.


이제는 필링에 들어갈 레몬즙과 제스트를 수확할 차례입니다. 레몬즙이 350g이나 필요했는데, 덕분에 손목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손목: 살려줘어...

그런데 웬걸, 제가 레시피를 잘못 봤지 뭐예요? 레몬 2개만 짜면 되는걸 6개째 짜는 와중에 알아차렸습니다. 허허... 갑자기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만든 필링을 냉장고에 박아둔 뒤 분노의 설거지를 했습니다. 누굴 탓하겠어요.




다음날에야 정신을 조금 차리고 다시 타르트를 굽는 중이에요.



타르트 쉘의 모습을 보면 아시겠지만, 아직 오븐이랑 안 친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광파오븐을 샀어야 했는데, 무슨 자신감에 컨벡션 오븐을 샀을까요? 과거의 저를 만난다면 뒤통수 한 대만 치겠습니다.


만들어 둔 필링은 거품을 걷어내고 틀에 부으라는데, 거품이 어디서 이렇게 계속 나오는지 원. 그냥 다 때려칠까 하는 걸 몇 번이나 참았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흘려버리면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데요. 그럴 때마다 '어이구 염-병 한다. 진짜.'라고 외치면 조금 괜찮아집니다. 참고로 레몬타르트는 7 염병정도였습니다.



오븐에 들어간 모습은 마치 잠든 아기를 보는 거 같아요. 그때만큼은 예뻐 보이거든요. 근데 꺼내면 잠투정 부리는 아기가 되어버려요. 제가 미처 걷어내지 못한 거품들이 모습을 드러내거든요.


버글거리는 거품은 크림으로 덮기로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레시피와 관계없이 제 맘대로인데요. 저는 바질향의 크림을 만들기로 했어요. 레몬과 향이 잘 어울리기도 하고, 레몬 잎과 비슷한 느낌이라 꾸미기에도 좋아 보였으니까요.



근데 만약 여러분이 이 레시피를 따라 하고 싶으시다면, 꼭 바질을 담갔다가 빼고 휘핑하세요. 안 그러면 온 주방이 생크림 파티를 열게 되니까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어요...


또 그렇게 3 염병 정도 외친 다음에야 타르트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크림으로 가리니 그럴싸해 보이지 않나요? 이건 동생네 회사 사람들 몫입니다.


아 스포 한 거랑 좀 다르다고요? 실망하지 마셔요. 원래 선물용은 그럴싸한 걸로만 싸는 법입니다. 여러분이 보셨던 것도 있어요.


실망하긴 이르다구!


제 뱃속에 들어갈 녀석들은 항상 이런 모습이에요. 그래도 처참한 놈들도 크림 좀 올리고 바질로 꾸며주니까 봐줄 만하죠? 그렇다고 해주세요. 애들 들으니까요.


참, 제 손목을 박살 낸 레몬즙으로는 또 다른 걸 만들었습니다. 사진 곳곳에 스포를 남겨 뒀으니, 궁금하시다면 찾아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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