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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Jun 11. 2020

월남 일기 3


2020 04 19


   맥북에 저장되어 있던 ‘글'파일을 옮기면서 2년 전에 썼던 일기같은 글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까맣게 잊을 만큼 시간이 많이 흐른 것도 아닌데, 새삼 그 2년 전의 일들이 너무 새롭게 느껴졌다. 내가 저런 감정을 느꼈었구나. 다행히 나는 생생한 기록을 남긴 듯 했다. 새로운 일상에 밀려 저 밑바닥에 깔려 있던 기억들이 소름처럼 되살아 났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기록은 누가 뭐래도 소중한 것이므로. 최근 일 년 정도 노트에 펜으로 남겨 놓은 일기들도 이 곳으로 옮겨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긴 작업이 예상 되어 엄두도 못 내고 있지만. 


   어제 시놉시스를 하나 만들었다. 단편은 아니고 다분히 중편 정도는 될 양이다. 친구에게 들려 주었는데,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써 보고 싶은 얘기를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재미있게 쓸 수만 있다면 좋겠다. 멋 부리지 않고, 잘 읽히게. 진부하지 않게, 설교하지 않으면서.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을 몇 페이지 읽고나서는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알겠더라. 그리고 내가 왜 이런 이야기들을 쓰고 싶어하는지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이해했다. 게다가 오늘 다시 읽어 본 2년 전에 남긴 글들도 같은 얘기를 하더라. 나는 졸라 반항하고 싶은가 보다. 무엇에 반항하고 싶은가? 카뮈에 의하면 무신론자는 원칙적으로는 반항을 할 수가 없고, (신을 믿지 않는 자는 반항할 대상이 없다.) 반항이라는 말은 신성 모독자에게 어울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반항은 주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노예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여하간 반항은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카뮈의 이 책은 유달리 어려워서 모든 글줄을 다 이해할 수 없었는데도,  그가 말 하려는 핵심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처절하게 동의한다. 

    

나는 반항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그것이 반항으로 보이거나 교조적으로 들려서는 안될 것이다. 조심스럽게, 심각하지 않은 척, 진의를 단어 뒤에 교묘하게 숨겨가며 쓰고 싶다. 당장이라도. 


     오늘은 다소 혼란스러운 날이었다. 컨디션이 최상이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기분이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그 때문인지 도무지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 저것 들여다보다가 하루를 보냈다. Coursera, Khan Academy 에 들어가서는 들을 만한 강의가 있는지 찾아 보고, 갑자기 한글 책 읽고 싶어서 한국에 주문할 책 찾아 보고, 핸드 캐리 알아보고. 그리고는 갑자기 쓰려던 소설이 생각 나서 친구에게 주절주절 시놉시스를 들려주고. 결국은 저녁 식사후에 5킬로 미터를 걷고, 영화 한 편으로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 나 싶더니 이렇게 일기까지 쓰고 있다. 새벽 한 시를 넘겼다. 잠을 청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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