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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Jun 14. 2020

결혼 20년 차에 아이는 없다.

결혼 20년 차에 아이는 없다.


세월 빠른 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가끔 내게 아이가 있었으면 그 애가 대학을 갈 나이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흠칫 할 때가 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면서도 아이를 낳지 말자고 둘이서 약속을 했다. 일종의 결혼의 조건이었다. 진원군도 흔쾌히 그러자고 해서 여태 이렇게 살고 있다. 약속은 20년 째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언제나 그렇듯 남의 일에 코 박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어른들 있다. 우리 엄마 친구들, 우리 시어머니 친구들(애미 말은 안들어. 자네가 좀 말 해봐...그러지 않았을까?). 그들도 초반에는 어린 애들이 철 모르고 하는 소리겠거니 생각했는지, 2년만 살아봐라 면서 코 웃음 쳤다. 그러더니 나와 진원군이 아이 없이 서른을 넘기는 듯 하자 거세게 들고 일어섰다.

'뭐가 부족해서...'

'늙어서 자식덕 없으면...'

'세상이 망조가 들어서...'

'못낳는 사람 생각도 해야지...'

'자식도 없는데 혼자 되면 더 서러워....'

'자식이 주는 기쁨이 최고...'

그러다 마흔을 넘기자 그런 소리도 멈추었다. 혹여 지금 낳겠다고 하면 더 큰 문제라는 듯.


요새는 아이 없이 살거나 아예 비혼으로 사는 인구가 늘어서인지 아이가 없다는 말에 기함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하긴 한가 보다. 왜인지 묻는 사람들은 더러 있다.


그렇게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내게는 그게 선택의 문제였을 뿐이다. 파란 알약과 빨간 알약중 하나를 고르는 레오처럼(빨간 약). 짜장면과 짬뽕 중 뭘 먹을지 고르는 것 처럼(짜장면).  나이키와 아디다스 사이의 선택처럼(나이키). 비키니와 원피스 수영복 사이의 선택처럼(비키니). 종이책과 이북을 놓고 하는 선택처럼(종이책). 아이 있는 삶과 없는 삶 중 나는 없는 쪽을 선택한 것 뿐이었다.


20년 전만 해도 결혼한 부부의 자녀 없는 삶은 선택지에 넣을 수 없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래서인지 이유를 묻는 사람들은 은근히 내게서 의미 있는 답변이 나오길 기대한다. 그런 선택은 틀림없이 진중했을 테고 고난과 역경이 있었을 테고 지금 쯤은 후회할 테고.


인생에 대해 안다고 기고만장했지만 사실은 1 도 몰랐던 나이에 한 결정이었는데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낮은 출산율은 사회 구조적 문제이거나 유년 시절 부모와의 유대관계가 원만치 못한 때문이라거나 개인주의의 극단적 예라거나 혹은 그 모두의 합이라거나. 한 가지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다 옳다.

그러나 다 제쳐 두자. 그 때 나는 그저, 내 생각만 하면서, 나만 돌보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면서 사는 삶도 선택지에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 믿음은 그대로이다.


국가의 안녕한 미래를 위해서,

권태를 달래기 위해서,

평안한 노년을 위해서,

생물학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부모된 기쁨을 알기 위해서,

내가 살아간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아이를 낳아 양육해야 하는 이유는 이만큼이나 많은데도 나는 저러한 이유들로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여전히 없다.


아, 가임기가 끝나가고 있구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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