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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Jun 16. 2020

직원으로 살기와 사장으로 살기의 가장 큰 차이

오너십과 보고서

대학 졸업 이후 줄곧 직장생활을 했다. 한 번도 프리랜서였던 적 없었고, 백수로 지내기는 석달이 가장 길었다. 여튼 직원으로 산 세월 합하면 스무해가 넘는다.


반면 사장으로 산 세월? 고작 일년 남짓이다.

언젠가 내 사업 하겠거니 어렴풋이 생각하던 때가 있긴 했는데 그장소가 베트남 호치민이 되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여하간 작년 초에 호치민 시에서 가장 인구 밀도 높은데다가 떡하니 구멍가게를 차렸다. 일년 쯤 지나 자리 좀 잡는가 싶었더니 전 세계가 팬데믹이랜다. 두 달간 셔터를 내려 두었다(사실 셔터 따위는 없다. 쉬는 동안에도 나를 비롯한 직원 몇은 꼼지락 거리며 일을 했다.) 아직도 전 세계가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베트남 정부는 일찌감치 국경을 닫아 거는 바람에 내수 산업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관광업은 망했다. 시내 1군에 나가니 호텔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내수가 활기를 띠자 우리 구멍가게도 정상 가동 되기 시작했다. 당장 문 닫을 일은 생기지 않을 모양이다.


작년 언제던가 이 업계에서 20년 이상을 사장님으로 살아 오신 분이 응원차 놀러 오셨다.

나를 두고는

'내가 보기엔 애기야 애기.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 뭐.'

라며 웃었다.

틀린 말 아닌데 속으로 발끈했다.

내가 이 양반한테 좀 어수룩하게 보였나? 하다가, 꼰대로 결론 내고 덮었다(쉬운 결론).

일년 차 초보의 자격지심이라고 얼버무리자.


초보자라고 하고 싶은 얘기가 없는 건 아니다.


두 가지이다(일단은).


첫 째, 주인이 아닌 사람은 주인 의식을 가질 수 없다.

내가 일하던 전 직장의 오너였던 치타는 직원들에게 쥐꼬리 월급을 주면서(업계에서 악명 높았다.) 일관성 있게 오너십을 주창했었다(오너십과 가치 경영을 기치로 내걸면 월급 적다고 볼 멘 소리를 하는 직원은 가치관 떨어지는 속된 사람이 된다). 나 역시 중간급 매니저로 일을 하면서 꽤나 오너십으로 무장돼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내 사업을 시작하고 보니 오너십이란 건 월급쟁이는 가질 수 없는 것이더라. 스스로를 오너십을 가진 월급쟁이라고 여겼던 건 큰 오해였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랬다. 나와 달리 오너가 아닌데 진짜 오너십을 발휘하는 위대한 이들도 물론 있겠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는 나의 오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일을 했고 그걸 오너십이라고 불렀다.


오너인 지금의 나는 앞으로 5년 이상 이 구멍가게가 잘 굴러 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며 일을 한다.


차이가 있냐고?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니 직원에게 오너십을 강요할 일은 아니다. 오너십을 외칠 때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직원 있으면 사장은 오르가즘을 느낀다. 공적인 자위행위인 셈이다. 아마 그 이유 때문에 효율도 없는 오너십 얘기가 끝도 없이 반복되는 거 아닌가 싶다.


둘 째, 직원 업무와 사장 업무의 차이는 보고서 작성이다.

사장이 된 이후 가장 좋았던 건 그 누구에게도 보고서를 보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보고 할 대상이 없다는 게 이렇게나 좋은 것이었다니. 그 와중에 또 하나 알게 된 건 직원이었을 당시 내 업무의 반은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는 점. 회의도 언제나 줄줄이 잡혀 있어 실행은 못하고 말잔치만 하다 끝나는 일도 더러 있었다. 조직이 크면 당연히 상호 보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사장이 현장에 없어 보고서에만 의존하다 보면 직원들은 미사여구 가득한 보고서를 작성하느라고 하루를 다 쓰고 만다. 효율 없다.


우리 회사는 아직 구멍가게라서 보고 체계가 필요치는 않다. 나만 한국인이고 국적도 다 제각각이라서 그런 일관된 보고 체계가 적합치 않을 것도 같다. 다만 업무가 끝나는 시간에 매일 5분에서 10분 정도 다 같이 모여 리뷰를 한다. 사장이 현장에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없으면? 보고가 없어서 좋다는 것만 알았지 막상 대안은 없다. 이런 시덥잖은 고민도 먼저 한 선배가 있을 테니 리서치를 해 봐야겠다. 구글 드라이브가 답일라나.


일단 5년을 버티고 보자는 생각이다.

구멍가게 이후에 뭐가 오는지 알게 되면 또 할 얘기들이 생길테고. 워낙 장기적 플랜을 세우는덴 소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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