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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Jun 17. 2020

내 아이는 백인이었으면 좋겠어.

아시안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하는 날이 올까요?

요 며칠 새 머리를 떠나지 않던 질문이 있었다.


'그럼 동양인들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국가 도시들의 'Black Lives Matter Protest'를 보면서 생긴 의문이었다.

이야기는 지난 주말, 점심을 먹다가 시작됐다.


쭉미(베트남 직원)가 먼저 기사를 읽어 주었다. 정확한 단어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강의 내용은 이러했다.


'인종차별을 근절하려는 모두의 노력이 저렇게 치열한 와중에 아시아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그들은 이 차별의 문제에서 완전히 탈피한 듯 행동하는가?'


쭉미는 기사에 영감을 받은 모양인지 흥분한 듯 했다(자주 흥분한다). 그녀가 서두를 연 바람에 밥상을 앞에 두고 난 데 없이 격론이 벌어졌다.

쭉미 역시 스위스에서 유학을 했는데 베트남 사람인데다 키까지 작아서 대 놓고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뭘 해도 Asian bitch로 불렸다고. 열심히 하면 할 수록 강도가 더 했단다. 그러니 기사에 자극 받아 흥분할 만도 하다.

동석했던 이 중에는 아일랜드 사람, 브로스넌도 있었다. 자기 친구 얘기를 들려 주었는데(구색을 맞추느라고), 이웃에 동양인이 이사와서 인사를 나누는 중에 물었단다. 'Chinese or Japanese?'. 이웃이 'Laotion'(라오스 사람)이라고 하자 'So, Chinese or Japanese?'라고 되물었다고. 이 정도는 유머다.


서로의 일화를 나누다가 대화는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는데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기사의 논조는 맞는 걸까?

그나저나 인종차별은 흑인, 동양인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데

왜 흑인의 인권만으로 온 세계가 떠들썩 한 것인가?

White 와 Black 이 링 위에 올라간 사이

아시아인들은 링 바깥에서 구경하는 듯 한 이 구도의 의미는 뭘까?

흑인도 아시아인 차별에는 백인보다 더 한 사람들이니

그다지 응원하고 싶지 않다는 댓글들이 많던데 정말 그게 이유인가?


질문이 무색하게 2000년도 더 전에 살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답을 내놓았더라.


'시기심을 품는 것은 자신과 같거나, 같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같은 사람이란 집안이나 혈연관계, 연배, 인격, 세상의 평가, 재산 등의 면에서 같은 사람을 뜻한다.... 여러 면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질투를 느낀다.'


프랑스의 심리학자 모스코비치의 인종 차별에 대한 의견도 있다.


'인종 차별은 오히려 동질성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와 같은 공통성을 지닌 자, 나와 같은 의견을 갖고 같은 신념을 지니고 있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발견되는 불화는, 설령 작은 일일지라도 참을 수 없다. 그 불일치는 실제의 정도보다 훨씬 심각하게 나타난다. 차이를 과장하고, 나는 배신당했다고 느껴 격하게 반발을 일으킨다.'


공공연히 신분이 나뉘어 있던 시대보다도 민주주의가 실현된 근현대에 와서 차별이나 격차가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공평하다고 가정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 호주, 유럽 등지에 사는 흑인들의 연대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서구 사회의 주류로 인식하고 있으며 백인 사회의 터부를 박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여기서 그들이 주류인가 아닌가의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 인식이 중요하다. 그렇게 인식하고 있을 때 싸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양인의 인종 평등에 대한 인식은 어떠할까?

일단 우리에게 서구인에 대한 열등감이 존재한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나마 펜대믹 기간에 선진국의 면모를 보여 국가의 위상이 올라간 듯 하고 선진국인 줄 알았던 서구의 위기 대응 능력이 우리보다 못한 것에 고소한 마음이 들었다면 그 자체로 열등감은 인정하고 넘어가야 겠다.


기실 언어 문제가 크다. 너나 없이 영어 배워야 하는 마당에 서구에 대한 미미한 선망이나마 안 생길 수 없다. 어차피 식민 통치 당할거였으면 일본이 아닌 미국이나 영국이 했으면 더 좋지 않았겠냐는 얘기도 들었다.


엊그제 만난 한국 대기업(화장품회사) 주재원이라는 분이 '미국은 거지도 영어를 잘 하는데..' 라는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 쌍팔년도에나 했던 얘기를 아직도 하는 걸 보고 인식의 변화는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음악, 영화 산업도 한 몫 한다. 요즘에는 아카데미도 그래미도 예전만큼 인기를 끌지 못하니 동양인을 무대에 세우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 모양이다. 더불어 서구권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언제나 기사로 대서특필된다. 쾌거라는 자화자찬과 함께.


어떻든 현재로서는 동양인의 인종 평등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아직 흑인들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카운터 펀치를 날리려면 불편감이나 분노 이상의 차가운 인식이 필요하다. 공평하다고 가정하는 것 말고 실제로 공평하다는 인식 말이다. 그제서야 연대는 일어날 수 있다.


이 곳 베트남은 상황이 좀 더 노골적이다.

일례로 베트남 여성들의 백인 남성에 대한 선망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같이 일하는 베트남 여자 직원들은 백인 남자 친구가 있고,  백인 남자 직원들은 베트남 여자 친구가 있다. 인종 차별에 분노하는 쭉미도 단 한 번도 백인이 아닌 남자를 사귄 적이 없다. 한 번은 그들에게 물었다.


백인 남자 선호에는 이유가 있는 거니?

있어. 우리는 그걸 White fever 라고 불러.

이유가 뭔데?

우리의 2세는 백인이었으면 해서 그래.

아, 그래.


이 나라는 중국의 식민통치를 1000년을 받았고 프랑스의 식민통치는 100년을 받았다. 이들은 중국인은 혐오하고 유럽인은 사랑한다. 그리고 그들은 2세가 하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나 팔자 고쳐 살기를 바란다.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은 브로커를 통해 영국 등지로 건너가 불법 체류자로 살아간다. 얼마 전에도 불법으로 국경을 넘던 수십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냉동차 안에서 시체더미로 발견돼서 소란이 일었다. 베트남 주변 국들의 사정이 많이 다르지 않다. 그걸 뭐라고 부르건 간에 fever가 있다. 비난 할 수 없다. 우리 나라도 60, 70 년 대에 똑같은 상황이었다는 걸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흑인 인권 운동의 역사는 길다. 그들은 수십 년간 죽고 다치면서 자신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며 그 누구와도 동등한 존재라는 인식을  연대를 통해 쌓아왔다. 구호가 All Lives Matter 이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왠지 얌체같다. 시민으로서의 권리, 여성으로서의 권리 등 평등을 쟁취하는 과정은 언제나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다. 그 어떠한 권한도 거저 주어진 사례는 없었다. 무임승차가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다시 쭉미가 소개한 기사로 돌아가 보자.


'인종차별을 근절하려는 모두의 노력이 저렇게 치열한 와중에 아시아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그들은 이 차별의 문제에서 완전히 탈피한 듯 행동하는가?'


우리는 차별의 문제로부터 탈출도 탈피도 한 적이 없다. 아직 그걸 시도해 보지 못했다. 링 근처에 가 보지도 못했다. 아직 완전한 인식의 전환도 일어나지 않았다. 차별은 개인의 상처로 남아 있을 뿐 공동체의 인식으로 전환 되지 않았다. 연대를 위해서는 아직 지난한 세월이 흘러야 하고 그 세월은 피와 눈물로 얼룩져야 한다. 그 때서야 그게 무엇이건 간에 쟁취 할 수 있을 테다.


쭉미가 물었다.


'한국인도 외국에서 차별을 받아?'

'..... Chinese or Japanese 라고 안하면 다행이야.'


언젠가는 아시아인이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연대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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