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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Sep 05. 2020

한국에는 제주도, 베트남에는 푸 꾸옥?

Phu Quoc 섬을 다녀왔다. 한글 표기로는 푸 꾸옥이라고 하는가 보다. 지도상으로는 베트남보다 캄보디아에 가까워 보인다. 베트남 정부가 한국의 제주도처럼 개발할 야심으로 이 섬을 관광특구로 지정했다는데 그래서인지 가서 보니 섬 여기저기가 파헤쳐 지는 중이다.



이번이 3년 전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이전과 달리 이 아름다운 섬에 관광객이라고는 우리 일행뿐인 것 같았다. 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내가 묵은 리조트에는 우리 일행 이외에 서너 팀이 더 묵고 있었지만 리조트가 200여 개의 객실을 갖춘 규모이다 보니 밤에는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철 지난 휴양지에서 때 못 맞춘 휴가를 보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와 일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애초에 계획했던 휴가의 목표를 다 이루었다.


리조트에서 보는 바다풍경




1. 푸 꾸옥 섬은 진주가 싸다.

는 말은 어쩌면 거짓말일 수 있다. 푸 꾸옥 섬에서 진주를 직접 양식하고 제품을 만드는 건 팩트. 그렇다면 진주가 싸야 할 텐데 워낙 관광특구로 개발된 섬이다 보니 관광객을 등쳐 먹으려는 온갖 술수가 난무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하고 쇼핑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작년에 섬을 다녀간 지인으로부터 진주 쇼핑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그녀가 샀다는 가격을 들어 본 즉 어쩐지 박아지를 쓴 것이지 싶었다. 백만 원을 호가하는 진주알을 샀다던가. 이번 여행 동료였던 Choi와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로 다짐을 하고 진주 농장이라는 곳을 들렀다.


오래간만에 외국인 관광객을 본 매장의 직원들은(베트남은 국경이 닫힌 상태로 외국인 입국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파리떼처럼 우리 주변으로 우 몰려들었다. 나와 Choi가 too expensive! 를 외치며 돌아다니자 다들 점차 흥미를 잃고 떨어져 나갔다. 거기에서 우리는 진주의 퀄리티, 가격, 디자인 등을 눈여겨보고 기준을 세웠다. 사실 정신을 똑바로 차릴 필요가 없었던 게 진주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의 디자인이 너무 구식이어서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직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 싫어 Choi와 나는 각각 3만 원짜리 목걸이와 팔찌를 샀다. 매장에 있던 물건 중 최고로 단순한 디자인에 최고로 낮은 가격이었다.


다음 날 방문한 두 번째 진주 가게에서(케이블카를 8km 타고 간 섬에 있는) 우리는 한결 마음을 놓고 진주를 구경했다. 이 곳은 제품의 종류는 단출했지만 오히려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들이 있었고 심지어 진주 농장보다 싸기도 했다. 나는 거기에서 진주알이 박힌 반지를 두 개 구입했다.


그 날 저녁에는 내가 기거하는 리조트 Salinda의 기념품 샵에 들러 진주를 구경했다. 디자인은 단연 최고였고 가격도 당연히 조금 더 높았지만, 퀄리티를 생각할 때 납득이 가는 가격이었다. 이 곳에서는 팔찌와 목걸이를 구입했다.


푸 꾸옥의 진주가 호찌민시, 한국, 일본과 비교할 때 당연히 저렴한 가격이라는 걸 인정해야겠다. 나의 동행 Choi는 과거에 일본에서 다년간 살면서 진주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쌓았는데, 푸 꾸옥 진주가 가성비가 높으면서 퀄리티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목소리 높여 어필했다. 다만 가이드나 장사꾼에게 뒤통수 맞지 않도록 정신을 차릴 필요는 있다.


나와 Choi가 산 걸 모아봤다.


2. 푸 꾸옥 섬에서는 꽃게를 살 수 있다.

나의 동행 Choi는 이 섬에서 꽃게를 사 가겠다고 다짐을 했던 터였다. 간장게장을 담기 위함인데, 호찌민시에서는 신선한 꽃게를 5km 이상 한꺼번에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Choi와 나는 새벽 어시장을 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어야 했으나 실패하고 아침 7시 조금 넘어서 시장에 도착했다. 시장은 우리가 흔히 TV에서 보던 동남아 국가의 재래시장 모습 그대로다. 길거리 좌판에 주렁주렁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상인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며 구매하는 손님들로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오토바이 없이 걷는 사람은 나와 Choi 뿐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비옷을 사서 뒤집어썼지만 우리 꼴은 영락없는 외국인이었다. 이 곳에서도 뒷 퉁수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제 오후 사전답사를 통해 시장조사를 마친 상황이었다. 같은 크기의 꽃게도 집집마다 가격을 달리 부르는 걸 보고 역시 외국인은 봉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우리의 예상가는 1kg에 10,000원. 오늘 새벽 어선에서 받아온 싱싱한 꽃게들이 즐비한 가운데 가격이 맞는 집을 찾았고 우리는 가장 덩치 좋은 꽃게 8kg를 8만 2천 오백 원에 구매했다(Choi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돈을 냈다. 반드시 얻어먹고 싶었다). Kg당 얼추 10,000원 꼴, 예상가 적중이다. 한국에서는 Kg에 5만 원을 호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호찌민에서도 이보다 작은놈을 Kg당 2만 원 이상 주어야 살 수 있다고 한다.


인상 좋은 총각이 얼음을 잔뜩 넣은 아이스 박스에 꽃게를 담아 꽁꽁 묶어 주었다. 우리는 다음에 또 올 것을 약속하고 기쁜 마음으로 가게를 나섰다. 간장 게장 먹을 일만 남았구나. 호찌민에 산지가 만 4년인데, 여기서는 한 번도 간장 게장을 먹어보질 못했다!!

choi와 꽃게 청년


출처. 네이버 블로그



3. 그게 뎅기열이었다고?

나의 동행은 Choi뿐이 아니었다. 나의 남편도 푸 꾸옥에 같이 갔는데 그는 첫날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사흘 후 호찌민에 돌아오는 날까지 아무 데도 다니지 못하고 거의 먹지 못한 채로 호텔에 누워 지냈다. 그가 누워 있는 동안, 한 명이라도 가성비를 올려야 한다며  아내인 나는 사방팔방 돌아다니면서 와구와구 잘도 먹어댔다.


남편도 나도 그저 감기이겠거니 생각했다. 어제 호찌민에 도착했을 때에는 다시 멀쩡해지는가 싶게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오늘 아침 다시 시름시름하는 걸 보고 억지로 병원에 끌고 가서 피검사를 해보니 Dengue Fever 항목에 Positive가 떴다. 뎅기열에 걸려 아팠던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그 무서운 모기 놈에게 나의 남편이 뜯기다니. 다행히 증상이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입원할 증상이란 구토, 정신착란, 기절, 출혈 멈추지 않음 등인데 남편은 그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잘 뿐 위험한 증상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의사가 물과 과일주스를 엄청 먹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다 낫는데 족히 10일은 걸린다고 한다. 오늘이 닷새 째니 아직 반이 남았다. 이 놈의 모기! 손바닥으로 때려잡으리.


병원에서 준 진단서


4. 푸 꾸옥 섬에는 카지노가 있다.

Choi에게도 남편 Kim이 있고 그도 푸 꾸옥 여행에 동참했다(부부동반 여행이었다). 그가 이 여행에 따라온 이유는 카지노에 가기 위한 것이었는데, 최근 빈 그룹이 개발한 카지노가 푸 꾸옥에 개장을 했다. Kim이 하도 졸라서 카지노에 따라 들어가 보았다. 나로서는 카지노 입장은 난생처음이었다.


베트남 국내 최초 내국인 전용 카지노라는데, 역시 거기에서도 외국인은 우리 일행뿐, 죄다 베트남 사람들뿐이었다. 돈다발을 뭉치로 들고 와서 블랙 잭을 하고 있는 여자와 남자들을 보고 있자니 영화 타짜가 떠올랐다. 집 팔고 소 팔아서 온 것 아닌가 싶어서 생판 남인데 걱정이 앞섰다. 듣기로는 이들은 동네에서도 명절 때마다 도박판을 벌인다고 한다. 일종의 문화라나. 그래서 대기업이 카지노를 열 때마다 불법도박을 양성화 한다는 명분이 따라붙는다. 명절 때 동네 어귀의 도박판이야 자기들끼리 돈 나누어 갖는 것일 테지만 빈 그룹이 하는(빈 그룹은 한국의 삼성이라고 일컬어지나 베트남에서 빈은 한국에서의 삼성보다 입지가 훨씬 높다. 경쟁사가 없기 때문이다)  카지노에 와서 월급 날리고 집 날리는 건 대기업이 서민들 등쳐 자기 배 불리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조그마한 섬에 저렇게 거대한 카지노를 세운 빈 그룹이나 그걸 허락한 베트남 정부나 다들 다들 다들 쓰레기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강원도 말해 뭐해.


어떻든 Choi의 남편 Kim은 이틀 내리 카지노에 가서는 매일 밤 10시가 되어 돌아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 시간만 더 있었으면 돈을 땄을 거라고 한다. 다음에 다시 오면 아예 카지노 옆에 숙소를 잡을 거라고 한다. 사는 모양새들이 서로 이렇게나 다르다(참고로 Kim의 카지노 사랑은 벌써 25년 째이고 그는 수십억의 자산가이며 카지노에서 하룻밤에 몇백만 원은 너끈히 잃어도 괜찮다고 한다. 다행히 집을 날릴 일은 없겠다).


출처. 연합뉴스



섬 전체에 관광객이 없어 조용한 여행일 수 있었지만, 이래 저래 다사다난한 여행이 되고 말았다. 특히 남편의 뎅기열이 압권이다. 그가 완치되어야 이 여행도 마침내 끝나는 것이다. 내가 대신 아플 수 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 남편이 좋아할까? 솔까말, 그놈의 모기 나는 안 물려 다행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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