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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Jun 08. 2020

베트남으로 향했던 날

4년 전의 일기

한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향했던 날의 기억.



2016. 9. 19.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장시간의 비행을 위해서 (그래봐야 5시간) 내가 준비한 것은 ‘사피엔스’와 맥북이다. 읽다가 지치면 써야지, 뭐 그런 생각으로. 사피엔스는 지치는 책이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다. 거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막연하지가 않다. 매우 구체적이다. 인류의 모든 것에 대해 논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아직 반도 못 읽었다는 게 함정. 600 페이지가 넘는다.


    진원씨와 헤어질 때 잠깐, 비행기 탑승 통로를 걸어 갈 때 잠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서울을 떠나 베트남의 낯선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감회가 그런 식으로 드러난 걸까. 혹시라도 울컥할 만한 순간에 나는 이렇게 묻는다. 떠나고 헤어지는  삶을 전 지구상의 수천만명 혹은 수억명이 치러내고 있는데, 지금 내 상황에 대해 유별나게 구는 건 아니야? 구체적으로 이런 언어를 사용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짐을 꾸리는 것, 비자를 받는 것, 비행기 여행을 하는 것,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 모든 것이 그렇다. 나에게만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닌 것이다. 혹시 유난을 떨게 될까 봐 몹시 두렵다.


    그런데 어제 ㅇㅇ교회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들이 나를 극진하게 아껴주었고 떠남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ㅇㅇ 교회 안에 있으면 무장해제 되는 기분이다. 나를 놓게 된다. 거기서는 전투 태세를 취할 필요가 없다. 남인데 나를 진짜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사랑이란 게, 사실은 억지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들은 그 조그만 집단에서 나와 남편이 빠져나가는 것을 손실로 여겼기 때문에 베트남에서 내가 하게 될 일이 잘 안되었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다. 심지어 베트남 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단다. 나는 틀림없이 사랑 받았다고 느꼈고 그들은 나를 사랑했다고 느낀 게 맞지만, 그들의 심리적 기저는 그 흔한 집단이기주의인 셈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내 생각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게 서로에게 좋다. 신앙생활이란 예민함을 버리는 것이다.


    도착해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막연한 것에 대해서는 미리 계획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치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러므로 아직은 여유를 부릴 시간이 있다. 가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지옥에 가까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월요일, 딱 일주일 전이다. 먼 옛일같이 느껴진다. S와 여수에 갔던 일은 내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아마 S, 본인에게는 더한 질문들이 남겨졌을 것이다. S는 알면 알수록 모순이 많은 인간이다. 여태 그걸 몰랐다는 게 그녀의 함정이고, 이 즈음의 상황은 그걸 살짝 눈치 챈 수준이다. 그녀는 몹시 괴로워 하고 있었다. 여수는 그녀가 죽겠다고 해서 따라 나섰다. 자살은 방치하면 안되니까.


  나를 가장 놀래킨 것은, S는 자신을 고결한 인간으로 정의 내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저는요, 악하고 추하고 심지어 비열하기도 하고요, 나와 남에 대한 스탠다드가 다를 때가 많아요.’ 라고 했더니, 그녀는 냉큼 ‘아, 나는 안 그런데.’ 라고 답했다.

대개의 인간이 그러하며, 남들은 몰라도 자신만은 자신의 추함을 알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자신은 그렇지 않다니. 이런 거대한 거짓말을 진심을 다해 믿는 사람이 내 앞에 있다.


     내가 그녀로부터 들은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S는 점점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자신의 딸을 골프채로 15대를 때려서 아이가 부모를 학교에 가정폭력으로 신고했다. 어느 날은 손목이 저릴 정도로 아이를 때리기도 한다. 딸한테 사랑해, 라는 말을 입이 떨어지지 않아 못하고, 손을 잡는 것 조차 어색하다고 한다. 경제적 부를 누리는 것은 달콤하고, 남편이 출장으로 바빠 집을 비우는 것은 싫다. 직장에서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르다. 공교육의 부조리와 극단적 폐해에 대해서 어필하면서 자신의 딸은 학교 숙제는 반드시 해야 한다. 딸을 죽이고 싶은 순간이 종종 있고, 그게 안되면 자신이 죽을 생각도 한다.

이유야 어찌됐건 그녀는 모순을 잔뜩 짊어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 모순이 본인의 부조리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그걸 몰라 괴롭다. 안다고 편해질까? 그녀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아니, 전달을 해야 하는 걸까? 그냥 말기로 한다.


어떻든 나는 떠났다, 서울을.




    여수에서 그녀는 위스키 한 병을 다 비우고 호텔 객실 침대 위에 잔뜩 토했다. 틀림없이 고객 블랙 리스트에 오를 테니 다음에는 올 생각도 말라고 그녀에게 농담을 했었다. 그 밤에 그녀는 정말 많은 얘기들을 술과 함께 토해냈다. 그녀는 여전히 그 어디즈음에 있을까? 연락이 끊어진 채여서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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