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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Jun 09. 2020

보스 씹는 재미

기억은 사라지고 기록은 남는다.

2018. 11. 21.


24일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 이제 3일 남은 셈이다. 이 곳에서의 8년 여정을 마쳐가고 있다.


 어제 치타와 알을 하이랜드에서 우연히 만나 하게 된 대화는 나름대로 정보가 되었다.


치타는 대뜸 왜 본인에게 컨설팅을 받지 않느냐면서(퇴사 이후의 일에 대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책이 아니고 컨설팅이라면서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서 컨설팅을 받고 심지어 알에게 컨설팅을 받으라고 했다.

코웃음이 났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한 없이 자신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본인도 컨설팅 받은 대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이 맞는지 틀리는지 정도는 파악이 된다고 했다.


시간을 돌린다면 공고는 가지 않았을 것이며, 프랑스 회사를 그만 둔 후 지방으로도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서울에 있었어야 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교육업을 하는 대신 부동산업에 뛰어 들었을 거라고 했다. 그 분야에서는 자신보다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덜 일하며 더 잘 산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프로젝트 하나만 해도 기본 단위가 200억이라며 교육 사업의 1년 매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라는 둥 그래서 본인도 세 군데 지분 투자를 했다는 둥.


그러면서 누가 페라리를 끌고 누가 벤츠를 끄는 얘기를 했는데 그 얘기를 철학이나 과학을 논하는 어조로 하더라. 진지충. 천박하다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아서 좋은 외제차 끌고 싶다는 얘기를 그렇게 격조 어린 목소리로 하다니.


이어서 경영학이나 MBA 등의 불 필요함에 대해서 역설을 했고 치타 자신은 공대 출신인데 전혀 상관없는 업을 하고 있어서 일말의 후회가 있다고 하자, 조용히 듣던 알이 지금은 융합의 시대이기 때문에 공대출신이면서 교육 업을 하시는 대표님이 성공 하실 수 있는 더 좋은 시기 라며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알의 낄끼빠빠를 모르는 발언은 언제나 나를 웃긴다. 입을 가리고 웃을 뻔 했다.  


이야기는 갑자기 내 커피 컵의 립스틱 자국으로 옮겨갔다. 치타가 붉은 립스틱 자국이 있는 내 커피 컵을 들고는 친한 사람의 것 인양 벌컥벌컥 마시더니, 립스틱은 자국이 안 남게는 못 만드나, 중얼거렸다. 자기 질문에 자기가 대답을 하는 평소의 습관대로, 아, 그럼 지워지지가 않겠구나 신소리를 하니, 알이 냉큼, 보통 남자들이 평생 립스틱 3개를 먹는대요, 라고 거들었다. 이야기는 립스틱을 먹는 것이 건강에 해롭냐 그렇지 않냐로 넘어갔다.


 그 외에도 호치민시에 새로 산 본인의 아파트 인테리어 얘기, 다른 직원 일 못하는 얘기 뭐 그런 얘기들을 한참 들으며 앉아 있었다.


편도가 부어 열이 있다더니 틈만 나면 저렇게 쉬지 않고 얘기를 하니 편도가 안 붓고 배길까 싶었다.



다시 읽어 보니 퇴사하는 막바지에 많이 삐뚤어져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록해 놓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역사는 기록으로만 보존된다. 인스타그램에 사진 많이 찍어 올리는 것과는 별개로 기록은 문자로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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