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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Dec 20. 2020

시간을 달리는 여자

예전에는 정신 차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흘러가 있어서 세월 빠르다는 어른들의 말을 뒤늦게 떠올리고 고개를 주억거리곤 했었다. 맞네, 맞네 시간이 흐르는 물과 같다더니.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시간에 대한 속담을 되새기지 않아도 그 흐르는 시간이 빠르게 내 몸을 스쳐 지나가는 감각이 실시간으로 느껴진다고나 할까. 시간의 물아래에서 나는 어기적 어기적 유영을 하고 있고 내 양 옆으로 물살이 빠르게 이동하는 느낌이 든다. 손을 뻗어 보지만 물이 손가락 사이에 걸릴 리가 없다. 그저 살갗을 스쳐 지나가는 시간의 물살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 말고는 딱히 할만한 일이 없다.


시간이 흐르는 감각을 느끼지 못했을 때에는 넋 놓고 시간 낭비하는 것에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에 그냥 내키는 대로 시간을 보내곤 했었던 것 같다. 대학 강의를 빼먹는 건 예사 일이었다. 친구들과도 몇 시간이고 앉아서 노닥거리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뭔가를 규칙적으로 하는 것도 잘 되지 않았다. 잠도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는 것도 맘대로. 동이 틀 때까지 깨어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정오가 다 돼서 일어나는 것도 할만했다. 운동도 하고 싶을 때 하고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됐다. 뭔가 계획을 세웠다가도 이내 포기하거나 계획을 세웠던 것 자체를 잊어버리거나 하는 일도 잦았다. 물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런 생활도 막을 내렸지만 삼십 대 중반까지도 시간을 낭비하는 재미가 남아 있었다.


어느새부턴가 강박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게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직장생활을 통해 삶의 규칙성을 깨달았을 가능성이 높고, 나이가 들어가니 시간을 느끼는 감각이 달라졌을 게다. 시간의 빠른 물살이 느껴지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마음 편할 사람은 없을 테다.


어차피 대부분의 시간은 노동활동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여유 시간은 주말에 생긴다. 한 나절의 여유 시간이 있다면 어떻게 보내야 할는지 생각한다. 그 시간이 생산성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예컨대 운동을 하는 것은 생산적인 활동이다. 결과로 남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행위도 어떻든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기 때문에 생산적 활동 범주에 넣는다.(내용과는 상관없이.) 책을 읽는 것도 생산적 활동으로 분류된다. 펜대믹으로 도시 전체가 락다운이 되었을 때에는 시간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연습에 공을 들였다. 톰보우 펜과 도화지를 사다 놓고 이것저것 그려 보기도 했다.(최근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손으로 직접 그려 지인들에게 주는 것에 대해 생각했었다. 이건 생산성보다는 가능성의 여부 문제다.) 아프면 도루묵이다. 며칠을 누워 지내야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피로가 쌓여서 쉬어야 한다면 그것도 계획을 세워한다. 지금쯤 쉬지 않으면 더 손해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참 재미없다는 생각이 든다. 계획한 대로 되는 나날은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고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다. 충동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었던 오래 전의 어느 시절은 매일이 모험이었다. '오늘 처음으로.... 를 했다'라는 일기를 거의 매일 썼던 것도 같다. 모험과 실패로 뒤덮인 신나는 나날들이었다. 가책이라곤 없었다. 그래도 되었던 시절이 존재했다는 게 지금에 와서는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20대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새털같이 많은 날들이 남아있었다는 점에서는 그 시절의 내가 부럽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한 세미나에서 자타공인 자수성가한 사업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은 철저한 자기 관리, 부지런한 하루 운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서 대부분이 20, 30대인 청중의 게으름을 꾸짖는 것으로 강연을 끝맺었다. 자기 계발서 한 권을 약 한 시간가량으로 약축 한 것이었다. 강연자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뒷산을 오르고 7시에는 책을 읽고 아침으로는 뭘 먹고.. 뭐 그런 내용이었다. 거기 시니컬한 관중 중의 한 명이었던 나는, 왜 저딴 소리를 한 시간 째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생각을 하면서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삶이 옳다는 확신은 어디서 나왔으며 그걸 혼자 확신하면 되지 남들 소중한 시간 뺏어서 강요까지 할 건 뭐란 말인가 싶었다. 지금은 그 남자가 열변을 토한 감정적 배경 정도는 이해가 된다.(자기 눈에는 우리가 얼마나 한심 했겠나.) 다만 시간의 감촉이 완전히 다른 젊은이들을 앉혀 놓고 일분일초를 아끼라는 둥의 중년 아저씨의 잔소리를 늘어놓은 것은 기획 단계에서 이미 실패였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란 개개인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각자가 처한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게 디자인된다. 그걸 누군가가 나서서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강요할 순 없는 법이다. 강요하지 않아도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체득이 되는 것들이 있다. 정 필요하다면 우리는 실패를 통해서 배우기도 한다. 혹 필요 없다면 배우지 않아도 된다. 배움이 필요 없는 경지의 사람이라면 이미 일가를 이루었을 테고 배워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사람이라면 또 그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게 될 테다.

요컨대 시간이라면 남아 돌게 많던 날이 끝났다는 자각이 생기자 나 역시도 시간을 알뜰하게 쓸 방법에 골몰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이게 인생의 정석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이런 걸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된 데에 올 한 해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 탓이 왜 없겠는가. 여기서 멈춤, 표지판이 보이자 다들 멈췄다. 뭔가 생산성 떨어지는 한해였다고 한숨을 쉬다가 그 때문에 나름대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 정리를 다시 하게 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면 일 년을 완전히 낭비한 것도 아니다. 새해에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다가 사실 2020년 의 상황이 우리에게 모험이 아니면 무엇이었나 생각한다. 한 십 년 후에 2020년을 돌아보면서 '그때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 알아?' 라면서 서로의 무용담을 늘어놓을지 누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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