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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May 18. 2021

신생아적 노화

늙어가기 시작한 사람의 이야기

매일 여전히 걷고 있다. 매일 5킬로를 걷고 주말에는 10킬로를 걷는 루틴을 반복하는 것이 혹시나 몸에 무리를 주어 간간이 드러눕는가 싶어서 거리를 줄였다. 매일 3킬로. '아, 조금 더 걷고 싶은데 아쉽다' 생각이 들 때쯤 집으로 들어온다. 이런 과정이 노화를 받아들이는 수순인가도 싶다. 주말에는 약 5킬로가량을 걷는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더 멀리 가기도 하고 간간이 달리기도 한다.


내게는 이 모든 노화의 과정이 참으로 생경하고 충격적이지만 노화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한다. 어딘가에서 노화의 과정은 이렇습니다,라고 자세히 읽어 본 기억이 들지 않는다. 사전 지식이 마땅히 없는 것이다. 너도 내 나이 돼봐, 몸이 말을 듣나, 정도의 핀잔을 들었던 경험이야 많다. 그래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건 구체적으로 뭔데요?라고 나도 묻지는 않았다. 관심이 없었던 거다. 어떻든 노화나 갱년기에 대한 얘기는 불평을 섞어 말로 하고 마는 것으로 여기는 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 사람으로서는 노화의 과정을 읽을 필요를 못 느낄 테고, 늙은 사람으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늙어 서러운데 그걸 읽으면 더 우울해질 수도 있다. 더구나 이 노화의 과정은 어느 지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시작되는 시점부터 죽는 날까지 꾸준히 진행되는 과정이니 의학서적이 아니고서야 개인적 경험을 서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성장의 과정은 축복으로 여겨지지만 노화의 과정은 대체로 축복보다는 저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주로 나 아직도 팔팔하다, 를 과시하는 쪽으로 노화가 소비되는 경향을 보면 그렇다. 50살인데 20살처럼 보이는 게 칭찬이 되고, 70살에 근육이 울퉁불퉁한 할아버지가 뉴스가 된다. 그러하니 늙어가고 있음을 전시하는 것은 여러모로 저술자와 독자를 확보하기 어려워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문이 살포시 열린 듯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렇다면 일기를 쓰듯 노화의 과정을 상세히 남기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경과 첫 몽정을 축하하고 기록하듯 저물어가는 몸에 대해서도 애틋한 기록을 남기자. 마흔 중반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산만큼 더 살아야 할 가능성이 높은데, 인생의 반이 노화의 과정이라면 이것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여정인가 말이다. 이른 살이 된 내 노부모가 들으면 마흔 중반의 젊은이가 할 소리인가 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젊음도 노화도 상대적인 개념인 것은 맞다. 하지만 늙었다고 느끼는 것과 몸이 실제로 늙는 것은 확실히 다를 것이다.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청춘' 같은 그런 얘기 말고 매일매일 차곡차곡 늙어가는 신체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다.


아직 다 늙어보지 않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내 나이 즈음에 한정되어 있다. 신생아적 노화라고 해야 하나. 이제 막 몸의 노화를 경험하기 시작해서 매일이 충격인 그런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에 목차가 있다면 이런 정도가 되지 않을까?


1. 왜 안경을 두 개나 쓰고 있어요?

2. 그 많던 뽕브라는 다 어디로 갔을까

3. 화장실이 제일 중요해

4. 마라톤은 안드로메다로

5. 세포 분열하는 약상자

6. 기억의 블랙홀

7. 피곤해, 너무 피곤해

8. 내가 고혈압이라니

9. 위장, 너 갑자기 나한테 왜 이래


늙음의 여정은 아직도 한참 남았으니 목차는 더 길어질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어떻게 유지하는가는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자. 다시 얘기하지만 이 물리적이고도 확실한 신체적 변화는 심리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아닌 객관적 사실의 문제이다. 그 이야기를 꼬박꼬박 써보고 싶은 것이다. 앞으로 내 몸과 더불어 상당한 세월을 살아내야 할 텐데, 깜짝 놀랄 만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과장할 것도 숨길 것도 없는 늙어가는 신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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