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착하고 아름다운 것들

핸드폰 사진첩

by 스토리텔러 레이첼


아름답다. 멋지다. 예쁘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성장하면서 여자로서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다. 유난히 감성적인 편이어서 그런지 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자랄 때 환경도 야리야리하고 순종적이며 따뜻한 여자, 말하자면 어떤 상황에서도 착한 여자가 되는 것이 최선이라고 요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맞춤형 착한 여자가 되어 갔다. 아주 자연스럽게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어디서건 누구앞에건 착하려고 애썼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성향을 상대방도 알아차리고는 자신들이 가진 짐을 조금씩 조금씩 더 넘겨주기 시작했다. 착할 수 있을 때까지 착하려고 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내게 과부하가 걸려 그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거의 심리적으로 거덜이 나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억지로 만들어진 착함은 불편해서 나를 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제대로 처리가 안되고 억누른 감정이 때로는 용암이 끓듯 올라와 코에서 뜨거운 김이 솔솔 나왔다. 식도는 화통이 되어 검게 그을렸고 귀에서는 끓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으며 목구멍은 화끈거렸다.



한참 청소년으로 자랄 때의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어느 날인가 무슨 이유 때문에 동생과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다툼을 했다. 토라진 동생이 가방을 길에 팽개치며 나보고 가져가라고 말하며 달아났다. 나는 그렇게 하기 싫었다. 하지만 어둑어둑해지자 돌아가서 그 가방을 가져오며 약이 올라 엉엉 울고 말았다. 그렇게 내 뜻을 관철시키고자 시도했던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내가 져주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덧 갱년기가 되고 보니 내가 누구인가 싶어 그때부터 한꺼번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많은 시간을 나를 존중하지 않고 살던 내가 갑자기 나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여성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핸드폰 사진이건 앨범 사진이건 들여다보면 내가 아름다웠던 순간에 제일 먼저 눈이 간다. 하지만 사진 속에서 내가 진정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장면을 찾아낸 적은 별로 없었다. 진정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진은 차라리 중년이 지난 후 찍은 사진이다. 그때부터 나 자신에게도 최대한의 애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아주기 시작한 것 같다.



최근에 나는 틈만 나면 숲으로 간다. 밴쿠버의 숲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인 모습을 한 경우가 많다. 쓰러진 나무, 뿌리 뽑힌 나무, 이끼가 꼬득꼬득하게 낀 나무들, 그리고 그들과 살아가는 곤충,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그 안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다 보면 산책이 먼저 인지 사진 찍기가 먼저인지 모르게 나는 핸드폰을 찰칵거린다. 특히 사랑스러운 사진은 숲에서 만나는 반려견들이다. 주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뀌는 연약한 존재들이라 더 그렇다. 사진에 담다 보면 그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닌지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압권은 머리가 하얀 노인 부부가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 모습인데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지만 너무 아름다워 뒤를 자꾸 돌아보면서 내 시야에 사진보다 더 오래갈 이미지로 담아 놓게 된다.


내가 아름다운 것도 좋지만 이제 아름다운 대상을 늘려가면서 더 자주 바라보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면서 나와 비교하지 말자고 다짐을 한다. 나의 아름다움이 가치를 잃는 것은 다름 아닌 비교 때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비교 대상의 더 빛나는 모습에 의해 평가되도록 하지 않을 작정이다. 나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인종차별 등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평가로 캐나다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자기만의 고집으로 바라보는 타인에 대한 느낌을 그대로 옳은 생각이라고 판단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에 대한 관점도 교육받고 훈련받아야 하듯이 자신의 잘못된 사고에 대한 재교육도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나 역시 아름다움에 대한, 착함에 대한 지나친 추구로 인해서 한평생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비하고 살았었고 이제 스스로를 재교육시키고 있다.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표현될 때 즉, 자연스러울 때 착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마음 밭에 갈등이 찾아오면 그저 눌러서 해결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받아주고 처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대로 모래밭에 묻어 버리듯이 한다고 해서 사라질 감정이 아니었다. 마치 공을 물에 집어넣으려고 애쓰면 잠시는 집어넣을 수 있지만 결국 물속으로 툭 튀어나오는 것처럼 처리되지 않은 감정은 다시 튀어나와 자신을 치게 된다. 착한 가면을 쓰고 애쓴다고 마음속까지 착해지는 것은 아니다.



숲에서 배우는 있는 그대로의 착함과 아름다움, 그 어디를 가도 이처럼 정확하고 예리한 레슨을 해 주는 곳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숲의 천사 정령들에게 배우려 부지런히 드나들어야겠다. 핸드폰에서 저장 공간이 부족하다는 사인이 계속 뜬다. 자꾸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모습을 들여다볼수록 더 애착이 가니 어느 사진을 지울지 고민이다. 내가 핸드폰에 꾹 꾹 담아 둔 것들이라서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아 한 장도 지워 버리기가 힘들다. 이렇게 담아 놓고 있으면 나도 그들처럼 있는 그대로 착하고 아름다워 지지 않을까 해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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