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봄을 향한 그리움을 실어 막 만개하기 시작한 꽃 들위에 내려놓는다. 꽃이 된 그리움은 노래가 되고 그 노래는 메아리가 되어 허공을 울린다. 푸른 허공을 가득 채우며 날던 새들의 무리는 둥지로 날아가 알을 낳으려는지 날갯짓이 바쁘다. 봄이 되면 나무들은 겨우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햇살의 체온을 흠뻑 머금었다가 꽃과 잎들을 일제히 출산하는데 다 써 버린다. 고된 겨울을 거치면서 탄생한 봄이라서 그런지 짧은 시간에 화려한 연출로 자신의 무대를 꾸미려 탐욕을 부린다.
그런 봄이 공연하는 페스티벌은 우리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스펙터클 한 순간을 문득 보여주기 때문에 잠시라도 눈을 떼면 안 된다. 그래서 봄을 추억하려면 부지런히 자기 신발을 신고 나가 그와 마주해야만 눈을 마주칠 수 있다. 직접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코로 향기를 맡고 입으로 꽃잎을 먹어주지 않으면 봄을 만났다고 할 수 없다. 대책 없이 경이로운 봄의 천진난만함과 함께 뒹굴었어야 그를 추억할 수 있다. 그런 추억이 그리움으로 남는 인생은 축복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강원도의 두메산골마을로 스며들어 10여 년간을 외지인으로 아슬아슬하게 견뎌내면서 살았다. 그런데 그 시절을 기억하라면 진저리 치다가도 추억하라고 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억이 단편적으로 마치 하얀 빨랫감에 묻은 얼룩처럼 남아 있다면 추억은 단풍나무 잎사귀를 꽂아 두었던 책의 페이지처럼 언제라도 거리낌 없이 꺼내 보일 수 있다. 그 추억들은 대부분 자연에서 보냈던 장면들로 영화의 필름처럼 아련하면서도 연속적으로 남아있다.
그 추억들을 다시 추억해보려 한다. 봄이 되면 진달래꽃, 매화꽃, 살구나무 꽃, 개나리꽃이 여섯 가구가 살던 작은 마을을 뒤덮었다. 가시덩굴에서 자라던 찔레꽃에서는 어린 순을 따서 미안한 줄도 모르고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과학시간에는 해마다 진달래 꽃술을 그리며 꽃의 구조에 대해 배워 나갔다. 진달래 꽃잎은 우리들의 간식이 되어 주기도 했던 것 같다. 그 꽃잎을 먹고 커서 그런지 아직도 꽃만 보면 사죽을 못쓴다. 진달래 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꽃무덤처럼 미친 듯이 피어 있는 곳에는 미친*이 숨어 있다고 해서 얼씬도 못한 적도 많았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거져로 내어주던 친구는 자연이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도 그곳은 산맥들이 삥 둘러싼 분지로 둘러싼 우물 같은 닫힌 공간이었고 나는 그 안에 갇힌 개구리였다. 보이는 것은 하늘뿐이었기 때문에 외지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을 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왜 그곳을 추억하는지 알 수가 없다. 가끔 그 추억들이 나를 부르는지 장자울 고개가 생각난다.
가까운 과거도 추억으로 얼마든지 불려질 수도 있나 보다. 얼마 전 있었던 냉이 소동을 말하려니 웃음이 나온다. 밴쿠버에도 고사리, 참나물 , 냉이, 미나리 등 나물이 있다. 얼마 전 냉이를 캐러 갔다가 헛걸음을 한 적이 있다. 냉이가 많다던 아보츠포드는 캐나다의 농장지역으로 농부들이 농사도 짓고 대단위로 말, 소, 양, 염소, 라마 등 우리와 친숙한 가축을 많이 기른다. 정보는 단 하나 No. 1 하이웨이를 나가다가 Exit 72를 나가자마자 있는 아보츠포드 어느 농장의 옥수수를 거두고 난 밭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보니 그곳에는 냉이도 작은 우리 둘의 몸을 숨겨줄 언덕도 나무도 없었다. 냉이가 있다 해도 허허벌판에서 지나다니는 차들의 시선을 견디며 냉이를 캐긴 힘들 것 같았다. 같이 간 분이 '뽀다구'가 있지 냉이가 많아도 포기하자고 부추겼고 나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흔쾌히 냉이를 포기하고 우리는 짧은 여행의 목적을 드라이브로 바꾸었다. 생각을 바꾸니 많은 것들이 시야에 꽉 차도록 다가왔다.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농기구들, 물 뿌리는 기계 등이 초록 물결이 잔잔하게 깔린 평원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곳은 농기구 전시장이었다.
캐나다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No. 1 하이웨이를 타고 달리다 보면 이맘때쯤이면 들판에서 뒷간의 향기가 찐하게 느껴지곤 했는데 우리는 그 냄새의 현장을 마치 횡재를 한 기분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초록색 트럭이 180도로 회전하는 긴팔기계로 뭔가를 공중으로 방사하며 넓은 평야를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굉장한 냄새가 났다. 우리는 아마도 거름을 담은 흙이겠거니 했는데 자세히 보니 액체였다. 그것의 정체는 무엇인지 정확하게 할 수는 없으나 동물의 똥을 발효시킨 것이었던 것 같다. 본격적인 농번기를 맞이한 분주한 농장의 모습은 생기가 가득했다. 새로운 것들도, 못 보던 것들도 호기심을 채워 주므로 추억으로 남는가 보다. 이곳에 산지 오래되어 거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했는데 직접 농사짓는 캐나다 농부의 모습이 내가 상상하던 어릴 적 농사의 모습과 달랐다.
봄에는 이야기가 풍성하다. 온통 보이는 것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귀를 기울여 듣다 보면 밤을 새울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봄이 조금 후면 떠날 것이라 생각하니 바라보고 있는데도 그립다. 그리움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채우고 싶은 결핍도 많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결핍이 충만하게 채워지는 봄이 좋다. 아직은 그런 봄이 아직은 한창이다. 시절을 한창 뽐내는 봄의 옆에 앉아 그의 어깨에 내 머리를 기대고 아직도 못 다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봄은 나의 그대가 되어주겠고 나도 봄의 그대가 되어준다. 얼마후면 떠날 봄, 그대를 속수무책으로 그냥 보내지 않으려 한다. 그대는 다시 돌아온다고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말을 믿지 않으려 한다. 함께 하는 지금 이 시간 말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