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제각기 자기들의 소리로 재잘거리다 잠시 숨을 죽이듯 조용해 지자 그 침묵이 참을 수 없어졌다. 공허함을 참지 못하고 머리를 내밀어 창가에서 바라보니 차가운 흙덩이를 밀고 올라온 수선화가 노랗게 피어 있다. 나란히 두 줄로 길가에 선 단풍나무 잎들도 동그랗고 빨간 꽃봉오리를 아기 주먹처럼 쥐었다가 한 번에 가위바위보 하듯 내밀 준비를 하고 있다. 한 번에 팝콘 터질 듯 다가온 봄날에 대한 기대감에 들뜬 마음으로 길 쪽으로 난 문을 열었다. 그러자마자 치맛자락을 나풀거리며 집안으로 향내를 풍기며 봄바람이 성큼 들어섰다. 그리곤 내게 '정직한 저 꽃들처럼 활짝 피고, 정결한 저 새들이 지저귀는 것처럼 노래하라'라고 소곤소곤하고는 금세 사라져 버렸다. 봄의 방문으로 긴 겨울을 나는 동안 내 속에 갇힌 이야기들이 한 글자씩 활자로 다시 건강하게 되살아 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들뜨게 되었다. 내가 봄바람이 들었나 보다.
나는 왜 글쓰기를 하는가? 처음 글 책 봄의 첫 번째 글쓰기 과제를 받아 들고 어렵지 않은 질문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나만의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생각 끝에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내 삶에 대한 이유를 찾는 것과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나를 찾아가는 나만의 삶의 여정을 기록하는 것이 바로 글을 쓰는 이유가 될 것이다.
되돌아보니 기억나지 않거나 기록되지 않았던 삶의 부분 부분은 마치 멋진 영화의 한 장면의 필름이 뚝 끊긴 듯해서 허무하기까지 하다. 앞으로도 더욱 소멸되는 순간이 늘어 갈 것이 분명하다. 언젠가는 또한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도 사라질 테니 습관적으로라도 기록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존중할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싶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이가 들수록 삶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아내지 못한 기억을 기록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더 내 어깨를 짓누를지도 모르겠다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잊는 것보다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디테일하게 묘사해야만 비로소 보내 줄 수 있는 상처를 끌어안고 있어서 더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멀겋게 풍화되어 상실된 옛 기억을 다시 끌어 내보려고 안간힘을 써도 그게 쉽지가 않다. 언젠가는 풍선에 바람이 빠진 듯한 생기가 없는 눈빛과 체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두려워지기까지 하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는 안락한 순간보다는 두려움의 순간에 더 빛을 발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잡고 흐트러진 앞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리며 그간 육아로 가사노동으로 또한 틈틈이 쌓은 사회활동으로 단련된 손의 힘을 무기로 삼아 어서어서 더 많은 글을 써야만 할 것 같다. 나에게 힘이 되어 주는 진실한 작업은 글쓰기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더 확연하게 느꼈다. 얼마 전 나의 어머니가 내게 한 이야기가 있다. "너도 이제 존경받을 때가 되지 않았냐"라는 뜻밖의 말씀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어떤 순간에도 나를 존중해 주셨고 믿어 주셨다. 내가 글을 쓰겠다고 하자 응원한다는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식들이 꼬물꼬물 성장하는 모습을 글로 남기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까운 점이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삶을 존중하지 않고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기억들로 인해 힘들어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내 어머니를 포함한 내 가족들의 삶에서 있었던 사랑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다. 나는 어머니를 통해 글을 쓴다는 것이 삶에 대해 최대한의 존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침마다 창가에서 아침을 열어주는 이름 모를 작은 새의 노랫소리는 한결같이 곱고 아름다웠다. 나도 새들처럼 나에게 주어진 고유의 품성, 영혼, 지성, 인격, 관계, 삶, 사랑, 일 등을 노래 감으로 삼아 마음껏 세레나데를 부르며 봄의 페스티벌을 즐기고 싶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오열하고 있는 것들을 더 이상 가두지 말고 빗장을 열어 넓은 공간을 향해 마음껏 날도록 해주고 싶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러므로 한마디로 말하자면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요즘 같은 때에 더 많이 사랑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어서 기쁘다. 수많은 삶의 순간을 선택하면서 살아왔던 것처럼 글쓰기도 결국은 더 사랑하면서 살겠다는 고백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더 부지런히 글을 써야만 할 것 같다. 비로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서 더 사랑하는 방법을 더 터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비록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 작업이라 해도 글 쓰는 작업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사랑하려 한다'니 이 봄에 이처럼 가슴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내 그늘진 심장에도 꽃이 피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