쳐다볼 때면 얼굴을 들지 않고 눈을 치켜뜨며 말하는 버릇이 있어서인지 그녀의 말 앞에선 주눅이 든다. 대나무 같이 단단한 그녀의 어깨너머로 곧장 내 시선이 꽂혔다. 그녀 옆에서 나란히 길을 가던 또 다른 그녀도 우리 둘의 시선이 가는 곳을 재빨리 바라보았다. 갑자기 셋이서 쏜 눈총을 받은 상대방은 초록 숲 속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마치 허허벌판에 서 있다가 존재를 들킨 듯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신발 소리를 내며 그들 옆을 지나면서 우리들 중의 누군가가 공연히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쑥스러운 듯 발로 툭 차는 것이었다.
이 동네가 좁다 보니 한 다리 건너 다 알만한 처지라 몸조심 말조심해야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던가 뭐 그런 소리를 듣고 넓고 넓은 대륙, 캐나다에 이민을 왔지만 한인 사회는 좁다고 하면 세상 제일 좁은 동네이기도 할 것이다. 땅으로 치면 세상 넓지만 좁기로 치면 한없이 좁은 동네 공원에서는 그래서 우리끼리 가장 조심스럽다. 그런데 다름 아닌 그 우리끼리 마주친 것이다. 아마도 나중에 서로 사돈지간이라도 될지도 모르겠기에 공원에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산책하던 한인 노부부가 미래의 인연을 염두에 두고 화들짝 놀란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보자마자 아내가 뒤로 살쿵 물러서더니 솜을 재빨리 두툼한 남편의 손에서 빼고 있었다. "뭐 어때서" 하는 표정의 남편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금은 원망스러운 표정이었다. 나는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어르신"이란 표정을 눈으로 짓느라 눈두덩이가 눈을 내려 덮는 것 같았고 그때의 내 눈은 마치 해태 눈 같았을 것이다. 그분의 아내는 남편 뒤에 숨어서 한 걸음 뒤쳐져 고개를 숙이고 봄바람처럼 살포시 지나쳤다. 퉁명스러웠을 수도 있을 우리의 등장에 남사스러우셨을까 싶어서 미안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었는데 그 뒷모습이 투덜 거리는 것 같았다. "꽃길만 걸으소서"라는 바램으로 두분을 보내드렸다. 숲의 사슴처럼 풋풋한 부부의 봄날을 파투 내놓은 건달 같은 우리 삼총사는 어깨를 건들거리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숲길을 걸어갔다.
숨차게 한참을 걷다가 그녀가 말을 다시 이어 나갔다. "글쎄 얼마 전에 우리 부부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가족 카톡에 올렸더니 우리 부부가 손을 잡은 건지 안 잡은 것인지를 보려고 아들이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보더라고요'라고 하면서 껄껄 웃었다. 여자 친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한 아들 때문에 조금 속상하지는 않느냐는 나의 쓸데없는 질문에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에이 뭐 속상하기는요. 다 그런 거죠. 지들 잘살면 나도 좋지요" 하면서 씩씩하게 앞서 나갔다. 그녀는 늘 대장 같이 쿨하다.
1시간이 조금 넘는 8자 루트로 이 숲을 통과하다 보면 다양한 이웃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 중 반수는 반려견을 데리고 운동시키는 중이고 나머지는 또래 친구들과 많이 오는데 그래도 내 눈에 가장 들어오는 장면은 손 잡고 가는 부부들이다. 솔직히 나도 남편과 손을 잡고 걸어보려고 했지만 팔짱은 껴도 그게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른다. 서로 다른 키 차이, 보폭의 차이, 손의 땀까지도 느껴져서 그게 쉽지 않았다. 물론 이게 더할 나위 없이 핑계인 것도 맞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남편이 손을 잡자고 했으면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다. 불편한 게 대수인가 말이다. 불편함을 고사하고 잡은 두 사람의 손잡은 손을 나는 아련하게 봄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나 보다. 봄은 꽃들만 과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꽃피는 춘삼월이라지만 사람들은 시베리아 벌판에도 둘이 서로 사랑하면 봄날을 얼마든지 불러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여름 이민 온 후부터 언니 동생 하면서 늘 함께 지내는 베프들을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도 생각이 난다. 그날 우리들의 이야기 주제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난데없이 그중에 제일 막내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언니들, 요즘도 남편과 뽀뽀해? 훅 들어온 그 질문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우리들이 뭐라고 대화를 나누었던가? 잘 생각은 안 난다. 그러나 내가 아이들 앞에서 자석이 서로 당기듯 다정하게 붙어 지내는 것보다는 경건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적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게는 하였다. 우리들 셋 중 한 사람은 서로 상극끼리 만나 지지고 볶고 살면서 서로 밀어내기 바쁜데 무슨 애정표현이냐며 쿨하게 말했는데 그 말에 나를 들킨 것 같아 뜨끔하기도 하였다. 나도 이민을 올 때 캐나다에 살면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찐한 허그, 볼뽀뽀, 재미있고 농담이 섞인 부부간의 대화 등을 자연스럽게 배워서 나눌 수 있을 것이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직은 생각에 그쳤다는 것이 팩트이기도 해서 그게 세 딸들 앞에서 가장 무안하고 미안한 점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바람 뿡하고 살았는데 너희들은 바람 풍'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우기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하기야 싹싹하고 친절한 나도 신혼 때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몇 년 애교를 부려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하나도 아닌 세 딸아이들의 꿀이 뚝뚝 떨어지는 젖 냄새나는 말투에 남편은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고 나는 알아서 백기를 들고는 아이들이 하나씩 세상에 출현할 때마다 뒤로 나가 자빠졌다가 다시 일어설 때마다 무뚝뚝한 여전사로 바뀌어졌던 것 같다. 그래도 마냥 행복했던 패잔병 같은 여전사는 꿀단지들을 껴안고 여태까지 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며 한 손에는 칼자루를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살얼음판 전쟁터를 쏘다녔다. 세월은 흘러 꿀단지의 꿀을 먹고 자란 나비들과 벌들도 어디론가 자신의 꿀단지를 찾아 날아가려 하고 있다. 그제야 빈 꿀단지를 다시 채우려 꽃을 찾아 나서는 나비가 되고 벌이 되는 나를 바라본다.
코로나 전까지 현지 교회에 일요일이면 예배를 드리러 다녔는데 그때마다 목사님보다 먼저 보이는 풍경이 있었다. 남편들이 긴 팔을 뻗어 아내 뒷자리의 의자 위에 올려놓고 예배 내내 아내에게 뭔가 속삭이면서 다정하게 구는 것이다. 혹자는 서구문화가 쉽게 표현하고 꺼진다고 할지 모르지만 현재에 충실한 그들의 표현력만큼은 최고라고 말하고 싶은 때가 많았다. 예배 말씀도 결국은 "서로 사랑하라"가 중점이었으니 말이다. 꽃은 사는 남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꽃을 든 남자가 드라마의 제목만이 아닌 것이 참 좋다.
올해 이른 봄, 3월 초였던가? 퇴근하는데 내 남편도 꽃다발을 들고 들어왔다. 생일도 아니데 하면서 냉큼 받아 들었다. 거래하는 업체에 갔는데 그곳의 매니저가 "너 와이프가 있냐"라고 묻더니 가져가라고 해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 이름도 모르는 분 덕분에 거의 3주 이상 봄을 집안에 들여놓고 매일 지나치며 바라보았다. 밥을 굶어도 꽃을 살 것 같은 이곳 사람들은 정원에도 꽃을 정말 많이 심는다. 내 남편은 꽃을 사는 것이 무슨 자존심을 팔아야 되는 것처럼 쑥스러워 하지만 그래도 딸들과 함께 산 꽃을 들고 집으로 들어온 적도 많았기에 꽃이 떨어진 생일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아이들도 독립할 텐데 대마무 꼬챙이 같은 양반이 혼자서도 꽃을 사 올진 두고 볼일이다.
남이 준 꽃도 좋고
내가 만나 숲을 함께 거닐고 맛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여인들은 모두 자녀들을 2명, 3명 이상 둔 분들이었다. 뽀뽀를 하느냐고 했던 그녀도 손잡은 노 부부의 모습을 보며 호기심 천국이었던 그녀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중년 여인들이다. 어쩌면 한국은 차라리 여기보다는 더 많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마도 우리는 수십 년 전에 이민 온 그 정서 그래도 얼음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꼭 손을 잡아야 또 오가면서 볼뽀뽀를 하는 등 스킨십을 해야만 진실로 서로 사랑하는 부부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고 사랑을 하는 방법을 나는 모르겠다. 상대방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바라는 것을 바라보아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그렇다면 여자들은 꽃을 정말 사랑하는데 말이다.
봄은 4계절을 순환하면서 어김없이 찾아온다. 아쉽게도 목을 빼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더 더디게 찾아오는 것 같다. 꼭 꽃나무 아래에서 꽃비를 맞아야만 봄일까? 그것이 계절의 봄이라면 마음의 봄은 어떨까? 마음이 시베리아 벌판까지는 아니라도 살얼음이 끼어 있다면 해빙의 시기를 더 원하게 되는 것 같다. 배고픈 나비와 벌이 더 꽃을 찾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결핍을 꼭 결핍이라고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채워진다 한들 결핍이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또 결핍의 이유가 많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주눅이 들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결핍도 비교의 대상의 되어서는 안 되고 각자 몫으로 채워 나누면 된 테니까 말이다. 어쨌건 오늘 한송이의 장미가 가져다주는 핑크빛 윙크가 60살 회갑잔치, 70살 고희 잔치에서 들려주는 형식적인 생일 축하 노래보다 더 좋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흐르고 시간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함께 갈 수 있게 해 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고 표현하며 사는 것 이외에 다른 더 잘 산다고 할 수 있기는 한 삶이 있을까 싶다. 그래서 인생 선배 봄에게서 배우려고 우리는 봄길을 더 찾아 나서는지도 모르겠다.
님이 준 꽃도 좋지만
지난 늦은 봄 화원에서 사 온 장미 나무 두 그루에서 노란 장미와 분홍 장미가 피었었다. 햇살이 찬란하던 늦봄 어느 날 남편이 그중 제일 큰 분홍 장미를 꺾어 나에게 건네주었었다. 나는 지나는 사람들에게나 보여주려 했었는지 생전 손을 대지 않던 밖의 정원의 꽃나무들 모두 에서 하나씩 둘씩 꽃을 꺾어서 나만의 꽃병을 만들어 보았다. 그 꽃병의 꽃은 오랫동안 내게 봄이 되어 주었다.
오늘은 1박으로 결혼 이후 아이들을 다 떼어놓고 처음으로 우리 둘만 떠나려 계획한 봄 캠핑 날이다. 희끄무레하게 태양이 회색 구름 사이에서 얼굴을 감추고 있더니 비가 내린다. 그래도 저쪽 하늘 어딘가는 맑게 빛나니 아무래도 그쪽으로 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