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김밥을 소풍 음식으로 먹기 시작했던 때는 언제부터였을까? 소풍이라고 하면 김밥이 생각나는데 나는 김밥을 소풍 음식으로 가져가 본 기억이 없다. 김밥 대신 장떡이라고 하는 밀가루 부침전에 간장을 넣어 졸인 것을 소풍 도시락으로 먹었다. 늘 풍족하지 못했던 시골에서의 객지 생활이었기에 그때의 감정적인 허기 가 나도 모르게 찾아오기 때문인지 봄이 되면 김밥을 싸서 밖으로 나가고 싶어 진다. 물론 어릴 때 못 먹어본 김밥은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게 아직도 맛이 있다.
언젠가 나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놀아 보았느냐"라는 것이었다. 나는 "못 놀아 보았다"라고 대답했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솔직하면서도 솔직하지 않은 대답이었던 것 같다. 봄 벚꽃이 출렁거리는 거리에서 제대로 노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부지런히 다람쥐처럼 기억의 쳇바퀴를 돌리며 기억에 충전을 하다 보니 필름의 한 컷처럼 떠 오르는 장면이 있다. 수채화처럼 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하고 연한 파스텔 물감 속 밑그림은 오밀조밀 강가에 앉아 있는 소풍날의 나와 친구들이다. 한참 자랄 때의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논다는 것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원하는 것을 마음껏 허락받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창때였던 우리에게는 끓어오르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무대가 아예 없었고 봄 소풍날은 오매불망 바라던 우리들만의 무대가 커튼을 활짝 여는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그날이 되면 마치 내일이 없을 것처럼 절박하게 놀았다. 그때 우리는 열정을 도시락 삼았기에 배고픈 줄도 몰랐다.
아마도 소풍날에는 비가 오지 않게 해 달라며 난생처음 기도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학교로부터 공식적으로 '날라리가 되어도 좋다'라는 허락을 받았던 봄 소풍날은 우리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안팎으로 빡빡한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봄 여름 가을을 거치며 햇볕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시골아이들의 피부는 겨울을 지나고 다시 봄이 오면서 조금씩 핑크빛으로 뽀얗게 물이 오르곤 했었다. 여자아이들 중에는 칠공주라고 하는 소위 '잘 논다'는 아이들이 있었다. 신통방통하게 그 아이들은 무엇을 해도 촌스럽지 않고 예뻤고 교복은 늘 다림질되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또 도시에서 정학 맞고 시골학교로 기어들어온 도시 남자아이들도 있었다. 촌스럽던 우리는 그 아이들의 객살에 허리가 꼬부라지게 웃기도 했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을 웃겨주는 남자들은 여자들의 기억을 차지한다. 학교 규칙을 밥 먹듯이 어기는 불량기가 있던 아이들인데 다른 아이들보다 왜 걔들 생각이 더 선명한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소풍날 젊고 뜨거운 가슴에 싸질러진 불씨는 종종 후유증을 남기기도 했었는데 다음날부터 바로 누가 누구랑 '사귄다더라'카는 루머가 돌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세상이 다 알고 나서야 제일 늦게 알던 형광등이었다. 아마도 그 아이들은 소풍날 빛나던 하늘의 태양을 사이키 조명 삼고 카세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인 '원웨이 티켓, 칭기즈칸, 헬로 미스터 몽키' 같은 팝송을 들으며 차라리 그 노래의 주인공이 되기로 작정했던 것 같다. 소풍날엔 과학 선생님도 헐렁헐렁 나사가 빠진 것 같았는데 평소에는 과묵하던 양반이 엄청나게 망가져 흔들흔들 춤을 추시곤 했다. 그 살가운 추태가 우리들의 소풍에 풋바람을 일으켜 주었던 것 같다. 나도 아이들이 팔을 끌어 무대의 정 가운데에 데려다 놓으면 못 이기는 척 비비 꼬면서 치킨 댄스 정도는 추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흥에 겨워 머리를 까닥거리다가 영어 선생님에게 들켰었다. 갑자기 그 선생님이 나를 가리키며 아이들 앞에서 그날 제일 신나는 것은 '너 같다'며 손가락질을 하셨는데 그것은 내가 쟤들이라고 부르던 날라리 그룹으로의 신분이동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우쭐했었다. 친해질 수도 없었고 반장이었던 나의 애를 많이 태우기도 했던 아이들이었는데 말이다. 아직도 길을 가다가 비슷하게 불량한 아이들을 보면 부리나케 내 마음이 그들에게 달려가곤 한다.
섬진강 강가에서 열렸던 봄 소풍날에 드디어 해 저무는 시간이 되면 우리는 신발에 들어간 모래를 탈탈 털면서 일어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갑자기 지금까지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 신기할 정도로 궁금해진다. 잔뜩 주눅 들어 살던 그때에 열정을 도시락 삼고 마음껏 기지개를 켤 수 있었던 봄 소풍날은 나에게 몇 안 되는 추억이다. 추억을 다시 추억할 수 있는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오늘이다. 햇볕에 바래가던 뜰밖 수선화가 촉촉하게 다시 물이 오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