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렸고푸른 하늘이 흰구름 목도리를 두르고두 팔 벌려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 날에 집에만 있으면 '인생에 대한 반칙'이다 싶어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다. 딸아이가 운전면허 L자를 달고 있는데 1년간 18세 이상의 성인과 함께 타고 다니면서 도로에서 현장 실습을 먼저 해야 한다. 도로 운전에 익숙해지면 ICBC 검사관이 동승한 도로 주행 시험에 합격하고 그제야 N (New Driver) 자를 달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N자를 떼려면 1년 후 다시 검사관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차 뒤에 빨간 L (Learner) 자를 붙이고 다니면 다들 그러려니 하면서 너그러이 보아주는 것 같다.
그래도 아이와 나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간다. 아직 운전이 서툰데 초기에 충격적인 경험이라도 하게 되면 운전을 멀리할까 봐 면역을 서서히 높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러기엔 아름다운 풍경과 여유로운 도로환경인 시골 지역이 최고다. 그래서 미국과 캐나다 근처 국경지역 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저 남쪽으로 가다 보면 나오면 0 ave이기에 특별히 어려울 것도 없고 차도 별로 없으니 초보에겐 딱이다. 그럴 때 캐나다 농장의 웅장한 풍경은 덤으로 얻는다고 말하기에는 과분한 풍경이다. 아무런 근심도 없어 보이는 말과 당나귀, 라마, 양등은 볼 때마다 눈 마주칠 수도 없이 풀만 뜯고 있어 보는 이도 평온해지게 한다.
캐나다쪽의 풍경
처음에 국경 지역으로 드라이브하러 갔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삼엄한 경계까지는 아니라도 철책선 정도로 국경을 구분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야말로 깡총 뛰어넘으면 될 수 있을 정도로 국경에 아무런 경계선이 없어서 캐나다 쪽에서 어떤 고양이가 미국 쪽으로 사뿐히 넘어가는 것도 보았다. 각 가정에서 내어놓은 쓰레기통과 차량 번호판으로도 어느 쪽이 캐나다인지 미국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긴장감이 느껴져서 차에서 내려서 사진 한 장 찍을 마음이 들 지 않았다. 멀리는 눈에 덮인 웅장한 산들의 모습, 양쪽으로는 평야에 블루베리, 포도밭 등이 즐비한 풍경에 가슴이 시원해지고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이국적인 풍경을 화폭에 옮길 수 있는 재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특별히 빨간색으로 창고 등을 색칠한 경우가 많은데 이 빨간색이 자연스러운 풍경에 맛깔난 포인트가 되는 것 같다.
거대한 사이즈의 농장과 그 초원에서 풀을 뜯는 동물 등을 보면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끝에 만나는 도로가 0 Ave이다. 이 0 Ave는 캐나다의 서부 해안지역에 위치한 밴쿠버중에서도 써리와 랭리라는 도시 지역 및 아보츠포드 등을 거쳐 캐나다의 동부지역까지 쭉 이어져 있다. 국경 검문소가 곳곳에 있기는 하지만 캐나다와 미국 전체 국경 지역에 철조망을 치는 것이 불가능해서 이렇게 관리하는 게 아닌가 싶다. 국경검문소는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이 폐쇄되어 차량 검문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한가하게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이고 차량이 없어 썰렁하기만 하다.
국경 지역인 Zero, 0 Ave를 드라이브하다 보면 재미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어느 장소에 가면 가족이거나 친구들이 그곳에서 즉석 국경 상봉을 하는 것이다. 서로 대화가 잘 될 정도의 거리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다. 지난가을에 근처 공원으로 산책하러 갈 때 보니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웃간에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장소를 지정해 만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만약 미국 쪽에 못 만나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만나고 싶을 것 같았다. 아마도 포옹은 가능하지 않을까? 발만 떼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나라의 DMZ와 너무 달라서 놀았다. 이민 와서 받은 제일 큰 문화충격이다. 그래도 절대 발을 떼어서 상대방의 국토에는 발을 들이대면 안 된다는 삼엄한 룰을 지켜야 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 자유스러운 그러나 엄격한 국경에서의 규칙을 준수하는 사람만이 가능한 만남일 것이다. 곳곳에 Border Patrol이라고 쓴 차량에 탄 국경 관리자의 모습이 보였다.
풍경이 탁 트이고 아름다워 차에 탄 상태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농번기라서 기계들도 많이 움직이고 있고 어느 곳에서는 분뇨 냄새가 나기도 했다. 자유롭고 탁 트인 아름다운 공간이지만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국경이다. 긴장감이 느껴져서인지 경치가 더 아름다워 보였다. 비록 제한된 방식이지만 그렇게라도 소통할 수 있는 가족들, 친구들, 극단적인 불통 상태는 막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여도 아마도 그 국경에서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발생했을 것이다. 국경은 국경이기 때문이다.
국경 수비대 차량의 모습과 국경에서 만나는 사람이 타고 온 미국쪽 차량이 서 있다.
캐나다 쪽의 아보츠포드까지 연결된 0 Ave를 달리며 초보운전자인 딸아이는 적지 않게 긴장했나 보다. 손에서 땀이 난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운전대를 잡고 시원하게 밟으면서 왔다. 조금씩 더 0 ave에서 멀어지며 내가 사는 집에 가까워지니 마음이 평안해진다. 코로나 시대에 우울한 현실로 모두가 인내하는 이럴 때일수록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바람을 쐬며 마음에 환기를 시켜야 한다. 결국은 인내가 이길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