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아다다'

'백치 아다다'를 읽고


"아이고머니! 무슨 소린가 했더니 이 년이 동이를 또 잡았구나! 이년아! 너더러 된장 푸래든, 푸래?"


어머니는 딸이 어딘가 다쳤는지 일어나 보지도 못하고 아파하는 데 가는 동정심보다 깨어진 동이만이 아깝게 눈에 보였던 것이다.


책 본문 삽화 권인수님 그림 캡쳐


선천적으로 타고난 천치에 가까운 그의 성격은 무엇엔지 힘에 맞추는 노력이 있어야 만족을 얻는 듯했다. 시키건 안 시키건, 헐하나 힘차나 가리는 법이 없이 하여야 될 일로 눈에 뜨기만 하면 몸을 아끼는 일 없이 하는 것이 그였다. 그래서 집안의 고된 일은 실로 아다다가 혼자서 치워 놓게 된다.


"이 년, 보기 싫다! 네 집으로 가거라!"

그리고 따르는 것은 매였다. 그러나 아다다는 참아가며 아내로서의, 그리고 며느리로서의 임무를 다했다.



아이들은 아다다를 보기만 하면 따라다니며 놀렸다. 아니, 어른까지도 "아다다, 아다다" 하고 골을 올려서는 분하나 말을 못 하고 이상한 시늉을 하며 두덜거리는 것을 봄으로 행복을 느끼는 듯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래서 아다다는 사람을 싫어하였다. 집에 있으면 어머니의 욕과 매, 밖에 나오면 뭇사람들의 놀림. 그러나 수룡이만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을 수룡이 품 안에서 자고 난 아다다는 이미 수룡의 아내 되기에 수줍음조차 잊었다. 아니, 집에서 자기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수룡을 떨어져서는 살 수 없으리만큼 마음은 굳어졌다. 수룡이가 주는 사랑은 이 세상에서는 더 찾을 수 없는 행복이라 느끼어졌던 것이다.


아다다는 그저 섬으로 왔거니 조개나 굴 같은 것을 캐어서 그날그날을 살아가야 할 것만이 수룡의 사랑을 받는 데 더할 수 없는 살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이러한 살림이 얼마나 즐거우랴! 혼자 속으로 축복을 하며 수룡을 위하여 일층 벌기에 힘을 써야 할 것을 행각해 오던 것이다.


"고롬 논을 사재나? 밭이 싫으문?"


수룡은 아다다의 의견이 알고 싶어 이렇게 또 물었다. 그러나 아다다는 그냥 힘없는 고개를 주억일 뿐이었다. 논을 산대도 그것은 똑같은 불행을 사는 데 있을 것이다. 돈이 있는 이상 어느 것이든지 간에 사기는 반드시 사고야 말 남편의 심사이었음에 머리를 흔들어 댔자 소용이 없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근본 불행인 돈을 어찌할 수 없는 이상엔 잠시라도 남편의 마음을 거슬림으로 불쾌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아는 때문이었다.


짧은 봄밤은 어느덧 새어,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처량히 들려온다. 밤이 벌써 새누나 하니 아다다의 마음은 더욱 조급하게 탔다. 이 밤으로 그 돈에 대한 처리를 하지 못하는 한, 내일은 기어이 거간이 밭을 흥정하여 가지고 올 것이다. 그러면 그 밭에서 나는 곡식은 해마다 돈을 불려 줄 것이다. 그때면 남편은 늘어가는 돈에 따라 차차 눈이 어둡게 되어 점점 정을 멀어만 가게 될 것이다. 그다음에는? 그다음에는 더 생각하기조차 무서웠다.


그러고는 일찍이 아침을 지어먹고 나무 새기를 뽑으러 간다고 바구니를 끼고 바닷가로 나섰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깊은 물속에다 그 돈을 던져 버리자는 것이다. 솟아오르는 아침 햇발을 받아 붉게 물들며 잔뜩 밀린 조수는 거품을 부걱부걱 토하며 바람결조차 철썩철썩 해안을 부딪친다.


어서 물속으로 가라앉든지, 그렇지 않으면 흘러 내려가든지 했으면 하고 아다다는 멀거니 서서 기다리나, 너저분하게 물 위를 덮은 지전 조각들은 차마 주인의 품을 떠나기가 싫은 듯이 잠겨 버렸는가 하면 다시 기웃거리며 솟아 올라서는 물 위를 빙글빙글 돈다.


"야! 야! 아다다야! 너, 돈, 돈 안 건새핸? 돈, 돈 말이야 돈, 돈....!"


청천의 벽력 같은 소리였다. 아다다는 어쩔 줄을 모르고 남편이 이까지 이르기 전에 어서어서 물결은 휩쓸려 돈을 모두 거둬 가지고 흘러 버렸으면 하나, 물결은 안타깝게도 그닐그닐 한가히 돈을 이끌고 흐를 뿐, 아다다는 그 돈이 어서 자기의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것을 보기 위하여 그닐거리고 있는 돈 위에다 쏘아 박은 눈을 떼지 못하고 쩔쩔매는 사이, 마침내 달려오게 된 수룡의 눈에도 필경 그 돈은 눈에 띄고야 말았다.


수룡이는 마지막으로 돈을 잃고 말았다고 아는 정도의 물결 위에 쏘아진 눈을 돌릴 길이 없이 정신 빠진 살마처럼 그냥 그냥 바라보고 섰더니, 쏜살같이 언덕 켠으로 달려오자 아무런 말도 없이 벌벌 떨고 섰는 아다다의 중동을 사정없이 발길로 제쳤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아다다는 가꿉선 언덕을 떨어져 덜덜덜 굴러서 물속에 잠긴다. 주먹을 부르쥔 채 우상같이 서서 굽실거리는 물결만 그저 뚫어져라 쏘아보고 섰는 수룡이는 그 물속에 영원히 잠들려는 아다다를 못 잊어함인가? 그렇지 않으면 흘러버린 그 돈이 차마 아까워서인가?


짝을 찾아 도는 갈매기 떼들은 눈물겨운 처참한 인생 비극이 여기에 일어난 줄도 모르고 "끼약끼약"하며 흥겨운 춤에 훨훨 날아다니는 깃 치는 소리와 같이 해안의 풍경만 도웁고 있다.






내 안에도 아다다가 있다. 그러려니 하면서 지냈던 시절이 천년 세월처럼 길었고 내 안의 아다다를 느끼기 시작한 이후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왜 내가 그래야 했는데, "왜, 왜, 왜!"


갑자기 아다다가 달라지기 시작하면 누가 제일 놀랄까? 아마도 아다다 그 자신일 것이고 누구보다도 아다다에게 똑같은 것을 기대했던 사람들이다. 그것이 때론 사랑하는 가족이며 친구들이고 직장 동료들이기도 하다. 아다다는 바뀌어 가는데 아다다의 사람들은 그녀가 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런 상황 속에서 아다다가 살아갈 방도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나는 달라졌다. 이제 그런 식으로는 안될걸"이라고 함성이라도 질러야 할지 모르지만 마치 바위에 계란 치는 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다다가 포기할 것인가? 예전의 아다다는 물속으로 거품을 물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아다다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 아다다는 용기를 낼 수 있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렇게 아다다는 날마다 새로워진다.


아다다가 잘 살아가려면 말하는 법을 새로 배우는 것이 우선 일 것이다. 방치하지 않고 누군가가 도와주었더라면 그런 시스템이 있는 사회였더라면 그렇게 자신에게 둘러싼 환경에 의해 무참하게 희생되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다다는 이제 제대로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남자, 여자 따질 것 없이 '백치 아다다'를 읽었다면 무엇을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을지 알아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인 희생, 누군가의 앞에선 비교당할 수밖에 없고 물질 만능 시스템 앞에서는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 안의 아다다, 그녀의 눈동자를 기억하려 한다.


글이라는 것이 차라리 읽지 않으면 그냥 지나갔을 수도 있을 트라우마, 상처를 더 기억나게 한다. 마치 강물 위에 배가 지나가며 부유물을 물 위로 끌어올리는 것처럼 저 무의식의 밑바닥에 깔렸던 온갖 감정의 잔재들을 느껴지게 한다. 그것들이 퇴적된 채로 쌓여 있기만을 바란다면 모를까 어떤 모양으로 화석이 되어 가고 있는지 알아야겠다는 마음은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겠다.


'백치 아다다'의 아다다는 결국 물에 빠져 죽어 간다. 살가운 사람 하나 없이 오로지 인격이라기보다는 물건처럼 존재했던 그녀는 죽었다. 인간다운 대접이라고는 일 푼어치도 없이 받지 못하고 떠났다. 그 시절에도 물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사람이 물질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은 살갑고 정다운 그녀의 인격보다는 그녀가 얼마만큼의 인간적인 (적어도 여기에서는 밥벌이를 하거나, 아니면 밥벌이의 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가가 중요했다. 그녀는 부지런한 여자였으나 가진 것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된 사람이고 난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난무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회라 백치 아다다는 어디서든 존재할 것이기에 먹먹해진다.


SNS의 발달로 사돈의 팔촌뿐만이 아니라 먼 지구 상대편의 사람의 사정까지도 시시콜콜 알 수도 있는 사회가 되었다. 정신 줄 잘 잡지 않으면 누구라도 백치 아다다를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물질만능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수시로 기다란 자와 저울을 가지고 들이닥치려 한다. 그렇기에 그러한 존재에 달랑 들려서 내 체중과 키를 재듯 나를 재지 못하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 같다.


'백치 아다다' 그녀처럼 살지 않으려고만 해서 그녀를 기억해야 할까? 아니다. 아다다가 죽어 갈 때 흥겹게 그녀의 머리 위를 "끼약끼약" 하며 날아다니던 갈매기를 기억하는가. 갈매기처럼 덩달아 구경꾼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스스로 깨고 장벽도 무너뜨리며 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