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에 쌓인 밴쿠버의 미션 지역 겨울산을 찾았습니다. 겨우 반나절 짧은 시간이지만 기다려지는 시간입니다. 안개에 둘러싸인 거대한 능선이 신비하고도 근엄했습니다. 산새들의 둥지를 품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길 양옆으로 늘어서 지나갑니다. 가끔씩 산 사나이들이 탄 ATV, 스노모빌, 트럭이 지나갈 뿐 이국의 산은 낯섭니다. 영상 8도인데 으슬으슬 뒤통수가 서늘한 것은 날씨 때문만은 아닌가 봅니다. 다람쥐, 산새들은 어디에 숨어서 이 겨울을 나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산이 있으니까 간다”는 멋진 말 대신 산에서만 먹는 라면 때문에 행복해집니다. 잘 왔다는 말은 없어도 언제나 너른 길을 내어주는 겨울 산은 왁자지껄 말도 안 되는 뉴스가 넘실거리는 세상과는 너무도 다릅니다. 눈이 눈물이 되어 흐르는 소리에 먼지 같은 쓸데없는 걱정과 염려가 다 부질없어집니다. 저 맑은 물에 다 녹아버립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다 흘러갑니다.
겨울 산에는 새소리도 그 흔한 다람쥐들의 움직임도 없었지만 고드름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 벅찼습니다. 남들과 다른 어떠한 풍파를 겪었길래 저리 고드름으로 남아 바위 끝에 매달려 햇살을 기다리고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고픈 말이 많았겠지요. 힘든 인생길을 가는 몇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제일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사연 없는 사람이 없고 소설 아닌 인생이 없습니다.
일주일 후 다시 찾은 미션의 겨울산은 조금은 두터운 겨울눈 옷을 벗은 듯 가벼워 보였습니다. 눈이 녹아 질척한 길 때문에 차에 진흙이 튀어 엉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야의 위쪽으로는 안개가 흰 날개 옷을 입고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는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그녀들의 찬란한 춤사위 틈에 언 듯 보이는 하늘빛을 담으려고 눈을 크게 떠 봅니다. 멀리 보이는 하늘은 태평양 남쪽 나라 어느 섬의 바다처럼 비취 빛이었습니다. 어느덧 환해진 하늘, 구름을 비집고 다가온 햇살이 반가워 솜사탕을 먹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사실 묵묵부답인 겨울산은 삶에 대한 대답도 주지 않고 혼자서 이 세상을 떠나버린 아버지처럼 냉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달려간 것은 인생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러 간 것이었을까요? 그런데 답이라는 것이 뭐 따로 있겠습니까? 고드름, 눈, 길, 나무, 산, 하늘. 산이 보여준 그 모든 것이 답이었겠지요. 모든 질문에 답을 해야만 잘 사는 것이라고 알았고 살면서는 열심히 답을 찾아서 빨라 보이는 길로 나섰었지요. 그동안 다닌 길이 얼마이며 버린 시간은 또 얼마입니까? 그런데 답이 있었습니까? 종로에서 뺨 맞고 겨울산에 푸념해도 겨울 산은 대답 없는 대답을 안겨 줍니다. 집에 돌아와서 며칠이 지나서야 겨울산이 내어준 품이 답안지였나 싶습니다. 뒤늦은 감사와 행복이 물밀듯 밀려옵니다.
산에 가는 것은 또 이것 때문이기도 합니다. 캠프 화이어에 대한 로망입니다. 막상 거금을 주고 산 도끼가 시원치 않아 나무를 통으로 때려니 불이 잘 붙지 않았고 연기 때문에 매캐했습니다. 입은 옷에 스며든 연기만으로 굴뚝에 수십 번 들어갔다 온 것 같습니다. 나무가 젖어 겨울에 불을 피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불을 피울까? 부채질하면서 시간도 맛있게 굽는 것이지요. 드디어 본격적으로 불이 오르고 불춤이 시작되면 그때가 하이라이트입니다. 불춤 감상 파티가 벌어지는 것이지요. 울화로 맺혔던 것들이 재가 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눈으로 오해가 타버리는 것을 목격하는 것이 카타르시스적인 경험을 하게 해 주는 것일까요? 얼굴을 바싹대고 이왕이면 원적외선까지 쐬리라 욕심을 부리다가 문득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제야 옆에 있는 그가 보입니다.
장난스레 “누구세요?”라고 물었더니 “여기는 어디인가?”라며 젊었을 적 에피소드를 들려줍니다. 그땐 술을 많이도 마셨나 봅니다. “여기가 어디인가?” 라니요.
근처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똑똑 분질러서 불에 포개 얹습니다. 원래는 불 쏘시게 할 것들이 먼저 들어간 후 그 위에 장작을 얹어야 하는데 남편은 반대로 불을 피웁니다. 어릴 적 부뚜막에 불을 많이 때본 경력을 무시하는 그 고집통이 천년만년 갈까 봐 겁이 납니다.
장작을 윷가락처럼 나란히 놓아야 불이 소실되지 않고 잘 탄다고 주장을 하는데 틀렸습니다. 몰래 부지깽이로 뒤적이다가 들켜 실랑이를 합니다. 아마도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살았더라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하면서도 그냥 하자는 대로 합니다. "그래요. 나는 알고 있어요. 알면서도 그런다는 것을… 언젠가는… 언젠가는…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돌아올 때 눈 녹은 안개가 너무나 자욱해서 정말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빨리 달리는 남편과 또 실랑이를 했습니다. 안개등을 어떻게 켤 줄 모르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과속이라니, 길이 안 보이는데 아주 잘 보인다고 하니 허 참입니다.예전엔 누구 말이 맞는지 그게 중요했었는데 이제는 아닙니다. 반은 포기이며 반은 이해입니다.
겨울산을 내려오는데 뒤통수가 쓸쓸했습니다. 산에 갈 때는 사람들과 같이 오면 좋겠다고 혼잣말로 했습니다. 용케 듣고는 우리끼리도 좋다는 남편, 더 나아가 혼자서도 오고 싶다는 남편, 그게 반대로 말하려는 평상 시대로의 고집인지 아니면 진실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다릅니다.
불평도 습관인지라 이제 그만하고 겨울 산의 풍경을 보여주어 고마웠다는 말을 남편께 전합니다. 산 넘어 또 산인 우리지만 그렇기에 단편소설 인생이 장편소설이 되었습니다.
어둠이 깔리고 너무 조용해 두려움이 몰려올 때 남편이 DJ를 자처했습니다. 나훈아의 '고향역'이 그렇게 달달한 노래인지 몰랐습니다. 이장희의 '편지', 솔개 트리오 '아직도 못다 한 사랑' 노래도 들었습니다. 이역만리에서 듣는 노래라 더 간절했나 봅니다. 예상치 못한 남편의 DJ노릇에 맺힌 원망이 조금은 녹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이는 모를 것입니다. 당신이 일한 시간의 분량보다 그날 밤 차 안에서 들려준 음악 몇 곡의 효율성이 훨씬 더 컸다는 것을. 가장의 책임감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는데 그때는 안타깝고 짠했지만 음악을 틀어주는 당신의 모습은 프러포즈를 하는 것 같더란 말입니다. 안타깝고 짠한 남편보다는 로맨틱한 남편이 더 좋은지 하마터면 “자기”라고 부를 뻔했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소리, 여보보다 더 가까운 소리 “자기”
그렇습니다. 겨울산, 당신은 우리에게 셀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행복한 시간을 주셨네요. 우리가 밟았던 길이 기억이 납니다. 물안개가 구름으로 변신하던 화려한 연극무대의 순간, 불꽃같은 춤을 추며 둘 사이에 있던 유리벽을 녹여주던 그 순간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산 사나이가 이렇게 말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