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my hiding place
당신은 나의 은신처입니다.
감이 출렁출렁 바람에 휘청거리면 오렌지색으로 가을이 깊어졌다. 너른 들판에서 벼를 베고 탈곡을 해도 쌀독에는 쌀이 찰랑거린 적이 없었다. 마치 구멍 난 독에 부은 것처럼 1남 6녀의 뱃속을 가득 채울 양식 거리는 어디론가 새곤 했다. 김치를 잔뜩 넣어 멀겋게 끓인 김치죽이 펄펄 끓어도 식사 때가 즐겁지 않았다. 돌아서면 꼬르륵 소리가 나곤 했다. 오렌지 색감은 그림의 떡처럼 하늘을 배경으로 수채화의 오브제처럼 남의 것 같았다. 목구멍으로 넘겨 볼 수 없던 감은 가을이라는 단어로만 관념처럼 남았다. 외할머니네 감나무는 외사촌들의 꿈만 중요하다는 듯 그들에게만 풍성했다. 밀려난 꿈은 서럽고 억울했기에 더 멀리 날아가고 싶어 했다. 아주 멀리 더 멀리, 그때를 아주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로 먼 곳으로 가고팠던 것이다.
아버지의 처갓집 더부 살이 10년간 집안은 여기저기에 지뢰를 깔아 놓은 것 같았다. 종종 오밤중에 터지기도 하던지라 무엇을 먹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뭐든 먹으면 체하곤 했다. 그래도 우리 형제자매들은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운 적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의 쟁쟁한 싸움보다는 빈도가 훨씬 덜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부모님이 링에서 서로 말로, 때로는 육탄전으로 싸우는 것을 바라보는 구경꾼이었다. 구경꾼이지만 누군가의 편을 들 수가 없었다. 누가 이기든, 지든 피가 살짝 배어 나오기도 하고 철철 흐르기도 하는 내상을 불러왔다. 그래도 몸속 깊이 생긴 상처였기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저냥 넘어갔다.
5번째로 태어난 쟁쟁한 성격의 경이는 뭐든 허투루 넘기는 적이 없었다. 애초에 날 때부터 지랄 탱이였다고 엄마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툭하면 삐지고 원만한 형제들 가운데에서 유별난 아이로 취급을 받았다. 경이에게 숨을 수 있는 곳은 빈 이웃집이었다. 모르는 척하다가도 식사 때가 되면 토라져 없어진 아이를 찾으러 우리는 그 집을 뒤졌다. 깜깜하고 어두운 빈집에서 훌쩍거리며 자신 안의 내상을 눈물로 핥아주고 있었다. 경이는 엄마 아빠에게 심판처럼 굴었다. 왜 싸우는지, 왜 그러는지 묻고 따졌다. 그러기에 아빠에게는 '베라 먹을 년"이라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대들다가 부지깽이에 맞지 않으려고 경이는 이웃에 있던 빈 초가집으로 옷장에 숨는 것처럼 달아났다.
아이들은 곧잘 숨어서 자신을 돌아보거나 보호하기도 한다. 그럴 때 찾는 장소는 옷장이다. 경이에게 그 빈집은 아주 크고 넓은 옷장이었던 것이다. 산골 분지의 7개밖에 없던 집들 중에 유일하게 빈집이었던 그 초가집이 경이에겐 힐링의 장소였다. 현재 경이는 우리 형제자매 중에서도 가장 부지런하고 상식에 밝아 어리벙벙한 언니와 동생들의 온갖 대소사를 진두지휘한다. 내가 알기로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아내이고 엄마, 그리고 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가끔은 내상이 깊은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도 하는데 그것은 그 아이를 붙잡아 주신 분이 계셨기 때문이다.
옷장 안에서 울던 경이는 크고 난 후 하나님 앞에서 울어가며 억울했던 일에 대해 일러바치곤 했다. 매일같이 드리던 새벽기도 때문에 늘 목이 쉬어있었다. 초가집 안에서부터 만나 준 하나님은 그 아이에게 육신의 부모님을 넣어선 크고 위대한 아버지였다. 경이에게 옷장처럼 숨을 곳이 되어 주었던 그 초가집, 그래서인지 나는 아무리 낡은 흉가처럼 보이는 초가집이라고 해도 특별하게 보인다. 민속촌에 들렀다가 으리으리한 대궐집보다 박 덩어리를 이고 있는 담장에 둘러 싸인 초가집 앞에 오래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짚으로 만들어 비가 오면 샐까 봐 비닐로 동여 묶어야 했던 있었던 시골 초가집, 그 초가집은 경 이뿐 아니라 아직까지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쉼터가 되어 주었다.
우리에게 옷장은 사실 뒤주 함이었다. 그 뒤주함에 옷이 쌓여 있으면 옷의 팔을 잡고 잡아당겼다. 그러면 쭈욱 하고 늘어나며 끌려 나오는 것이 나의 옷이었다. 사실 내 옷이라는 것이 따로 있었나 싶다. 모두 돌려 입고 나누어 입고 때로는 악다구니를 부리며 옷 하나를 가지고 싸웠다. 어린아이가 들어가 쉴 수 조차 없는 작은 뒤주함을 경이는 옷장으로 여기지 못했다. 그 대신 이웃집의 초가집이 대신 손을 내밀었다. 그 지난했던 순간들이 잊혀 세부적으로 기억이 안 난다. 뭔가 아주 기분 나빴던 기억뿐만이 아니라 좋았던 기억조차 사라졌다. 어쩌면 내상을 치료하고 싶어서 기억을 셧다운 한 순간에 오롯이 기억하고 싶던 순간마저도 깡그리 지워 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경이에게 옷장처럼 숨을 곳이 되어 주었던 그 초가집, 그래서인지 나는 아무리 낡은 흉가처럼 보이는 초가집이라고 해도 정겹다. 짚을 엮어 만들어 비가 오면 샐까 봐 비닐로 묶어야 한 적도 있었던 시골 초가집들, 그 초가집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우리가 그래도 그날들을 극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때로는 아무 이유도 묻지 않는 물질 같은 대상이 우리를 한없이 너그럽게 대해 준다. 옷장에 대한 추억에 대해 경이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야 이야기이지만 그때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위로를 보탠다면 울어 버릴지도 모를 내 동생이기에 조심스럽고 가슴 아프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 앞에서 토해내었다고 해도 그때 너를 보호해 주지 못했던 언니가 할 일은 하고 싶다.
아주 아주 멋진 자개가 박힌 옷장이 요사이 있을까? 진주가 박혀있는 세상에서 제일 괜찮은 제일 예쁜 제일 비싼 옷장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수경이에게 주는 노래입니다.
YOU ARE MY HIDING PLACE
*사이의 글님 온라인 글쓰기 모임 1월의 키워드 옷장, 위로 등의 어휘로부터 출발한 글의 초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