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토리텔러 레이첼 Mar 17. 2023

당신께 추억을 돌려드려요

감사함으로

"당신께 노래 돌려드립니다. 하늘에 있는 별을 따 달라고 해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할 수만 있다면"


나를' 베이비'라 부르는 분들은 70세에서 90세 사이의 노인들이다. 나보고 몇 학년 몇 반이냐고 하시기에 '5학년 몇 반'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베이비라고 하시며 너무너무 젊어서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덕분에 갑자기 수십 년 어려져 마음에 노란 개나리꽃을 피웠다.


액티비티 시간에 라틴 댄스를 배웠다. 강사는 90세 되는 노인 댄서, 아리랑도 함께 추었다. 내가 뭣도 모르고 룸바 스텝에 웨이브를 마구 넣을 때 90세 어른이 말했다. "처음부터 너무 흔들면 안 돼. 8자 모양으로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레 몸은 리듬을 타게 되니까"


양로원에 봉사를 하겠다고 한 이후부터 내 인생의 결이 달라졌다. 매일 하던 일에서 벗어나 오히려 새로운 일을 경험한다. 꿈도 못 꾸던 일이다. 내가 양로원에서 하는 일은 오고 가다가 홀로 계시는 분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고 함께 액티비티에 참가하는 것이다. 당구도 배웠다. 당구가 그렇게 재미있는 게임인 줄 처음 알았다. 내가 가는 양로원은 한국어, 영어를 쓰는 분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20여 년 전 밴쿠버의 어느 양로원에 봉사를 간 적이 있다. 초보 봉사자다 보니 일요일을 배당받아 교회 가는 시간과 겹쳐 오래 하지는 못했다. 그때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나눠드리곤 했다. 어느 날 매니저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어느 남자 노인과는 꼭 2미터 이상 거리를 유지하라고 했다. 갑자기 훅하고 주먹을 날린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어느 분이 과자를 달라고 하길래 무심코 드렸는데 그분의 경우 과자를 잘 넘기지 못하는 분이어서 잘라 드려야 했던 것이다.


지난달 20년이 지나 다시 양로원에 갔을 때였다. 내가 처음 한 일은 H라는 노인의 말동무가 되는 것이다.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때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식당의 커다란 식탁에 혼자였다. 원래는 K라는 다른 노인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 어른을 찾지 못했다. K 어른은 아들 셋이 있는데 당신을 양로원에 보냈다고 분노하며 우울해하는 분이라고 했다. H 노인은 조용한 이미지에 한눈에 보기에도 전직으로 교사를 지낸 분이었다. H 어른은 자신의 이름이 남자 이름이라며 부끄럽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기에 그분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말속에 당신의 자녀보다도 제자들을 위한 마음이 절실했다. 다음에 또 그분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나에 대한 기억은 없는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학창 시절, 교사로서 바라보던 어느 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드러났다. 진학을 하지 않은 그 제자가 너무 아까운 인재였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아마 소중한 아이들과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먼 무의식에 넣고 꺼내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때 양로원 스태프들이 힐긋 힐긋 쳐다보곤 했다. 알고 보니 H 어른은 중증 치매를 앓고 계셨다. 일상에서 하는 일들은 그런대로 하시지만 인지적 기억력은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분이 누군가와 기운차게 이야기를 한 것을 처음 본다고 했다. 나는 그분이 치매라는 선입견이 없었다. 그렇기에 처음 한두 번 이야기를 나눌 때 오히려 그분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더군다나 양로원 어른들이 베이비라고 불러주는 덕분에 내 목소리에 애교까지 덧입혀졌었다. 그런 나를 귀여워해 주셨다. 듣고 보니 H 어른은 양로원 스텝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분이라고 했다. 바로 옆방에 있는 백인 할아버지를 자꾸 귀찮게 하신단다.


H 어른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노래를 불렀다. "Beautiful beautiful Blue eyes"라는 노래였다. "I will never love brown eyes again" 이 노래에 담긴 스토리도 풀어 주셨다. 로맨틱한 소녀감성을 가진 H 어른의 얼굴은 소녀 같았다. 나는 그 노래를 처음 들었다. H 어른은 푸른 눈을 가진 남자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이다. H 어른이 이 노래를 부를 때의 얼굴이 기억이 난다. 치매를 앓고 있다고는  수 없는 얼굴이었다. 인지적인 것과 영적인 부분은 다르다. 이분의 영혼은 치매 걸린 자신을 사랑스럽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숙연해졌다. 이 세상의 섭리를 내가 감히 어떻게 알겠는가? 한 개인의 소중한 삶은 우리가 보는 시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치매 걸린 어른의 인격은 어떻게 소중하게 보호해 드려야 할까? 만약 나중에라도 민망한 이야기를 하시게 되면 이야기를 중단하고 그분의 품격을 지켜드려야겠다. 엉뚱한 생각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 역시 치매가 가장 두렵다. 치매보다 치매 걸린 내가 어떤 일을 할지 몰라 두려운 것이다. H 어른의 "Beautiful Blue Eye"에 대한 로망을 생각하니 백인 할아버지에 대한 해프닝이 이해가 되었다. 할머니가 너무 사랑스럽고 마음이 애잔해졌다. 우리 엄마도 약간의 치매가 진행 중이라고 하니 더 그랬다. H 어른은 다음에 뵐 때 보니 진주 구슬 모양의 비즈가 박힌 회색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내가 집으로 갈 때 유치원생처럼 두 손을 좌우로 흔들며 나를 배웅해 주셨다. 나도 유치원생처럼 웃었다.


일주일 만에 다시 H 어른을 뵐 수 있는 양로원 봉사시간이 돌아왔다. 그런데 결국 할머니는 찾지 못하고 다른 미션을 준비했다. 내가 일주일 전에 받은 미션은 양로원 어른들께 팝송과 스토리텔링을 하라는 것이었다. 준비하는데 다른 일을 하던 때보다 훨씬 더 기대가 되고 흥분까지 되었다. 그리고 막연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가졌다. 이게 웬 느낌일까?


나는 어른들께 "오늘은 우리들의 러브 스토리를 쓰는 날"이라고 했다. 자식, 남편, 이웃사랑하느라 자신을 돌볼 수 없었던 어르신들께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젠 우리가 우리를 사랑해야 할 때라고 했다. 가만히 앉아 계시는 것은 자신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며 20분마다 일어서시길 권고 드렸다.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이용한 체조와 호흡을 진행 했다. 남성 노인도 있었는데 'Finger Breathing' 같은 호흡을 할 때 정말 열심히 따라 했다. 숨을 밖으로 내쉴 때 소리를 내시도록 말씀드렸다. "아" 하고 몸속 마음속에 있는 화를 다 털어 내시도록 했다. 끝났을때 내게 일부러 와 '고맙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치아가 빠져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 가슴이 미어졌다. 아빠가 평소 자주 입던 누런색의 잠바를 입고 계셨다.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10여 분이 넘는 어른들 앞에서 재롱을 부렸다. 팝송은 두 곡을 준비했다. 영어를 쓰는 어른은 2분밖에 없었다. 준비한 노래는 "Edelweiss, Sad Movie"였다. 다소 과장된 큰 목소리와 제스처를 넣어 진행하다 보니 감정이입이 되었다. 엄마는 평소 나보고 내게 어떤 종류의 재능이 있다고 했었다. 엄마가 말하던 그 "끼" 이런 것이었나 싶었다. 영화 Sound of Music에 대해서도 나눴다. 마리아와 트렙 대위의 사랑 이야기는 더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에델바이스를 같이 부르며 이 노래는 조국에 대한 사랑이 담겼다고 했다. 1시간밖에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여운이 남았었나 보다. 어느 분은 교실 문을 나서면서 발 스텝을 넣어 가볍게 가셨다. 그리고 다른 한 분은 오랫동안 잊었던 좋은 추억을 생각나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하셨다. 그랬다. 이분들께는 소중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감성적인 작업이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뭔지 모를 강렬한 느낌에 휩싸였다. 밤에는 엄마 생각이 절실해 전화를 드렸다. 나를 영원히 베이비로 부를 우리 엄마와 처음으로 노래를 같이 불렀다. 엄마는 1시간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목이 메어서 다음에 또 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가 노래를 하고 싶어 하신다. 조만간 전화를 또 드릴 것이다. 아니 줌으로라도 연결해 엄마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유튜브를 가족만 쉐어하는 영상으로 띄우고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녹화하고 싶다. 아직 컴퓨터가 없는 엄마, 컴퓨터 먼저 구해야 한다. 마음이 바쁘다. 엄마가 아는 노래가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엄마는 하늘에 있는 달을 따달라고 나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노래를 함께 부르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글은 용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