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등성이마다 계곡마다 바람은 달리 분다. 가까운 거리면서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게 다르다. 각기 다른 상황을 겪는 사람들처럼 부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팔랑팔랑 까부는 정도마저 다르다. 한 이파리의 흔들림도 같지 않다.
먼저 정착한 곳에서 어닝까지 설치하고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런데 바람 때문에 제대로 캠핑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구름은 제각기 흰 머리카락처럼 흩날리며 멋있는 모양새를 연출했지만 바람이 그토록 부는 곳에서 잠을 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후 어디론가로 남편이 사라졌다. 말없이 가버린 후 30여분이 지나도 오지를 않았다. 펄럭이는 깃발처럼 온 세상은 흔들리고 있었는데 내 마음이 고요할리 없다. 더군다나 남편이 잠시라도 사라지고 보니 그 상황은 낯설었다. 만일 나 혼자 여기서 살아야 한다면 하는 가정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왔다. 집에서 된장찌개를 끓이며 차고로 들어오는 남편 차의 바퀴소리를 기다렸건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늘 시간이 되면 돌아오던 남편인데 언젠가는 못 돌아오는 시간이 있겠네? 그런 헤어짐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런 것을 예상하는 것이 당연한 나이가 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싶으니 "아이쿠나" 싶었다. 그 낯선 감정. "어떻게 생겼더라, 어떤 목소리였더라?" "남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30년도 더 오래 함께 살았는데.....
남편은 늘 나를 훈련시키는 해병대 교관 같았기에 나는 긴장하고 살았다.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며 자질구레한 일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 아주 멀리 빨리 가야 하는데 열쇠가 없어 허둥대면 같이 찾아 주려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늦거나 말거나 알아서 하라고 멀뚱멀뚱 쳐다보곤 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 열쇠를 바닥을 기어서라도 찾아 운전을 하며 내 편이 아닌 철저하게 방관적인 남편을 향해 아랫니를 깨물었다. 그렇게 살갑지 않던 남편인데 나는 지금 뭐 하는 것일까? 미워해야지 맞는데 그가 필요해서 인지 아니면 좋아서인지 그를 이렇게 기다린다. 내 마음은 남편을 향해 오랫동안 시베리아 벌판보다 더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아이들만 다 자라면 그때는 용서하지 않겠어" 그러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나는 그때의 심정이 아득하고 남의 일 같기도 하다. 머릿속에 지우개라도 있는 것처럼 이제는 기억도 잘 안 날뿐더러 화가 나지도 않는다. 다만 왜 그렇게 내가 힘들었는지 그 기억만이 선명하다. 이런 심정을 억울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혼자서 꽹과리 치고 혼자서 상모를 돌리며 온갖 마당극을 펼쳤는데 맥없이 모든 상황이 끝난 느낌이다. 그러기에 나는 내가 더 우습다. 미워할 수도 없는 존재를 그토록 미워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니 내가 미워했던 실체는 무엇이었던가? 상대도 상대지만 나는 나 자신이 안타깝다. 감정의 주도권을 다 내어주고 이끌려 다녔다. 보기 좋게 KO패 당하는 상황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극적인 느낌으로 치달을 때 나를 혼란스럽게 하던 그러나 지금은 달리 보이는 남편이 멀리서 보였다. 바람에 물결치듯 흔들리는 잡목들 사이에서 보일 듯 말 듯 가려진 남편이 걸어온다.
언제나 변함없이 남처럼 나를 대했던 남자. 기억이 날 정도로 내 어깨를 감싸고 위로라고는 해 준 적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 대신 30년 동안 거의 쉴 틈 없이 돈 봉투를 가져와 우리 식구를 먹여 살린 사람이다. 생일날 꽃다발 하나 사 오지 않아도 화내지 않을 만큼 담대하고 무심해진 나라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나는 매일 거꾸로 감사함으로 행복해졌다. 감사를 매일 되네이다 보니 이젠 퇴근할 때 휘청 휘정할 정도로 저 힘겨운 세상과 싸우고 견디며 살아온 남편에 대해 긍휼함을 더한 감사가 절로 나온다.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가엾고 불쌍한 내 남편을 예전과 다른 눈빛으로 기다린다. 내가 언제 이런 심정으로 저 사람을 기다려 본 적이 있었던가?
Mission에 있는 소방헬기 순직자 Ben을 기념하는 캐빈, 남편은 자신의 희생도 기억하고 싶은 것일까?
바람이 잔잔한 곳을 찾았다고 하기에 남편 말대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사실 우리가 가려던 곳은 산 정상 부근에 있는 캐빈이다. 지난봄 내내 시도했으나 눈 때문에 올라가지 못한 곳인데 네 번째로 그곳을 찾은 것이다. 남편은 유난히 그곳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4월 7일이지만 눈이 녹지 않아 차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눈길을 헤치고 혼자 캐빈에 다녀오겠단다. 무전기 사용법을 나에게 알려주고 혼자 비를 맞으며 혼자 캐빈으로 올라간다. 바람이 휭휭하고 불지만 차의 앞유리창에 부딪치는 빗방울 소리 때문에 견딜만했다. 무전기 건너편으로 "들려? 들려?" 하는 남편의 목소리는 흥분한 소년의 목소리였다. 남편이 찾은 캐빈은 Ben이라는 헬기 조종사가 약 30여 년 전에 산에 난 불을 끄다가 순직한 것을 기념하는 장소였다. 그가 사망한 나이는 33살이었다. 풍족한 7남매의 막내였던 그는 부모가 운영하는 농장을 사랑했던 아내와 아이들이 있던 가장이었다. 떠난 후에도 그는 누구나 들러 쉬고 또 잠도 잘 수 있는 캐빈을 남겼다.
혼자 차 안에 앉아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아무도 오지 않는 이러한 낯설고 비 내리는 곳"을 찾아 헤매는지 생각했다. 저 사람이나 나나 불편한 것을 찾아다닌다. 새로운 것, 어떤 결핍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주말에 집에 있으면 좀이 쑤신다. 늙어가면서 취미가 같다는 것은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수명이 길어져 수십 년을 같이 살아야 하는데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며칠 전 어느 노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양로원에서 봉사자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레크리에이션 강사'처럼 내 역할을 만들어 가고 있다. 호흡, 명상, 체조, 아트활동, 노래 부르기, 춤추기 등 우리가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해 녹녹지 않게 무뚝뚝한 시간과 사이좋게 노는 방법을 도모한다. 노래 부르기 시간에 87세이신 할머니께서 "연인들의 이야기"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자고 하셨다. 1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노래였다고 한다. 노랫말 가운데 "둘이서 언제나 함께 있게 해 주세요"는 구절이 있다. 또한 패티김의 "그대 없이는 못 살아"도 불렀다. 할아버지는 자전거가 타고 싶다는 말에 "안돼 무거워"하면서 거절을 했다고 하는데 그 기억마저도 할머니는 그리워하고 있었다.
우리 캠핑은 음악 캠핑이다. 걷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먹기도 하지만 음악을 듣고 보는 캠핑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어느 부부든 지 대화나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똑같은 세팅 안에서 똑같은 재현이 되는 그런 상황을 생각하지 말고 뭔가 다른 환경을 기획하라고 말하고 싶다. 대화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기대감이다. 서로가 우선은 친해져야 한다. 그저 말없이 함께 걷는다거나, 뭔가를 한다거나 하면서 무의식 중에 늘어놓는 말 가운데서 상대방의 진심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장소를 단 둘이 함께 가보라. 가족이면서 눈동자 한번 서로 들여다볼 수 있는 친밀감이 없었다면 더 그래야 한다. 그럴 때야 비로소 가족이 될 수 있다. 가족 아닌 가족으로 살아가기는 정말 아이들에게도 부부에게도 힘든 노릇이다. 여기에 천진난만하게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고 공평하고 자비로운 자연이 들러리를 선다. 자연의 도움과 낯선 환경의 설렘으로 다른 경험을 한다. 자연은 인간사 모든 것을 형상화해서 메타포로 보여준다. 고난과 극복과 화해와 사랑까지도..
우리는 몇 번이나 더 이런 캠핑을 할 수 있을까? 이미 젊지 않은 나이 아닌가? 언젠가 호숫가에서 매서운 비바람 맞으며 밤을 새우던 그 기억, 아침에 일어나니 차에 설치했던 어닝이 치맛자락처럼 차 전체를 감싸고 있던 모습을.... 그리고 당신이 끓여준 라면과 구워준 삼겹살을 먹던 그 짭짤한 시간을 얼마나 더 가질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다른 좋은 사이트를 찾겠다며 남편이 사라졌을 때 큰 30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집에서는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남편이 없다 하더라도 익숙한 것들이 주변이 있었으니까 남편의 존재는 묻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지에 나와서 남편이 잠시 사라졌을 때 나는 잠시지만 당황했다. 남편이 없는 나의 삶은 생각해 보니 내가 생각했던 이상의 고독과 슬픔이 넘치는 생활인 것 같다. 나는 이 캠핑사이트에서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법을 알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도맡아 했던 남편의 존재가 산등성이처럼 우람하게 보이는 것도 산에서 얻는 수확이다. 나는 단순히 반성하며 현모양처적 아내이고 싶어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생각보다 컸던 그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느낄 뿐이다. 음악이 있고 한잔의 포도주가 있는 저녁노을 같은 삶을 꿈꿀 뿐이다.
눈을 헤치고 남편은 캐빈에서 내려왔다. 잠시 함께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데 어디선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존재, 나무를 씹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 개 한 마리였다. 그 한 마리와 함께 그날의 내 삶의 페이지에 들어온 노인은 조금 후 웃통을 다 벗고 산을 올라오는 사람을 보며 소리쳤다. 서로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두 남자의 수다는 거의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날씨가 영상이긴 해도 4-5도 정도 되는 쌀쌀한 날씨라서 우리는 겨울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도무지 저 남자는 추위도 모르는 것 같았다.
갑지가 무지개가 그들의 이야기꽃 덕분인지 눈앞에 피어올랐다. Norrish Creek은 웬일인지 Suicide Creek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곳이기도 하다. 셀 수 없이 많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김이 구름이 되어 계곡을 가득 채웠다. 그 위로 햇살이 하늘 구름사이를 가르더니 무지개를 낳아 보내 준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구름은 마치 이산과 저산을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했다. 땅에서 바라보는 무지개와 산 위에서 바라보는 무지개는 달랐다. 만질 수 있을 것 같지만 만져지지 않는 무지개를 놓치기 싫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나도 아이 같았다.
우리가 가져간 자원, 먹는 것, 입는 것은 한정이 되어 있지만 산이 보여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함이 넘친다. 무엇보다도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너와 나밖에 없을 때 느끼는 감정과 다른 모든 것들이 개입하는 환경 안에서의 대화는 다르다.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행복을 목적으로 살았는데 그 행복은 한 걸음 다가갈수록 더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다 크면, 수입이 더 많아져 휴가를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면, 질병이 없이 장수할 수 있다면 등등. 행복이라는 가변적인 조건에 올인하느라 주도적으로 내 행복을 누릴 수가 없었던 것일까? 그래도 감사해하면서 살았던 시간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된 것일 것이다. 무지개는 나에게 그간의 인내와 기도에 대한 회답의 메시지일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밤이 되니 작은 시골 도시의 불빛이 흔들흔들 물결치며 다가온다. 나도 어제는 저런 불빛아래 살았다. 멀리서 보니 내 삶도 아름답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고뇌. 밤이 되면 그날의 수고를 잠으로 연소시키며 내일을 꿈꾸는 나약한 존재. 가장들은 집에 오자마자 양말을 벗어 한구석에 집어던진다. 양말을 기다린 적이 없는 아내는 "내일은 우리가 친해질 수 있을 거야" 하면서 또 기대감을 가질 것이다. 온갖 기대와 실망에 터질 것 같던 마음의 소리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언제였던가 싶게 아득하다. 그렇지만 그때도 좋았다. 문제가 터질 듯이 많았지만 다시는 못 올 청춘의 시기였으므로. 행복은 기분일 뿐이었으므로 그것에만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을 그때그때 순간을 느끼는 것을 미루지만 않았더라면 그 청춘은 제 역할을 한 것이리라.
멀리 내가 두고 온 불빛은 내가 곧바로 피운 캠프 파이어에 가려진다. 눈앞에 화려하게 불춤을 추며 하얀 연기를 푹푹 내쉬는 터라 그 어느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계속 나무를 넣고 불을 피운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몰입의 경지가 펼쳐진다. 세상에 불처럼 활 활 타오르는 존재가 또 있을까. 스스로 타오르는 존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불꽃을 바라보듯이 내 가까이 있는 존재를 바라보고 싶다. 눈앞에 있을 때 그 존재가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느낄 수 있다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불꽃이다. 미룰 수 없는 시간을 느끼게 해 준다. 이제 곧 재가 될 것이 눈에 보이기에 그렇기에 그 시간이 더 소중한 것이다.
떠나고 난 후, 별처럼 달처럼 멀리 가버린 후 누군가에 대해 느껴지는 그리움은 슬퍼서 싫다. 100점짜리 하나의 행복 말고 아주 작은 1점짜리 행복 거리를 가진 사람이 더 좋다. 그런 작은 행복은 바로 눈앞에 있다. 마음을 열고 바라볼 수만 있다면. 어느 사이엔가 오렌지색 하늘이 검푸른 하늘로 바뀌었다. 이제 자고 일어나면 새날이 와 있겠지. 매일 반복되지만 매일이 새로운 그런 날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본다. 하늘을 바라본 날이라 더 특별한 날이 되었다. 자작자작 통째로 숯불이 된 나무가 소리를 낸다. 눈물 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