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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레이첼 Apr 27. 2023

봄비 속에 떠난 캠핑 (1)

마음 다이어트 캠핑

Mission Norish Creek 을 안아 주는 하얀 안개


비가 내리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생각을 버린 것은 봄비 속에 떠났던 캠핑 덕이다. 몇 년 전 코비드가 세상을 제 맘껏 휘두를 때 오고 갈 데도 없어 산속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우리는 이곳 밴쿠버 생활에 새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집에 있으면서도 집을 찾아 어디론가 가고픈, 고픈 마음에 허덕이곤 했다. 그럴 때 밴쿠버를 검은 표범의 보디라인처럼 둘러싼 먼산이 우리에게 다가왔던 것이었다. 남편이 내려받은 등산로 앱에는 우리가 다닌 길이 마치 동맥의 혈관처럼 표시되어 있다. 우리는 이 깊은 산속을 두 발로 걷지는 못한다. 밴쿠버는 깊은 산속도 벌목 차량들이 수십 년간 다져 논 길이 있어 원한다면 어느 산이든 오를 수 있다. 우리들이 이용하는 차량은 Wrangler이다. 길 곳곳에 수로가 깊게 파여 있어 이 차가 아니었다면 산중 캠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두어 달간 여러 번 찾아 산속에서 불멍, 물멍을 한 덕분인지 아주 멀리 보이는 검은 능선의 산들도 낯설지 않다. 벚꽃이 땅 위에 내려앉아 피어 있는 이 봄날에 또 비가 내린다. 그 비를 바라보면서 지난 몇 번의 봄 캠핑을 추억한다. 추억하지 않으면 지나간 것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므로...


저이와 내가 그 덕분에 한 뼘 가까워졌다. 그때 그날은 봄비 덕분에 오늘 이 시간에 더 남겨져 있다. 만약 우리가 두꺼운 나무껍질을 태워가며 밤늦게 불멍을 하지 않지 않았다면.... 그렇게 우리에게 남아 찌든 두려움을 태워버리지 않았다면.... 아울러 함께 흘러나오던 오래전 듣던 노래에 흥얼거리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저이가 좋아하는 스모키의 노래에 맞추어 블루스를 추지 않았다면.... 우리 봄비처럼 함께 겨울을 견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우리 사이를 막고 있역할과 상황, 그것을 없애버리고 단지 저이와  사이만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은 잠시라도 함께 떠나는 것이었다. 저이도 나도 아이들에게만 정신을 팔고 있었다. 석탄을 때며 달리는 철로의 열차처럼 검은 연기를 코로 푹푹 뿜어낼 뿐 정작 우리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과 거리감남을 뿐이었다. 냉랭한 우리는 아이들이 떠나 독립해 텅 빈 집조차 버거웠다. 그런데 주말이면 두말 않고 우린 눈짓을 교환했다 가자! 저기로 우리 둘만!  집보다 훨씬 작은 차에 우리 둘의 몸을 가두고 나서야 우린 안도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냉장고에 남아도는 반찬 몇 가지를 챙겨 떠났다. 그게 마음 다이어트 캠핑이었나 보다. 친해지지 않고서는 함께 살지 못한다.



봄비가 내리는데 임지훈의 '회상'을 들으며 드라이브를 하던 저이가 내게 말했다. 독일 병정처럼 잔뜩 긴장하며 살던 저이였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마도 친구들과 한잔하고 노래방에 가서야 할까? 그러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저이가 자기가 먼저 노래를 부를 테니 나보고 화음을 넣으라고 한다. 지금 내 마음은 이 작은 기적들을 감탄하며 바라본다. 앞으로 이렇게 메말라가며 어떻게 살아갈까 했었는데, 함께 나눌 것이 없던 우리가 가까워지기는 만무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럴 줄 알았더면 덜 미워하고 덜 절망했을 텐데. 부드러운 슈크림처럼은 아니라도 아이들과 캠핑하면서 구워 먹던 말랑말랑한 마시멜로 정도로까지  변할까 봐 슬그머니 염려가 되기도 한다. 사람이 변하면 어쩐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야 살 것 같은데 이제야 그럴듯한데. 우리가 남긴 상흔은 아직 여기저기 마치 오래된 벽지에 군데군데 얼룩진 것처럼 아이들 마음에 남아 있다. 우리가 하모니를 넣어 잘 살아간다면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회복할 수 있겠노라는 사인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가 마치 해결사처럼 나서서 아이들의 행복을 고층 빌딩 짓듯 해주려고 나서서 아이들이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저이와 내가 좋은 커플이면 충분했다. 흥얼거리며 나는 잠시 우리 사이에 없던 희망을 부여잡았다. 그리곤 마치 라테에 하트를 만들 듯 저이의 노래에 화음을 넣었다. 유리창 밖 산의 능선을 타고 마치 백댄서들처럼 안개 무리가 춤을 추고 있었다. 임지훈의 '회상'가사 중 맨 마지막 가사,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이 말이 자꾸 내 마음 언저리를 감싼다.


임지훈의 '회상'


길을 걸었지

누군가 곁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네

마음은 얼고 나는 그곳에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지

마치 얼어 버린 사람처럼 나는 놀라 서 있던 거지

달빛이 숨어 흐느끼고 있네

우.... 떠나버린 그 사람

우... 생각나네

우.... 돌아선 그 사람

우... 생각나네

묻지 않았지 왜 나를 떠느냐고

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이미 그대 돌아서있는 걸 혼자 어쩔 수 없었지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네 탓하던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되어가기까지 아이들이 를 가르쳤다. 아이들이 자라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이해할 수 없었기에 모성을 힘껏 동원해 풀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렇기에 내가 나를 가두었던 시절 때문에 '미운 건 오히려 나'란 말에 나는 가슴이 시리고 뜨겁게 아프다. 집에선 6인용 다이닝 테이블이 우리 둘에게 너무 버겁다. 그래서 작은 상에 밥과 국과 몇 가지 반찬으로 잔뜩 채워놓고 우리 둘이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어도 산에서 함께 하는 것 같은 느낌 가지기는 힘들다. 핸드폰, 네플렉스, 카톡, 일, 아이들 등, 우리는 제각기 몸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게 간섭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렇게 애를 쓰면서도 우리 사이 돌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부부면서도 멀어지는 줄도 모르고 멀어졌었다. 저이와 앞으로 함께 해야 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주변에 병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위기의식 때문일까? 지난 시절 흘러 보냈던 시간이 안타까워 어쩔 수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시간을 곱해서 쓰고 싶다. 있던 그 자리에서는 다른 생각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자연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에 우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다. 아주 짧은 여행은 더군다나 자연으로 떠나는 여행은 우리에게 옵션이 아니다. 있던 자리가 아니라 조금은 낯선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에 맺힌 담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다.



"따닥따", 주변에서 주워 온 나무를 때다 보면 몰입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불꽃은 내 시선을 완전히 빨아들인다. 왜 불꽃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바람이 부는 대로 꽃잎을 휘날리며 타오르는 불꽃에 지난 애증을 다 태워버린다. 나도,  저이도 뭐라 말은 안 하지만 말없이 통하는 시간, 우리는 각자 우리를 향해 춤을 추는 불꽃을 함께 관람하는 관중이 되었다. 나란히 앉아 한 곳을 함께 바라본다.


봄비 속에 떠난 산중 캠핑의 클라이맥스는 비가 그칠 때이다. 오랜만에 무지개를 함께 봤다. 비가 그치며 우주가 햇살을 드러낼 때 무지개도 피어오른다. 별것 아닌 일에 마음을 다 주고 정신을 놓치고 살았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무지개를 바라본다. 아주 작은 일들에 별것 아닌 일들에 갇혀 있던 마음이 마치 자물쇠를 풀어놓은 듯 무지개 곁으로 달려간다. 어느덧 사라지는 무지개 내 마음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래를 향한 언약을 붙잡는다.


어디선가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들렸다. 사냥꾼인가? 이 깊은 산중에 차에 탑승한 사람 외에 걸어 다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반가웠다. 곰이라도 만날까 봐 방울을 달고 나타난 이 두 생명체,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이 흥미로운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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