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만나는 인생

What are you waiting for?

by 스토리텔러 레이첼


가족 모두와 함께 가 아니라면 어떤 여행길도 의미가 없었다. 혼자서 반나절 이상 어딘가를 다녀온 적이 별로 없었다. 시간이 있어도 그런 시간을 가져 보지 않았다. 남편이거나 딸이거나 꼭 가족 멤버가 함께 해야 의미가 있었다.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아는 주부들과 몇 달 만에 한 번 단 몇 시간을 모이려고 해도 그게 그리 쉽지 않았다.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제약이 많다 보니 스스로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가끔 마음속에서 부는 회오리바람소리를 들으며 번뜩 정신을 차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시간이 비행하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는 것 같다.


요즘 나도 예외가 아니다 싶게 건강에 신경을 쓰면서 산다. 그러므로 자연으로 나가는 것이 내 하루 일과 중에 최우선 순위다. 지난 수요일에 늦게 끝나는 막내의 스케줄에 맞추어 다녀온 곳이 있다. 가족들과 자주 가던 곳이지만 반만 가다가 말았기에 미련이 남던 곳이다. 마침 함께 할 동행이 있어 가뿐하게 도시락을 챙겨 들고 떠났다.



가는 길이 멋지다. 큰길에서 나와 빨려 들듯한 원근감이 느껴지는 길을 15분 동안 달렸다. 길 양쪽으로는 블루베리와 크랜베리를 꽉 채운 밭이 즐비하다. 요즘 블루베리는 가지마다 풍성한 꽃을 피우고 있다. 밴쿠버는 블루베리 특산지이다. 이제 두 달만 있으면 블루베리를 마음껏 따 먹을 수 있는 You Pick 타임이 올 것이다.


호수 뒤편의 눈을 품은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냄새에서 아직도 겨울이 느껴진다. 둑길은 분명하게 끝이 보이는 길이라 좋았다. 왼쪽에 위치한 맑은 호수 위에 올망졸망한 새끼들을 데리고 가는 캐나다 구스 두 쌍이 보인다. 한쪽은 일곱 마리 새끼를, 다른 한쪽은 세 마리의 새끼를 품은 모양이다. 일곱 마리의 새끼 가운데 한 마리가 무리에서 벗어나더니 다른 가족에게로 다가간다. 어미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모습도 보인다. 그들의 모습을 정신을 놓고 바라보았다. 침엽수림이 빽빽한 산과 흰 구름이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호수 속에도 풍덩 빠져 있었다.


내 자식, 내 가족을 알뜰히 챙기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같다. 끈적한 사랑으로 버티며 살아왔던 나 인지라 그 짧은 시간에도 가족 생각이 간절했다. 나도 저 어미 새들처럼 바빴었는데 내 둥지도 비어 가고 있다. 요즘에야 자기 계발이니 하면서 엄마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 같지만 '라떼'에는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에게만 올인하는 것이 최선이라 다들 믿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러고 싶었나 보다. 아침부터 아이들의 머리 냄새를 맡으며 잠을 재우는 시간까지 팽이처럼 바쁘게 돌던 그 시간이 그립다.


푸른 하늘을 가르며 빨간 경비행기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상공을 날고 있었다. 두 팔을 날개처럼 펼치고 동네를 뛰어다니던 어린아이 시절이 생각났다. 삶의 연륜이라는 것은 쓸데없이 사람의 마음에 군더더기가 붙게 한다. 나이가 들면서 더 강력하게 발달되는 초자아는 머릿속에서 경찰 행세를 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통에 사람을 지치게 한다. 초자아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싶다.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엄마표 삶도 그냥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 자신만 내 자식만 생각하던 생각에서 벗어나 이 사회의 엄마로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나는 영원히 엄마이고 싶을 뿐이다.



왼쪽은 맑은 호수이고, 오른쪽은 각종 수초가 잠겨 있어 탁하게 보인다. 신비스럽게도 양쪽 호수 모두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의 나르시시스트적인 얼굴을 담가 두고 있다. 왼쪽 호수 오른쪽 호수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걷는데 윤슬이 보석을 깔아놓은 듯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꿈결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둑길은 흙길이었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흙, 어릴 적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보던 그 느낌이 생각나 반가웠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한국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둑길이 끝나니 Sun Dyke Trail이 나온다. 오른쪽 호수를 길게 휘감아 도는 길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들어섰다. 새로운 길이라면 그저 좋다. 다시 왔던 길로 다시 가는 것보다 좋다. 어떠한 풍경이 우리를 사로잡을지 호기심이 일었다. 오던 길에 보던 독수리 가족, 캐나다 구스 가족을 못 본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벌써 마음이 새 길로 달아나고 있었다. 초록 수풀 너머에는 개울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는데 뭔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오리 한 마리가 날개에 머리를 파묻은 모습이었다. 한가롭게 졸고 있는 것 같았다. "오리 꽥꽥, 병아리 삐약삐약" 하면서 같이 떠내려가고 싶었다.


Sun Dyke Trail 그리고 Nature Dyke Trail까지 이어지는 약 5-6킬로미터가 넘는 길에서 만난 사람은 단 네 명이었다. 젊은 여성 세명에 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기였다. 유모차에서 뛰쳐나온 아기는 빠른 걸음으로 여기저기 탐험하고 있었다. 연신 "이것은 뭐야, 저것은 뭐야?" 하면서 질문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세 여자의 웃음기에 시선이 자꾸 갔다. 두 살 배기는 초록 세계의 왕자님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최근에 본 아기 중에 가장 행복해 보였다.



전망대에 이르러 계단을 오르다 보니 검은 글씨가 눈에 확 들어온다. 정겨운 한글이다. "옷을 얇게 입고 나왔더니 춥더라고요"라는 내용이었는데 반가운 동시에 난처했다. 너무나 확연하게 보이는 내 나라의 말, 군데군데 영어로 써 놓은 글씨들이 있었는데 검은 펜으로 써놓은 한글만 기억에 남는다.


전망대에 앉으니 우리가 왔던 길이 저만치에 보인다. 무엇보다도 독수리 어미가 먹이를 날라다 주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너무 멀어서 보이지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끝없이 펼쳐진 늪을 여러 갈래 물길이 가르고 있다. 멀리서 걸어가는 두 사람이 꾸물꾸물하는 개미처럼 보인다. '저길도 걷고 싶다'라고 말하니 머리를 끄덕이는 일행을 보며 마음이 즐거워졌다.


고질적인 병이 있다, 시간이 촉박하지도 않은데 좋은 곳에서 진득하게 머무르지를 못한다. 십여 분이라도 앉아서 누릴 수도 있는데 늘 다음을 기약하면서 서두른다. 아니나 다를까 전망대 계단을 먼저 내려오고야 말았다. 행복한 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맑은 호수에 비추어 보고 싶었다. 내 모습은 어떻게 비추어질까? 자신이 없어졌다. 이제는 그만 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어지는 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오솔길이었다. 좌우 측으로는 각종 딸기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마도 다음 주에는 딸기가 하나둘씩 익지 않을까 싶었다. 딸기가 많아서인지 새들의 소리가 빗소리처럼 떨어지는 곳이었다. 물에서 고기 잡고 숲에서 딸기 따먹는 새들에게 천국 같은 곳이었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어디에서 우는지 새들을 찾아보았지만 단 한 마리의 모습도 볼 수가 없었다. 온갖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에 정신이 혼미했다. 그 작고 뾰족한 입술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소리인 것은 분명했다. 우주 끝까지도 닿을 것처럼 가볍고 청량한 소리가 바람을 타고 풀숲과 나무들을 스친다. 노래를 잊은 지 오래인데 갑작스러운 음악회에 관객으로 참여한 감회가 깊었다.



왼쪽 개울을 보니 뭔가가 떠내려가고 있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낚싯줄 세 개를 드리우고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음악을 틀어 놓고 혼자서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 소박한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있나 싶었다. 호수에는 요트도 몇 척 있었는데 요트보다는 튜브가 더 편안해 보였다.


아름다운 초여름의 치마 끝자락을 붙잡고 졸졸 따라다니며 신나게 보낸 하루였다. 순간순간이 매력적이었다. 자연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는 찾아오는 충만함이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좀처럼 생기지 않는 평온함이다. 백만 가지의 행복을 소유하고 있는데 단 몇 가지의 불행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끝내 그런 삶의 모습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나뭇잎들이 흔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뭇잎은 스스로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낙엽 철이 되기까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스스로를 지킨다. 강인한 생명력이다. 나뭇잎도 자신을 저리 잘 지키는데 나는 어떠했던가? 작은 불행을 과장하여 훨씬 더 많은 행복에 그늘을 드리웠다. 흰 구름은 잠시만 들여다보아도 그 형태가 계속 바뀐다. 고정관념에 갇혀서 나와 타인을 바라보던 내가 아니었던가. 비교하면서 질시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던 적은 없었나' 되돌아보았다.


자연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는 것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 섭리에 감사한다. 자연에 가면 자애롭고 풍성한 은혜가 느껴진다. 삶의 선물을 무한대로 누리면서 살아왔으면서도 툭하면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린다.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이 교만하게 싹튼다. 그럴 때일수록 숲으로 가서 그들의 섭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감사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든다.


두어 시간의 걸음을 끝내고 호수가 바라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각자 가지고 온 간식을 먹었다. 메뉴는 보랏빛 고구마 샌드위치와 김치볶음밥, 미역국, 각종 야채와 과일이었다. 동서양의 음식이 묘하게 어울리는 식탁이었다. 그 식탁을 더욱 감미롭게 해 준 것은 일회용 믹스커피였다. 캠핑 갈 때 한 잔씩 먹으려고 아껴왔던 커피인데 아낌없이 내놓았다. 보온병에서 따른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니 뱃속에서부터 뜨겁게 감사가 올라왔다.


"엄마가 네 몫까지 잘 놀아줄게"라고 아이를 아침에 학교에 내려놓으며 말했었다. 딸은 엄마의 표정을 보면서 자신의 행복을 저울질하는 것 같다. 빗소리처럼 떨어지는 새소리를 듣고 온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온 터라 내 표정은 밝았을 것이다. 매주 수요일마다 평소 움직이던 울타리 권역에서 조금 더 나아가 산과 들을 탐험하기로 했다. 주부가 행복하면 그 집 전체가 행복해진다고 한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행길, 인생 여행길에 감사하는 마음을 앞세우면 무엇이 문제가 될까 싶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흘러 나오던 음악은 What are you waiting for----------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han5TvuK-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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