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지 않은 우리의 시간

당신과 나의 휴가

by 스토리텔러 레이첼


당신과 나의 정서적 거리는 열차의 선로 같아요.



지금까지 당신과 살았던 시간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어요. 당신은 부지런한 사람, 가족을 위해 단 며칠의 휴가도 반납하고 살았을 만큼 성실한 사람이죠. 자타 공인 당신은 정말 열심히 산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미안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절반만 성공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놀라겠지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데 말이죠. 우리 아무런 준비도 없이 결혼하고 아이들 기르고 정신없이 살며 살았죠.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 훨씬 더 당신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네요. 하지만 지난 시간에 대한 정리는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원했던 시간이 별로 없었던지라 마음이 공허해요. 갱년기 증후군에 우울감까지 더 해져 힘들 때가 많았어요. 당신과 나의 언어는 너무 달랐어요. 얼마나 달랐는지 그 다름의 거리를 재어 봅니다. 아마 당신과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기에 이 글을 쓰고 싶어요. 칼로 물 베기인 부부 싸움, 그 해법이라는 게 살아본 사람만이 알지요. 그렇게 단숨에 알아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사실 당신과 더 잘 지내고 싶어 심리 상담도 배웠지만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어요. 그랬기에 다른 사람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요. 당신과의 관계에 있어 절반의 성공을 했기에 자신감도 붙은 것 같아요.



난 남자가, 남편이 아니라서 여자, 아내로서의 입장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자의 마음이 어떤지 관심 있게 들어줄 거죠?



얼마 전 우리 둘이 산으로 등산을 갔었잖아요? 푸른 초원에 흰말 세 마리가 그림처럼 서로의 등을 지고 서 있었잖아요. 그때 난 그 순간이 정말 중요했어요. 바라보는 순간이 아름다울 때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을 때 정말 행복하답니다. 당신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집을 보면 땅값이 얼마일까를 이야기하곤 하죠. 그러나 이제 우리 이만하면 감사하면서 살아도 될 것 같아요.



마치 조각처럼 서 있던 세 마리의 흰말, 내려서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가 그랬죠. "잠깐만요. 사진을 찍고 싶어요." 당신은 속력을 좀 줄여 주었어요. 그렇지만 시골길이라 오가는 차도 없는데 조금만 더 후진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당신도 보았나요. 흰말 세 마리를 멀찌감치 지켜보고 있던 개 한 마리가 있었어요. 마치 자신이 수호신이라도 되는 듯 그들을 바라보며 우리들을 감시하고 있었죠. 참 재미있는 장면이었지요. 나 혼자 감탄하곤 하는 순간이 안타까워요. 우린 정말 다른 것일까요?



새를 태우고 나에게 다가오던 갈색 말, 잠시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가 산에서 돌아올 때 다시 그 들판을 지났죠. 이번엔 반대 방향에서 말들이 놀고 있었어요. 당신은 멈추어 주었어요.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어요. 등에 새를 태우고 오던 그 말과 순간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살갑게 다가와 입에 먹다 남은 풀을 씹으며 내가 쓰다듬어 주기를 바라던 그 말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요? 당신도 배가 고팠을 텐데 멈추어 주었죠. 당신이 달라졌더군요. 아내는 그럴 때 힘이 난답니다. 별것 아닌 5분의 시간으로 당신은 아마 훨씬 더 많은 친절을 느꼈을 거네요. 멋진 저녁 식탁, 그리고 애교라는 게 절로 나오더라고요. 당신이 가족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 것보다 이런 작은 배려가 더 크게 느껴지는군요.



말은 사람들의 호르몬 냄새를 맡는다고 해요. 내가 '고맙다'라고 할 때 말은 그것을 알아듣는 것 같았어요.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쩌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야기를 당신과 나누는 게 좋아요. 내가 사진을 찍을 때 우리 앞에 있던 커플 생각나요? 흰말을 쓰다듬던 아내 곁에 오랫동안 서 있어 주더군요. 빨리 가자고 재촉하지도 않고 충분히 기다려주던 그분, 얼굴은 험상궂었지만 멋진 분이었어요.






결혼 이후 당신이 생계를 위해 짊어졌던 삶의 무게는 몇 톤이었을까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당신이 우리를 위해 헌신했던 것일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답니다. 당신의 노고에 감사해하는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당신을 위하는지 알고 있죠?



가엾은 당신, 삶의 무게에 휘청거리는 당신, 당신은 왜 할 말이 없겠어요. 당신 친구가 그러더군요. 당신이 15박 16일로 미국과 캐나다를 돌아다닐 때 당신이 운 적도 있었다고 말이죠. 내겐 짜증만 부리더니 그렇게 힘들다는 말은 친구들에게만 할 수 있었던 가봐요.



가엾은 당신이 쉴 수 있도록 내가 더 돕고 싶어요. 위태로운 당신을 바라보며 난 불안했어요. 당신이 우리를 두고 이 세상을 떠나 버릴까 봐 기도 없이는 살 수 없었죠. 북미주에서도 가장 힘든 일을 하던 당신, 힘들면 연락을 끊던 당신, 함흥차사이던 당신을 기다리며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을 드나들던 시간들, 이역만리 캐나다에서 홀로 감당했던 시간들로 인해 정말 힘들었어요. 언젠가는 너무 칼국수가 먹고 싶어 한인식당을 찾아갔죠. 그때 막내가 태어난 지 백일쯤 되었을까요? 가게에서 너무 많이 울더라고요. 아기랑 같이 울면서 끝까지 먹었어요. 단 1시간 만이라도 누군가 아기를 돌보아 줄 수 있었다면 그토록 서럽지는 않았을 텐데, 당신도 나도 지금까지 잘 견뎌왔네요.



조만간에 그럴듯한 휴가 한번 가요. 회사에서 돌아와 쉬는 시간도 아까워하는 당신, 이민사회에서 얼마나 긴장하고 힘들었으면 집에 와서도 마음 편하게 쉬지를 못할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고마워요. 아이들과 내가 그 고생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줘요.



언젠가부터 당신이 알콩달콩 하게 사는 게 좋다며 티격태격하는 청춘 드라마를 보고 소년 같은 미소를 짓길래 놀라웠어요. 당신의 소년 시절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건가요? 이제 소년이 되어 가는 당신, 나도 발랄한 소녀가 될래요. 철없이 살아봅시다.


소녀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낀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봐 주세요. 안타깝고 무심하게 우리의 시간이 흐를 때 그 야속한 시간을 기도하면서 견뎠답니다. 고난을 통해 성장한다는 말도 믿게 되었어요.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내가 대견해요. 당신도 이제 나를 더 믿고 의지하는 것 같더군요. 이 모든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약할 때 강해 질 수 있었답니다.


서릿발 같던 내 미움도 희석이 되는군요. 당신이 어깨에 잔뜩 짊어지고 있던 무거움을 조금씩 내려놓으며 소년처럼 웃을 때가 좋아요. 이제 혼자서 다 하려 하지 말고 나와 의논해요. 명령하고 지시하지 말고 격려하고 칭찬해 주세요. 아내는 아랫사람이 아니랍니다. 당신과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동반자지요. 힘을 빼고 천천히 함께 걸읍시다.






올여름휴가는 어디로 갈까요? 얼마 전 당신과 함께 일하던 분도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네요. 태어난 것을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죽을 시간을 선택할 수도 없어요.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순간순간을 누려요.



주말에 산에 다니면서 당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알고 보니 당신도 과묵하지만은 안터군요. 그런데 우리는 왜 말을 제대로 할 줄 몰랐을까요? 더 이상 아이들을 힘들게 하지 맙시다.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우리, 다음엔 어디로 갈까요?


당신과 내가 조금씩 발을 맞추며 살아가는 요즈음이라서 이 글을 쓸 용기를 얻었어요. 한 사람이라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나누고 싶네요.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서로 친해질 방법이 있다고요. 대화가 쉽지 않을 때 중재자를 찾아 떠나면 어떨까 해요.

물론 훌륭한 중재자는 다름 아닌 자연이지요.



글쓰기는 상처에 붙인 밴드처럼 곪은 곳을 치유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어요. 글을 쓰고 있는 나 그리고 변함없이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당신을 믿어요.








주말에 함께 오른 산의 중턱, 함께 하는 액티비티는 부부 관계 개선에 최선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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