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 단비를 기다리며

놓치고 싶지 않은 시간들

by 스토리텔러 레이첼

집 앞 목련 나무가 말라 비틀어지고 있는 줄도 몰랐다. 밴쿠버에 폭염이 왔던 몇 주 전, 섭씨 45도를 넘나드는 초유의 불가마 같은 더위에 잊은 것이 있었다. 한낮의 태양이 모든 것들을 태워가고 있는 동안 위층으로 올라가면 금세 땀이 줄줄 흐르곤 했기에 지하층으로 내려가 숨어 있기 급급했다.


문득 바라보니 키가 3미터가 넘는 목련과 나무가 하얀 꽃을 피우는 와중에 고사하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사다 심었던 수국 꽃나무 종류도 꽃이 피다가 말라 붙어 있었다. 그나마 뒤뜰에 재배하던 푸성귀들은 오가며 눈에 띄어 가끔 물을 주었는데 보이지 않는 쪽 정원에 있는 꽃나무들은 눈감고 아웅 하듯 모른 척한 것이다.


뒤늦게 죽어가는 꽃나무들을 되살리려 매일 물을 주는 수고를 하고 있다. 하지만 잎이 노랗게 말라버린 몇몇 나무는 소생하기 힘들 것 같다. 볼 때마다 미안하고 안쓰럽다. 홈데포에서 흙을 사다가 목련 나무뿌리 위에 듬뿍 얹어 주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캐네디언 이웃들과는 달리 정원 가꾸기에 서툴다. 게다가 알고 보니 관심도 없었나 보다. 뭔가에 빠지면 그 외의 것은 잘 보지를 못한다. 정신적인 성숙에 집중하면 몸을 잘 돌보지 못하던 그런 식이었다. 덥다고 집안에 칩거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들에 집중하다 보니 밖에서 아우성을 치던 꽃나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요즘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지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잠시 멈추고 주변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마치 독수리가 먼 허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관찰을 하듯 지금 여기의 시간을 내려다 보고자 한다. 내가 뭔가에 빠져있는 시간이라고 해서 그 시간이 나를 전적으로 위하는 시간은 아닌 것이다. 하던 일에 파 묻혀 있으면서 그것이 내가 살아 있기나 한 모양새나 되는 것처럼 느낀 적도 많다. 그러면서 진정 나에게 소중했던 관계에서 소홀한 적도 많다.


나에게 있어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우선순위를 챙기다 보니 제일 먼저 나의 가족이 떠오른다. 이어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이웃, 친구들도 생각이 난다. 그땐 그렇게 죽느니 사느니 했는데 어느 틈엔가 멀어진 것이다. 오랜만에 보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나처럼 반가워했다. 먼저 소식을 전하는 것에 대한 수고를 하는 것을 게을리했기에 소원해진 사람들이다.


소중한 사람들조차 멀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개인적인 힘듦, 고통 그런 것들로 인해 그런 적도 있다. 어느 틈엔가 섭섭이가 찾아와 사소한 일로 내가 먼저 멀어진 적도 있다. 시간이 지나 놓고 보니 결국은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정 욕구란 평생을 걸쳐 따라다니던 욕구불만 덩어리 그 이상은 아니다. 뭔가 섭섭한 마음이 자동적으로 들 때면 다시 생각해 본다. 상황에 대한 내 몸의 반응, 그리고 기분의 변화를 체크하며 그 기분이 과연 옳은 기분인가를 생각해본다. 그러다 보면 기분도 역시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기분이 달라지면 행동도 변한다. 상황은 비슷해도 해석이 달라지니 훨씬 더 살기가 편하다.


상황에 시달리다 보면 자신의 기분을 다스리기가 힘들다. 그러다 보면 결과적으로 자신의 몸과 정신에 해로운 행동을 하게 된다. 매사에 자동적으로 드는 생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생각에도 물 주기가 필요한 것이다. 함께 살아가면서 가졌던 섭섭함이 결국은 상황에 대한 나의 속 좁은 오해로부터 시작된 적도 있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대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내가 바꾸면 얼마든지 편해질 수 있는 관계는 되살리고 싶다.


잔뜩 말라버린 정원은 물을 한없이 빨아들인다. 호스에서 튀어나간 물줄기는 노랗게 타들어 가던 잔디로 바로 스며들지 못한다. 잔디가 물을 뱉어 버리는 것 같다. 촉촉하게 적시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뭄에 돌보지 못해 말라 버린 목련 나무에 붙어 있는 누런 나뭇잎들을 따 주었다. 몇 주간 물을 주니 나무는 소생한 것 같다. 그래도 마음 한편이 알싸하게 져려온다. 붉은 석양에 마음이 멍든다. 비가 몹시도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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