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난독증이네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우리 아이가 난독증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작년 10월 말 무렵이었던 것 같다.
사랑스러운 우리 둘째 아들은 유독 아기 같은 면이 많았고 발음도 좋지 않았다.
커가면 그저 좋아지겠지 하고 기다리다 어느 날 우연히 집 근처 대형병원에 언어치료실이 개소했다는 플래카드를 봤다.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그저 한번 검사나 받아보자 하고 진료를 신청했다. 혹시 아기 같은 어눌한 발음이 치료로 개선되는 건지 한번 알아나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받아들였다.
발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난독증이란다.
"난독증"이라는 단어가 나를 앞도 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코로나로 유치원도 거의 다니지 못했던 7세 중반부터 한글 공부를 시킨다고 둘째 아이와 씨름하던 시간들이 스쳐갔다.
나는 단지 공부 머리가 없는 건 줄 알았다.
다른 특별한 노력 없이도 저절로 한글을 뗐던 첫째를 키웠던지라 둘째도 때가 되면 알아서 한글을 떼겠지 싶었는데
거진 1년을 가르쳐도 읽기가 어렵자 아이에게 화도 많이 냈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난독증이었다니,,,
나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너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는데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뒤에서 한숨 쉬고 답답해했으니
그 마음에 상처가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말씀은 난독증이 심하지는 않으니 지금부터 시작하면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아직 1학년이니 엄마가 빨리 알고 온 거라고 희망적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이것도 아이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했을 거라고 말씀하신다.
아이가 싫어하지 않으면 꾸준히 피아노 시키면 양쪽 두뇌 자극에 도움이 된다고...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셨지만 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난독증인지 모르고 했던 내 행동들이 너무 미안했고,
그마저도 잘 따라준 아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너는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추후에 알아보니 난독증이 극복하지 못할 장애도 아니고 후천적인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거다.
그리고 한 아이가 난독일 경우 형제자매가 난독일 확률이 50퍼센트가 되는데 첫째는 난독이 아닌 것에 감사했다.
아직도 그때 이야기를 쓰면 눈물이 먼저 흐른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힘들거나 아픈 자녀를 키우는 엄마도 많이 있을 텐데 그 앞에서 힘들다는 말이 사치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 충격이 적잖았다.
아마도 긴 여정이 될듯하다.
당장에 읽고 이해하고 쓰는 것이 중요한 학교 생활에서 우리 아이가 자존감이 낮아질까 걱정이 되지만
길게 보기로 했다.
한길이 막히면 또 다른 길이 열리는 법이다.
글씨가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또 그 아이에게 맞는 다른 재능이 있는 법.
그것을 찾고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일 일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지금의 이 골짜기가 후에 우리의 자랑이 되기를
지금은 한 없이 깊어 보이는 이 골짜기가 후에 뒤돌아 봤을 때 작은 웅덩이로 기억되기를
난독증을 겪고 극복한 너의 시간들이 가장 큰 자양분이 될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