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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사이다 Sep 25. 2020

우생당

 나는 제주출신이다. 제주는 돌, 바람, 여자가 많아 예로부터 여자들이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았다. 척박한 제주 땅에서 세 남매를 키우시는 우리 엄마는 강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 주위는 다 귤 농사를 지었다. 우리 집은 귤 농사를 지으면서 장사까지 했다. 할머니 때부터 마을을 지키고 있는 오래된 가게였다. 학교 앞 군것질거리부터 쌀, 과일, 야채까지 다 팔았다. 덕분에 엄마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한량이던 아빠를 대신해 농사를 지으며, 장사를 도맡아 하시던 엄마는 강하셨다. 

 어릴 적 나는 한 달에 한번 엄마와 시내에 나가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버스를 타고 20분쯤 나가면 서귀포 시내다. 거기서 장 보고, 옷도 사고, 병원도 가고 미뤄두었던 볼일을 본다. 일을 다 마치면 마지막으로 항상 서귀포 시내 가장 큰 서점 ‘우생당’을 들른다. 도서관 하나 없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살던 나에게 우생당은 신세계였다. 엄마는 항상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책을 한 권 고르라고 하셨다. 이것이 우리의 약속이었다. 내가 원하는 책 한 권, 엄마가 권하는 책 한 권을 사서 집으로 간다. 나는 주로 제목이 있어 보이고, 표지가 예쁜 책을 골랐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생인 내가 뭘 알았을까 싶지만 그렇게 허세를 부렸다. 나는 그때 ‘좀머 씨 이야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같은 책을 골랐다. 엄마는 나에게 시집을 사주셨다. 그때 산 윤동주 시인의 시집은 아직도 집에 있다. 그렇게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부터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해 다음 달 서점에 갈 때까지 몇 번을 더 읽었는지 모른다.  

  한 번은 엄마가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읽어주시더니 이런 시를 본 적이 있냐고 으스대며 물으셨다. 나는 왜 그 시를 처음 들어봤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아는 척을 했다. 엄마가 읽어주시는 시를 좋아해야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는데 당연히 처음 들어보는 시였고, 읽어도 내용을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무작정 읽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나오는 프랑스시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을 직접 사서 보기도 했다. 내용은 몰랐지만 그 시집을 가지고 있고, 읽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내가 무엇인가 되어있는 듯했다.

  그 시절 엄마와 외출할 때 가끔 택시를 타면 택시기사 아저씨들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혹시 학교 선생님이세요?’였다. 시골에서 선생님이면 최고의 칭찬이다. 엄마는 웃으면서 아니라고 답하셨다. 장사하고 농사짓는 엄마는 강하고 억척스러우셨지만, 시내 나갈 때 차려입으신 엄마는 교양 있고, 아름다우셨다. 그런 엄마가 매일의 생계 때문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지는 못했지만, 자녀들은 그렇게 살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지금 이렇게 무언가 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지난 추석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제주 시골집에 내려갔다.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동네 정류장에 내렸다. 그곳에 엄마가 일바지를 입고 손을 흔들며 서 계셨다. 엄마의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 할머니였다. 손자 손녀들을 보자 제주도 사투리로 ‘오멍안힘들 언?’하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긴 여정에 힘든 여섯 살짜리 둘째를 등에 둘러업고 초저녁 시골길을 걷는다. 초저녁이지만 시골길은 깜깜하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얼핏 보이는 엄마의 다리가 앙상하다. 항상 하얗고 곱던 엄마의 얼굴도 오랜 농사로 햇볕에 많이 그을었다. 우리 엄마도 이제는 그냥 시골 할머니가 되셨다.

  나는 엄마의 인생이 안쓰럽다. 엄마 내면에는 아직도 언뜻언뜻 드러났던 소녀가 살아있는 것 같은데, 이제는 평범한 시골 할머니로 인생의 막바지를 맞이하는 엄마가 애처롭다. 어릴 적에는 강한 엄마가 싫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엄마는 원래 강했던 것이 아니라 강해져야만 했다. 어쩌면 엄마도 나와 함께 우생당 가는 시간,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내면의 소녀와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엄마가 된 딸은 생각한다. 나는 엄마 덕분에 문학을 사랑하고 가까이하는 어른이 되었다. 결국 엄마는 나에게 가장 강한 영향을 미쳤고, 마음의 불씨 하나쯤은 심어주셨다. 나는 여태껏 한 번도 엄마에게 감사하다고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엄마를 보면 그 억척스러움과 희생에 오히려 불평이 먼저 나오는 못난 딸이다.

 이번 추석 때 제주에 갈 때는 내 아이의 손을 잡고 우생당을 가봐야겠다. 거기에서 원하는 책을 한 권씩 골라보라고 해야겠다.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이 나도 나의 자녀들 가슴에 작은 불씨 하나쯤은 심어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마음을 담아 책 한 권을 골라 선물해야겠다. 원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서툰 우리 가족에게는 오히려 책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기를,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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