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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사이다 Oct 12. 2020

그놈이 문제다.

  항상 그놈이 문제다. 오늘도 어떻게 그놈 몰래 들어가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가게를 하는 우리 집 맞은편은 유정이네 사진관이다. 사진관 뒤쪽으로 조금 더 돌아 내려가야 유정이네 집이 나온다. 단짝 유정이네 집으로 놀러 가는 내 발걸음이 무겁다. 다 그놈 때문이다.

  한 번도 그놈을 제대로는 본 적이 없다. 남들보다 큰 덩치, 유독 까맣고 무서운 눈동자, 그 기세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높이 솟은 벼슬, 다 펼치면 초등학생이던 내 키와 비등비등한 양 날개, 그리고 공포의 그놈 목소리. 유정이네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오늘도 그놈이 지키고 서있다. 그놈이 한눈파는 사이에 몰래 들어가면 성공이다. 그 시절 제주 시골집에는 집집마다 닭 한두 마리씩은 키웠다. 그러나 유정이네 집에 살던 그놈은 달랐다. 닭인지 꿩인지 그 크기가 남들 두세 배는 됐고, 그놈의 심기를 거슬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온 마당을 뛰어다니는데 굶주린 하이에나 같았다.

  그날이었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그놈이 한눈 판 사이에 들어가야만 한다. 유정이네 집 대문 뒤에 숨어서 그놈의 동태를 파악한다. 그놈은 우리에 들어가 있었다. 지금이다. 나는 잽싸게 유정이네 마루를 향해 뛰었다. 그날따라 뭐가 불편했는지 그놈은 내 소리 죽인 발자국 소리를 인지했고, 뒤를 돌아봤다. 이런, 우리 문이 살짝 열려있다. 그놈이 나를 향해 돌진했다. 그 후 그놈의 소리가 컸는지, 내 울부짖음이 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놈의 날개가 내 얼굴을 덮었다. 내가 발작하는 소리에 옆집 할머니가 뛰어나오셨다. 할머니는 그놈과 사투를 벌였다. 마당에는 그놈의 깃털이 몇 개 뽑혀 나갔고 그놈은 가둬졌다. 유독 까만 그놈의 두 눈은 아직 분이 풀리지 않는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다리가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놈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그날의 공포는 남아서 나를 옥죄었다. 그 뒤 유정이네 집은 다시 놀러 가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몇 번의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 엄마가 우리도 닭을 키워보자며 장닭 두 마리를 사오셨다. 그놈들은 엄마 앞에서 얌전했으나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나를 위협했다. 나는 공포에 떨었고 부모님이 집을 비웠을 때 그놈들이 내 방으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몇 번의 악몽으로 나는 자다 깨다를 반복했었다.

  그때부터 나는 닭 공포증이 생겼다. 그 첫 번째 증세는 닭을 키우는 집에는 놀러 가지 못했다. 나 때문에 할머니도 키우던 닭을 파셨다. 두 번째 증상은 닭을 쳐다보지 못한다. 극도의 두려운 대상과는 눈을 맞추지 못하는 것처럼, 닭을 보면 무서워져 내가 먼저 눈을 피하게 된다. 이것은 실물뿐만 아니라 티브이 치킨 광고에 닭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얼른 채널을 돌리거나 방으로 피한다. 닭 공포증 세 번째, 닭을 먹지 않는다. 특히 백숙과 같이 그 형태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알았다. 그것은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과거 경험했던 위기, 공포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세다. 그 후로 나는 닭의 형태를 명확히 쳐다본 적도, 그 녀석을 어떤 음식의 형태로든 먹은 적은 없다.

  그 후로 30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놈보다 훨씬 덩치가 커졌다. 지금은 치킨을 좋아하는 남편과 살고 있고, 동물을 좋아하는 두 아이들은 닭이든 뭐든 항상 호기심의 대상이다. 이제는 나는 안 먹이도 가끔 가족을 위해 백숙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 치킨을 먹는 자리에서 한 조각 정도는 먹을 수 있을 만큼 그놈의 흔적이 나에게서 서서히 줄어들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체계적 탈감각화’라고 한다. 어떤 대상이나 사건과 관련한 공포와 근심을 점차 완화하는 행동수정 기법이다. 조금씩 이미지와 상황에 노출되면 그 공포감이 줄어드는 것이다.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그놈의 흔적을 지우려고 애써왔지만 그놈은 기를 쓰고 내게 달라붙어 있으려 한다. 그놈이 문제다. 초등학교 시절 그 사건 이후 엄마는 나를 걱정하셨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닭을 먹지 않는 첫째 때문에 음식을 따로 하셔야 했고 나는 별난 아이란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2013년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가 대 히트를 치면서 바야흐로 치맥의 시대에 도달했다. 나는 닭 권하는 사회에 살면서 치킨을 먹지 않아 눈치를 본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까다로운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다 그놈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놈이 두렵다. 아직도 그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2020년, 여전히 대한민국은 치맥의 시대이다. 닭 권하는 사회에 사는 나는 그놈의 영향이 점점 더 강해짐을 느낀다. 이제는 내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그놈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놈이 이기는가, 내가 끝까지 저항하는가의 문제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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