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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사이다 Oct 27. 2020

영화 <룸>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죽어가는 화분, 삐꺽거리는 옷장, 계란 껍데기로 만든 뱀 모양의 장난감, 낡은 담요가 이 세상의 전부인 아이가 있다. 이것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시작하는 영화 <룸>은 5살 잭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태어날 때부터 가로 X 세로가 3.5미터의 룸이 세상의 전부이고, 천장에 나있는 작은 창하나 가 유일한 세상과의 통로인 이 아이는 한 번도 바깥세상을 본 적이 없다. 

  이 이야기는 오스트리아의 ‘오제프 프리츨’ 감금 사건의 모티브가 된 소설 <룸>을 각색하여 영화화했다. 실제 이야기는 영화보다 훨씬 끔찍하다. 한 남자가 24년간 친딸 엘리자베스를 지하실에 감금, 성폭행하여 7명의 아이를 낳게 했다. 영화에서는 닉이라는 남자가 17살 조이라는 여주인공을 강아지가 아프다고 유인해 7년 동안 감금하고, 지속적으로 성폭행한다. 그러던 중 잭이라는 아이가 태어나게 되고 잭의 5살 생일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은 잔인하지만 영화 전반에 자극적인 장면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룸 안에서 평안 해 보이는 잭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태어나자마자 그의 세상은 작은 룸이 전부였으니, 바깥세상이 궁금할 리 없었고, 갇혀 지낸다는 불행감도 없었다. 그 룸이 잭에게는 세상의 전부였다. 그러니 룸 안에 있는 다 죽어가는 화분 하나도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엄마 조이는 달랐다. 7년 전 가족과 함께 살던 바깥세상을 그리워했고, 더 이상 잭을 이곳에 갇혀 지내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탈출을 계획한다. 닉에게 잭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닉이 잭을 버리러 나가면, 거기서 잭이 탈출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조이의 계획이다. 예상 밖으로 잭의 탈출은 쉬웠고, 닉의 트럭 뒤에 꽁꽁 싸맨 채 나오게 된다. 트럭 뒤에 실린 채 세상에 나온 잭은 처음으로 하늘을 본다. 그것은 신기함과 전율, 혹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잭은 엄마와 연습해본 대로 트럭에서 뛰어내렸고 개를 산책시키던 한 남자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중반부다. 보통의 탈출 영화라면 탈출은 영화 말미에 나타나야 하는데 벌써 탈출에 성공했고, 경찰의 도움으로 엄마도 구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혹자는 영화가 너무 싱겁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진짜 탈출은 지금부터였다.

  룸에서 탈출하고 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조이의 부모님은 조이를 잃은 슬픔과 계속되는 다툼으로 이혼하셨고, 어머니는 재혼을 하셨다. 조이는 7년이라는 기간 동안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자신만 불행했다는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게 되고, 가족들에게 분노를 풀어 갈등이 고조된다. 언론이라는 곳에서는 시청자의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질문들로 조이에게 상처를 준다. 조이는 작은 룸에서 탈출하였으나 현실에서는 수도 없이 많은 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조이는 보이지 않는 사회가 만든 시선의 룸에서 오히려 더 답답해했다. 작은 룸에 갇혀 지낼 때는 지옥같이 힘들었으나 어린 잭을 보며 힘을 내고, 살아갈 생각을 했었는데, 오히려 탈출하고 만난 사회의 룸에서는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이 영화는 탈출 영화도 아니고, 성폭행범 닉에 대한 복수 영화도 아니다. 닉이 체포되는 장면은 지나가는 티브이 뉴스로 잠깐 처리할 뿐이다. 영화 <룸>은 상처 입은 인간의 치유에 대한 영화다. 혹시 나도 모르게 ‘편견의 시선으로 누군가를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영화의 엔딩은 아름답다. 결국 엄마 조이는 사회에 적응해가는 잭을 보면서 조금씩 용기를 내게 된다. 잭은 엄마에게 예전에 살았던 룸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한다. 잭과 조이는 감금되었던 룸을 다시 찾는다. 그리고 잭은 사랑하는 자신의 물건들에게 굿바이 인사를 건넨다. 마지막으로 'Bye-bye to room'이라고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엄마에게도 같이 인사하라고 한다. 엄마는 잭만큼 선뜻은 아니지만 작은 목소리로 굿바이 인사를 건넨다. 상처 받은 것들과의 이별, 그것을 인정하고 보내주는 것이 어쩌면 상처 치유의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잭은 이야기한다. 이제 여기는 문이 열렸으니 더 이상 룸이 아니라고. 나는 이 대사가 이영화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룸은 문을 닫고 있을 때, 열고 나갈 수 없을 때 탈출하고 싶은 곳이다. 이제는 문이 열렸다. 누구나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그곳은 더 이상 룸이 아니다. 우리 안에 편견과 사회적 시선의 룸의 문을 여는 것, 그것 하나가 상처 받은 조이와 잭을 위한 유일한 구원의 손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작은 룸에 갇혀있는 시간 동안 아들 잭을 이렇게 잘 키워낸 엄마 조이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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