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는 삶
몇 년 전만 해도 연말과 연초에는 약속이 넘쳐났다. 연달아 술을 마시고, 숙취로 고생하다 보면 새해가 오기도 전에 지쳐버리곤 했다. 1년 전, 2023년의 마지막 날엔 요트 파티에 참석했었다. 그런데 카운트다운을 하기 훨씬 전부터 벌써 내 집, 내 방에 가고 싶었다고 일기에 써놨더라.
해가 갈수록 좋은 점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는지 더 잘 알게 되고 그런 것들로 내 시간들을 더 채울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더 크게 자각하고, 이미 다양한 경험을 해봤으니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가는 선택이나 새로운 시도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나에게 확실한 행복을 주는 것들로 내 시간을 채운다. 이런 변화가 좋다.
사람이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경로는 참 다양하다. 일을 하면서, 운동을 하면서, 업계 파티에서, 심지어 온라인 게임에서도. 해외에 나와 있다 보니, 외국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더 쉽게 친해지는 경향이 있다.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해외에서 새롭게 인간관계를 쌓아가다 보니,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데에 더 개방적이고 오픈 마인드인 분들이 많다. 싱가포르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다양한 채널에서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고,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길 때, 상대방도 그 인연을 소중히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적당한 약속들과 적당히 혼자 보내는 시간들로 균형있게 채운 이번 연말은 그런 따뜻함이 가득 느껴진 연말이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갔던 Strangers Conversation. 조금 독특하고 히피적인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여기는 사회가 정한 틀과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고 따르려는 어른들이 모여 이야기 나누는 곳으로,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자유롭고 실험적인 공간이다. 정해진 입장료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임과 방문자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운영된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한 쪽에서는 도란도란 앉아서 중국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그룹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코칭 세션을 진행 중이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이날 내가 대화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답을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했다.
나 역시 그 사람들의 말에 깊이 공감했지만, 이들에 비하면 나는 비교적 제도권 안에서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안전한 선택들을 하며 보호받으며 살아왔다는, 현실 자각이 세게 왔다. 나에 비해 여기서 만난 분들은 더 과감한 선택과 위험을 감수하며, 정말 온몸과 인생으로 삶을 탐구하는 듯해 보였다.
프로그래밍 직장을 그만두고 수도원에서 스님이 되기 위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분, 집을 팔고 공원에서 캠핑하며 지낸 분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생각했던 방황은 이분들 기준에서는 방황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정말 버블 안에서 살고 있었구나...
다음번에 내가 관심 있는 주제로 행사가 열릴 때 한 번 더 가볼까 한다. 확실히 흥미로운 공간인 것은 확실하고,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난'언니와 알고 지낸지는 꽤 됐지만, 주기적으로 만나서 많은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 건 한 2년 전쯤부터다. 언니랑 나는 다른 듯 닮은 성격을 가졌다고 늘 생각했다. 오늘 언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나서, 같이 설거지하다가 깨달았다. 우리는 어떤 그룹에도 소속된다는 느낌을 잘 받지 않고, 어중간하게 다리 하나를 걸쳐두는 경우가 많으며, 남에게 잘 동화되는 게 정체성인 사람들이구나!
언니와 나 모두 인간관계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선을 지키는 편이다. 모임이나 만남에선 갈등을 피하고, 의견 충돌이 있으면 중재하려고 한다. 상대가 외향적이면 우린 좀 더 내성적으로, 상대가 내성적이면 우리가 좀 더 외향적으로 변한다. 상대가 갈피를 못 잡고 헤매면 우린 갑자기 소신 있고 심지가 굳은 사람이 되어 그들을 잡아주고, 반대로 상대가 원하는 걸 뚜렷이 알고 흔들리지 않으면 우린 헤매고 흔들려 그 사람에게 의지한다.
이런 성향을 가졌기에,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가 너무 중요하다는 언니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후라이팬을 닦았다.
언니는 어릴 때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후의 삶은 그냥 보너스처럼 느껴져, 덕분에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것 같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이 영상이 생각났다. 내가 천체의 어떤 물질인데, 신이 '지구에 내려가 인간으로 태어나 짧은 순간 동안 다양한 감정을 경험해 볼래?' 하고 물어보며 기회를 준다면, 그걸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겠냐는 아름다운 내용의 영상이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살려고' 태어났다. 삶에 특별한 목적은 없다. 조국을 위해? 사회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자손을 번식하기 위해?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합의 안에서, 개인이 원하는 삶을 충만하게 살면 된다. 남에게 어떤 방식을 강요할 필요 없고, 남이 강요하는 방식을 따를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내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됐으면 좋겠고,
내 가까운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도 충족됐으면 좋겠고,
사람들을 돕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동기를 이해하며,
그들이 원하는 삶을 이룰 수 있도록 변화할 수 있게 돕는 는것.
지금으로선 이 정도의 추상적인 방향성만 있을 뿐, 구체적인 그림은 없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들, 나에게 조금이라도 기쁨과 의미를 주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헤매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감이 좀 잡히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만나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다보면, 헤매는 과정 자체도 즐거워질 것이다. 삶의 의미는 그런 순간순간의 충만함 속에 이미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