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식당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느리다.
식당에서 메뉴가 나오는 속도도, 물건을 구입할 때도 모두가 여유롭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도 답답해하는 나는 처음에는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루가 꼬박 지날 때쯤이야 내 마음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리는 인도네시아 롬복(Lombok) 섬의 사투리로’ 작은 섬’이라는 뜻이다. 길리 섬은 총 3개로 길리 트라왕안, 길리 메노, 길리 에어 섬이 있는데 이 중 길리 T로 불리는 길리 트라왕안이 가장 크고 유명하다. 사실 크다고 해봤자 자전거로 한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다.
나영석 PD의 예능프로그램 <윤 식당>의 촬영지였던 길리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에메랄드빛 투명한 바다, 몰디브에 가지 않고도 바다거북이와 수영할 수 있는 길리섬은 이미 유러피안, 호주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관광지였다. 윤식당에 나온 후부터는 한국인 관광객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곳은 저녁이 되면 시끌시끌한 파티 분위기다. 펍 파티를 하는 요트부터 지글지글 꼬치구이를 파는 야시장 등 저녁에도 심심하지 않다. 실제로 1980~1990년대까지 길리 트라왕안은 '파티 섬'으로 유명했다. 이후 2000년, 길리 친환경 협동조합이 생기면서 철저한 단속과 함께 대기와 해양환경을 해치는 활동이 금지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마을 공동체의 규칙이 잘 지켜지고 범죄율이 낮아 경찰이 상주하지 않는다)
길리섬으로 들어가는 길은 고되다. 길리로 향하는 배를 타는 빠당 바이 항구까지도 일반 관광객들이 머무르는 곳과 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예상시간을 넉넉하게 잡는 게 좋다. 나는 특히 파도가 셌던 날 가서 배가 많이 흔들렸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성격이 급해서 기다리는 것을 잘 못한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익숙하고 편하다. 프랑스에 처음 갔을 때도 마트에서 기다리는 게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그런데 길리는 훨씬 느리고 모든 일이 천천히 진행된다.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관광객이 몰려들다 보니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어서 그런 것 같다. 이런 급한 성격이 가끔은 나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 요가 수업을 빠지지 않고 가려고 하는데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요가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윤 식당은 현재(2018년 8월 기준) 상표권 이슈로 인해 현재는 Yun’s Kitchen 이 아닌 Teok Café라는 상호로 운영 중이다. 마차조차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길로 자전거도 끌고 걸어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가는 길이 마치 액티비티처럼 더 재밌게 느껴졌다. 가격은 현지 물가 대비 저렴한 편은 아니나 김밥, 라면, 떡볶이와 같은 분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촬영 당시의 소품,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어 윤식당을 챙겨본 여행객이라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이 흔하지는 않은(다낭, 세부, 방콕 등 다른 동남아 관광지 대비) 발리였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이곳에 모여있었다. 길리 T섬 자체는 굉장히 작아 전체를 자전거로 1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숙소를 어느 곳에 잡든 윤식당에 산책삼아 한 번은 오게 될 것 같다. 또한 이 근처가 유명한 터틀 포인트이기 때문에 바다거북과 수영하기 위해 오기 좋다. 참고로, 바다거북이를 보기 위해서는 오전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떡 카페 Teok Cafe(구 윤식당)까지 가는 길이 마차도 갈 수 없는 좁은 길이라 자전거를 끌고 갔다. 길이 다소 울퉁불퉁하지만 길리에서라면 그마저도 기분 좋은 느낌이다. 자전거는 묵었던 숙소의 리셉션에서 빌렸는데 원하면 산악 바이크인 MTB도 길에서 대여할 수 있다. 물론 돈은 조금 더 줘야 한다 ^_^
길리에서는 모든 것이 느리다.
저녁식사를 주문하고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계산을 하기까지 또 한 20분을 기다렸다. 그럴 수 있지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기다리고 싶은데 자꾸만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나는 아직 성격이 급하구나라고 또 한 번 느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별이 너무 많아서 모기에 뜯겨도 한참을 밖에 누워있었다.
대기와 환경보호를 중요시하는 길리 섬에는 자동차도, 경찰도 없다. 대신 치도모 (Cidomo) 라 불리는 조랑말이 대표 운송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처럼 길리 섬의 유일한 이동 수단은 마차다. 롬복 섬 사투리인 사삭어 손수레(cika)에서 유래된 단어로 ‘치도모’라고 불린다.
길리 섬에 들어오며 캐리어 등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는 관광객들은 택시가 없으니 혹은 길리 섬만의 특별 액티비티로 치도모를 한 번쯤은 이용하게 된다. 보통 한번 이용 시, 10000루피아가 기본요금이며 워낙 작은 섬이기 때문에 이 요금 안으로 모두 이동이 가능하다. 마차 또한 빠르지 않으며, 섬 내부의 인프라가 열악한 편이라 카페, 식당에서의 주문부터 식사까지의 소요시간이 길다. 이 페이스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길리에서는 정말로 일상을 벗어나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즐길 수 있었다.
나름 긴 여행이라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왔다 보니 호텔까지 들고 걸어갈 수가 없어 마차를 탔는데, 이 더운 날 작은 말이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하려나 하는 생각에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졌다.
물이 정말 맑다. 이전에 적었던 것처럼 발리의 바다는 에메랄드 빛 바다는 아니다. 각자 다른 매력이 있지만 길리 바다는 물이 굉장히 맑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그런 빛깔이다. 1년도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길리 섬은 아름다웠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섬이다. 현실세계와는 똑 떨어진 기분이라 온전히 그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휴대폰도 잠깐 덮어두었다.
길리를 찾는 누군가가 일상의 번잡함을 벗어나 바라던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여행 후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