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선후 2편

2. 아버지와 어머니

by RachelJane

소설 박선후 2편

2. 아버지와 어머니



이 이야기는 진짜입니다. 박선후씨는 실제 인물이에요.

아뇨. 그냥 소설입니다. 박선후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2.


회사를 빼앗긴 선후의 아버지는 무기력했다.

그들이 앗아간 것은 그냥 회사가, 돈이, 권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할아버지가 쌓아 올린 인생이었다.

할아버지가 차려준 화려한 밥상 앞에서 수저를 뜨기는 커녕,

상이 엎어지기를 바라보기만 한 자신의 무능력이 그를 괴롭혔다.

수치와 모멸감이 그의 눈을 캄캄히 가려 버렸다.

선후가 세상에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시절부터

아버지의 세상은 어두운 지하에 머물렀다.


그 무렵 외가에도 변고가 닥쳤다.

선후는 여전히 정확한 사건의 면모를 알 수 없지만,

뇌물수수인지 비리인지 하는 정계의 뻔한 사건에 휘말렸고.

그로 인해 어머니는 외가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일하지 않았다.

대궐 같은 집과 너른 잔디밭의 마당이

겨우 열 평 남짓의 볕이 들지 않는 단칸방으로 옮겨졌을 때에도,

집안 일을 돌봐주던 고용인들이 하던 모든 소서로운 일들을

어머니가 직접 감당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떨치지 못했다.

영광이 눈부신 만큼 이면의 어둠은 너무나 짙고 쓰라렸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한 아버지의 육체는 코를 골며 늘어졌지만,

그의 영혼은 오랫동안 불면에 시달렸다.

잠들지 않은 영혼은 평온할 수 없었고,

맹수가 되어 어머니를 괴롭혔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아이가 있었다.

선후와 7살 터울 진 형은, 그 어둠의 시절을 아장아장 걸었다.

상실감에 휩싸인 아버지는 아이를 보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아이를 어느때보다 또렷하게 보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형이 세 돌을 맞기도 전인 73년, 어머니는 아버지와 아이를 두고 독일로 갔다.


독일로 가던 그 날, 어머니는 아이의 모습을 잊지 않으려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바라 보았다.

툭 튀어나온 동그란 이마, 자기를 닮아 어여쁘고 아기자기한 눈과 코,

야물지 못하게 벌어진 입을 기억해야 했다.

눈물이 그렁거려 눈 앞의 아이가 흐려질 때마다

재빨리 눈물을 닦아 내 선명하게 기억하려 애를 썼다.



독일의 젊은 이들은 궂은 일을 하지 않으려 했고,

대한민국은 산업화를 이룩할 외화에 절실했다.

그런 필요로 인해 어머니는 만명 중 한 명의 파독 간호가 되었다.

낯선 땅에서 3년을 벌어 고국에 보냈고,

아버지와 형은 그 돈으로 생활했다.


고국의 땅을 다시 밟기를 소망했던 나날들.

이제는 좀 나아지겠 거니 했던 부푼 기대와 희망을 끌어안고 돌아왔으나,

떨어져 지낸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채 털어 내기도 전에

희망의 불씨는 무참히 꺼져 버렸다.


돌아온 한국에서의 삶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으므로

돌아온 지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독일로 가 2년을 더 보냈다.

2년이 지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기척 하였다.

이제는 형편이 나아 졌으므로 서둘러 돌아오라 하였다.

어머니는 그간의 시간 동안 이제는 익숙해지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던 독일의 땅을 떠났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은 거짓이었다.


선후는 훗날 어머니에게 옛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종종 어머니는 독일의 생활이 얼마나 마음 편하고 그리운 지를 털어놓았다.

선후는 아버지의 거짓이,

이러다간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으리라 가늠했다.

선후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왔으나,

저도 모르게 동시에 아버지를 이해하려 애를 썼다.




어머니가 돌아온 다음 해인 1978년 6월, 선후가 태어났다.

그와 형 사이 7년의 터울에는,

아버지의 잠식된 삶과 어머니의 이국의 삶이 있었다.


어머니는 선후의 태몽을 꿨다.

꿈 속에서 돌아가신 선후의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소 한 마리를 건넸다.

소의 코뚜레를 잡아 끌고 선 어머니 옆에 묶어두고 가셨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의 낯빛이 전에 없이 밝아졌다.

지난 수년 간, 할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아버지에게

할아버지가 끌고 와 넘겨준 ‘소’는 아들에 대한 용서를 상징했다.

용서받은 아버지는 마침 내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갓난쟁이의 따뜻한 체온에

차가워진 제 몸과 마음 구석구석을 데우며 살아갈 기운을 얻었다.


아이의 온기는 제 부모를 데웠고,

그들 삶에서 소리없이 꺼져가던 불씨를 다시 지폈다.

선후는 세상에, 온기로 존재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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