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선후 3편

3. 불안 그리고 사랑, 사랑 그리고 불안

by RachelJane

소설 박선후 3편

3. 불안 그리고 사랑, 사랑 그리고 불안



이 이야기는 진짜입니다. 박선후씨는 실제 인물이에요.

아뇨. 그냥 소설입니다. 박선후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박선후는 1978년 6월에 태어났으나,

국민학교에서의 흔적은 얘기가 모두 달랐다.

상장과 생활기록부에는

77년 1월 생일 때도 있었고, 76년 6월 생이기도 했다.

그렇게 어설픈 시대였다.


그와 그의 가족은 어려워진 형편 탓에

외가의 방 한 칸을 겨우 내어 살았다.

그 덕에 또래 사촌들과 부대껴 지내느라,

혼자 자라야 하는 외로움은 멀리할 수 있었다.

적어도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2살 많은 사촌 누나가 학교에 가고,

동년배의 사촌이 유치원을 가게 되자

그에게도 갈 곳이 필요 했다.

유치원에 가려면 돈이 필요 했고,

졸라대는 그를 외면할 도리가 없어

어머니는 그를 2년이나 일찍 학교에 보냈다.

1년쯤 다니다 다시 입학을 시키면 되겠지. 하던 순진한 생각이었다.

또래에 비해 덩치가 컸고 머리도 명석 했고,

선생들이 어여삐 여긴 덕에 학교 생활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다시 입학 시키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선생의 말에

선후는 차례로 학년을 치뤄냈다.


그러나 외롭지 않으려 서둘러 간 곳에서

아이의 마음에는 다른 것이 뿌리내렸다.

친구들에게 속인 나이가 들통날까 조마조마한 마음.

불안함과 조바심을 언제나 끌어안고 살아야 했다.

아이였던 시절에 뿌리내린 진실에 대한 불안은

그의 생애를 끈적하게 따라붙었다.



불안하고 초조하였으나,

아이는 아이였으므로 밝고 즐거운 일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아이는 타고나게 사랑이 많았다.

특히나 어머니를 몹시도 사랑했다.


어머니에게 선후는 고국에 자리잡아 벤 늦둥이였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어린 풋콩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어머니가 독일의 생을 포기하고 온

냉담한 현실 안에서 어머니의 유일하고 오롯한

'위로'로 존재해야만 했다.

아이의 온 세상이었던 어머니는 다정하고 온화 하였으나,

크고 작은 방식으로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의존했다.


‘후야, 엄마는 후야 없으면 못 산다.

후야, 엄마는 네가 없었으면 진작에 도망 갔을거다.

후야, 너는 아들이 아니고 내 딸이다. 딸처럼 나를 이해해 줘야 한다.’

어머니의 말들은 아이의 귀로 흘러 들어와

마음 속에 똬리를 틀었다.



여섯 살 살 어쩌면 일곱 살 이었을 선후는

타고난 사랑을 엄마에게 쏟아냈다.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집안이 고약한 발냄새로 진동을 했다.

더운 여름 날, 학교의 5-6학년 형들이 단체로 축구 후

단체로 벗어놓은 신발에서 나는 냄새를 흉내 낸 것 같았다.

집에 돌아 오자마자 냄새에 얼굴을 저도 모르게 찡그렸다.

청국장을 좋아하던 어머니가 먹고 싶던 마음을 꾹 눌러 두었다,

그 냄새를 싫어하던 아버지가 집을 비운 틈을 타 몰래 끓인 것이었다.


선후는 어머니가 청국장을 좋아한다는 말에,

역한 냄새와 낯선 맛을 삼켜내며 저도 청국장을 좋아한다 말했다.

엄마 옆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그를 보는 엄마의 눈에서

‘역시 넌 내 핏줄잉게’ 하는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아이는 잠깐이나마 얼굴을 찡그렸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국민학교 2학년의 생일 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건만,

친구 녀석 중 누군가가 선후의 생일이라 방정맞게 떠벌리며 돌아다녔다.

하교시간이 되자 아무런 약속도 없이

열댓명의 아이들이 그를 둘러싸고선 왁자지껄 그의 집으로 몰려갔다.


겉보기엔 어엿한 집이었으나,

외가의 방 한 칸만이 그의 집이었으므로

갑작스러운 아이들의 방문이 식구들에게 달갑게 여겨지긴 어려웠다.


방 한칸에만 있기엔 좀이 쑤신 아이들이 곳곳을 돌아다녔다.

큰 삼촌은 시끄러운 아이들이 성가셨다.

삼촌의 성가신 내색이 어머니의 가슴을 조였다.

어머니는 선후에게 서둘러 오천원을 쥐어줬다.

그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오백원이었으니, 열 그릇을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친정에 신세 지며 모든게 아쉽고 어려웠던 그 시절,

어머니가 오천원의 돈을 내 놓는 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겨우 국민학교 2학년이던 아이는,

엄마가 오천원 짜리 지폐를 급하게 쥐어주던 그 순간,

잊을 수 없는 상심을 경험한다.

자신이 어머니를 상하게 했다는 죄책감이었다.

죄책감은 그를 불안하게 했다.

‘후야, 엄마는 네가 없었으면 진작에 도망 갔을거다’

마음 속에 똬리를 틀었던 말들이 자꾸만 생각났고, 아이는 불안했다.


어느 날 엄마가 말 없이 집에 늦게 들어온 적이 있었다.

사위가 어두컴컴 해지는 데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아이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

스스로를 다독이기에 너무 어렸던 아이는

결국 불안감에 떨다 눈물을 떨군다.

체온이 담긴 눈물이 볼 위에 느껴지자

아이는 어머니의 손길이 생각나 멈출 길 없이 엉엉 쏟아낸다.

영문을 모르는 아버지와 형은 그의 울음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본다.


그렇게 해서

선후에게는 사랑과 불안이 복잡하고 끈끈하게 엉켜

하나로 자리 잡고 말았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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