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박선후의 10대: 가장 찬란한 그리고 가장 잔인한 (1)
소설 박선후
이 이야기는 진짜입니다. 박선후씨는 실제 인물이에요.
아뇨. 그냥 소설입니다. 박선후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4. 박선후의 10대: 가장 찬란한 그리고 가장 잔인한 (1)
남들보다 두 살이나 어린 채로
국민학교에 들어갔으나 그는 꽤 잘 해냈다.
그의 학창시절은 대체로 명석하였고,
때때로 충실하였으며, 다소 감정적이었다.
국민학교 시절,
외가로부터 독립하여 자리잡은 작은 집에서
부모가 다툼을 벌이면 그는 숨을 곳이 절실했다.
공포심을 느끼는 순간마다 의지할 누군가를 찾아 손을 휘저었으나,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7살이나 터울 진 형이 언제나 그의 옆에 있을 리 없었고,
친구들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들킬까 내내 두려웠으므로
친구들에게도 쉽게 의지하기 어려웠다.
작은 집에 도망갈 곳은 없었고,
아주 다행히도 집에 책은 많았으므로
그는 손에 잡히는 책을 도피처 삼아 그 안으로 숨어들었다.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부터였으니
세상에 대한 이해도 없이 무작정 글자들을 읽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사, 삼국지, 사하촌, 메밀 꽃 무렵, 운수 좋은 날
꽂혀있는 책을 아무런 기준 없이 마구잡이로 집어 보았고,
일찍이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어려운 단어와 문장들 속에서,
익숙한 단어들만을 조합해 장면을 그려 보고,
모르는 단어의 뜻은 무엇일까 상상했다.
세상을 잘 모르면서도 '글자의 나열' 안에에서
삶의 문맥과 의미를 찾는 법을 저도 모르게 익혀갔다.
도피처는 그를 현실 넘어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사는 대로 느껴지는 삶이 아니라,
생각하며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물론 그 시절 아이는 그것을 몰랐겠지만.
중학교에 입학하자 왠지 모를 의욕이 샘솟았다.
교복, 새로운 책, 친구들 그리고 새로운 선생님들은
‘새 출발’의 상징이었고,
그러한 것들이 그의 마음에 어떤 불씨를 지폈다.
설렘이 담긴 불씨는 빠르게 불타올랐다.
매년 첫 학기에는 늘 전교 1등을 턱 해냈다.
그러다 끓던 그를 한 순간 식어버리게 한 사건을 마주한다.
수학공부를 하다 어려운 부분이 생겼고,
모범생이던 그를 아꼈던 선생님이 방과 후 과외를 제안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따로 모아놓고
따로 공부를 알려주고 소액의 돈을 받는 일이었다.
지금이라면 그런 일들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사건이겠으나,
그 시절 그것이 가능성 있는 아이들에 대한 일종의 애정이자 지원이었다.
선생님은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로,
아이가 얼마나 명석한지, 그러므로 추가적인 지도가 필요하다 전했다.
하교 후, 엄마는 아이를 불러 물었다.
‘하고싶냐?’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학생의 소임인 공부를 하는 것이므로,
별다르게 고민해야 하거나 대답을 꺼려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네. 하고 싶어요.’
그러나 엄마는 주춤했고 한참동안이나 아버지와 이야기했다.
엄마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돌아왔다.
“기냥 니가 집에서 혼자 함 해봐라잉”
아이는 처음으로 자기가 '당연히 주어져야 할' 것들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뜨겁게 타오르던 불에 모래 한더미가 뿌려졌다.
아이는 차갑게 식어 수학을 그만 두었다.
그는 여전히 아이였으므로, 그 순수함은 학창시절 내내
매번 새롭게 타오르고, 다시금 꺼지기를 반복했다.
고등학교 시절, 매 학년의 설렘으로 늘 반에서 1등을 했다.
학기 중간엔 친구들이, 사춘기가 껴들어 등수를 떨어뜨렸다.
그렇게 그의 10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에게 언젠가,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시절이 언제였어? 라고 물으니,
단번에 고등학생 시절을 꼽았다.
일명 뺑뺑이 방식으로 가게 된 학교는 광주에서 유명한 꼴통 학교였다.
공부 보다는 10대의 남자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장난, 우정, 일탈 같은 것들에 집중하는 곳이었다.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어쩌면 가장 낭만적이고 궁극적인 것들,
사랑, 우정, (10대 나름의 목숨같은) 명예, 비밀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던 인생의 유일한 시절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그간의 소극적인 성격을 고치려
연극반에 들어 주인공을 연기하기도 하고,
순수하지만 불량한 이들과 우르르 몰려 다니며 미팅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 다행히 아버지는 다시 일을 했고,
아버지를 따라 일주일 간 미국에 갈 일이 생겼다.
가장 친한 친구 둘과 짜고선,
몰려다니던 무리의 친구들을 놀려 먹기로 한다.
아이가 결석을 며칠째 이어가자,
그의 친구가 아이들에게 설명한다.
사실은 그가 죽었다. 라고.
아이들은 처음엔 믿지 않았으나,
그것을 사실이라 믿기 시작하자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그렇지만 겨우 며칠이 지난 새 눈물은 모두 말라 버렸으며,
아이들은 그를 잊은 듯이 웃었고, 각자의 삶에 충실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는 그것이 무척이나 서운했다.
처음으로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 남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의 학창시절은
꾸미지 않은 감정들을 주고 받고,
기탄없이 유쾌하고, 이유 없이 불쾌한
그런 사춘기의 시절이었다.
이 시절,
그의 인생 내내 좇아다닐 잔인한 무의식을 만들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 새로운 반에서 한 친구를 만난다.
선후는 태영과 짝이 되었다.
태영은 왁자지껄 몰려다니는
또래 남자 아이들과 달리 희소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린 사내들이 모인 지저분하고 거친 정글 같은 곳에서
신체적인 우월함 없이도 태연하게 존재하는 아이였다.
그는 어쩐지 태영과 있으면 안전하다 느꼈고
자꾸만 그를 찾게 되었다.
어떤 날엔 ‘혹시 내가 태영을 사랑하나?’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둘의 우정은 반을 달리 한 3학년에 이르러서도 계속된다.
아니 더 짙어져 갔다.
선후는 태영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었으므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함께 가자 의기투합했다.
그러나 태영은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그는 태영을 앉혀놓고 자기가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가장 쉬운 말로 공부를 가르쳤다.
성심껏 도왔으나 수능이 다가올 무렵까지
태영에게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같은 대학에 가는 것이 어렵다 느낀 그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그의 성적으로는 갈 수 없었던 대한민국 최고 대학의 최고 학과를 지원한다.
태영과 함께 하기 위해 재수를 마음 먹은 것이었다.
이토록 과감한 결정 앞에서 그는 별 다른 고민도 없었다.
그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에 충실한 결과 였다.
그에게 태영은 그런 존재였다.
태영을 만났던 고등학교 2학년,
한편 그의 인생에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그때부터 7년을 헤매며 사랑하게 될 첫 사랑.
선후가 한 눈에 사랑에 빠진 여자 아이였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은
그가 살아온 해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 행복이 앞으로의 그 인생에
어떤 흉터를 남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