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선후 6편

6. 공기를 먹고 자라 난

by RachelJane

소설 박선후 6편.


이 이야기는 진짜입니다. 박선후씨는 실제 인물이에요.

아뇨. 그냥 소설입니다. 박선후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6. 공기를 먹고 자라 난



“본적을 바꿔 부러라.

항이 너는 장남이 아닝께 바꿀 수 있다”

부모는 그를 불러 앉혀서 이야기 했다.


그들이 살아 온 시대에 그들이 살았던 지역은

외면된 곳이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살아갈 아들에게 미칠

고약한 꼬리표를 염두 한 이야기였으리라.


그곳에서 나고 자란 것을 부끄러워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이 걷게 될 가시밭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런 현실이 싫었으므로

그의 본적은 여전히 광주로 남아있다.



그가 본적을 바꾸기를 거부한 데에

그만의 논리나 신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동네를 뛰어 놀며 들이마신

그곳의 공기 때문이었다.

그 공기에는 켜켜히 쌓인 한이 있었고,

그런 공기를 들이마시며 살면

논리나 신념과는 별개의 행동들을

저도 모르게 좇는 법이다.



1980년 5월.

그가 두 돌도 채 되지 않은 무렵

그가 살았던 지역은 거대하고 무거운 아픔에 짓눌렸다.

계엄군이 도청 진압 전까지 가두방송을 하던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는

그들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멍을 새겼다.


지키고 싶었으나 두려운 마음이 더 큰 보통의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들었지만 들은 체 할 수 없는 밤이었다.


그 날이 있기 수일 전부터

이곳 저곳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복종을 위한 집단인 군인은 ‘진압’이라는

명령 하에 청년들을 몽둥이질했다.


도망하던 대학생 둘이 그의 집 담을 넘어왔다.

그들에게 대문을 열어주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담을 넘어와 집에 들인 이상

그들을 다시 난리통으로 내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그들을 푸세식 화장실 안으로 숨으라 이야기했고,

경찰까지 끌어내리고서 들어온 계엄군들은

흙이 묻는 신발을 그대로 신고선

집 이곳 저곳을 샅샅이 뒤졌으나

건진 건 없는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위협감에 파랗게 질렸다 짧게 안도하며

지독한 냄새를 씻어낸 젊은이들은

그의 가족에게 감사하다 인사하고 서둘러 나갔다.


그 중 한 청년이 그 옆을 아장아장 걷던

아이, 선후의 머리를 쓰다듬고 나갔다.

그들이 그 곳을 떠나 어떻게 되었을 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뒤로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들의 지역엔 찌는 듯한 한 여름에도 공기가 서늘했다.

부모님은 할아버지의 묘역에 가시면

항상 몇 군데를 더 들러 술을 따르고 절을 했다.

그는 그들이 누군지 몰랐으나

물어서 안 될 것을 알았으므로

조용히 따라다녔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그가 버스를 타고 선

별 생각 없이 창 밖을 내다보는데

‘광주 직할시 승격, 전두환 각하 감사합니다’

라는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겨우 10살 남짓의 어린 아이였음에도

표현하기 어렵고 묘한 감정을 느꼈다.

뒤에선 분노의 감정이 뚜렷한 아저씨들의 음성이 들렸다.

그것은 대체로 무척이나 거친 욕들이었으나,

어쩐지 그 욕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가 재수를 하던 해,

그 사건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진다.

그 당시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도청 앞에서 진압 장면을 촬영하던 중이었다.


그도 촬영이 신기해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장면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할머니는 군복 입은 연기자를 붙잡고선,

군인 양반. 이러면 안돼. 애걸했다.

‘할머니 이건 영화에요. 진짜가 아니에요’

하는 영화 관계자의 설명에

할머니가 발길을 돌렸으나,

촬영이 재개되자 할머니는 다시 뛰어들었다.


이번엔 관계자가 아닌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할머니에게 다가가 아무 말도 없이 할머니를 안아주었다.


주위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훌쩍이는 소리조차 죄책감이 들어

함께 있던 이들은 숨죽여 조용히 울었다.

거기에 그도 조용히 있었다.


이런 공기들이 그의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몸 속에 꽉 들어찬 공기.

본적을 바꾸라는 권유에 깃든 부모의 염려를

알면서도 따를 수 없던 이유였다.


이 공기는, 세상을 보는 선후의

눈에, 귀에, 코에, 입에 탁 달라붙어

세상의 오감을 특정한 방식으로 느끼게 했다.


무해한 자들이, 나의 옆집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자식을 잃은 부모가 되었고,

한 집안이 재처럼 쉽게 부서진다는 것.

부서진 잿속에 자라난 아이들은,

그리고 아이들의 아이들은,

사건을 목격하지 않았음에도 목격자로 살게 된다.


박선후는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자신도 모르게 목격자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게 20살이 되고 30살이 되고 40살이 넘어선

선후의 삶에 새겨진 가닥 가닥에는

언제나 그날의 공기가 흐르게 된다.


그것은 결국

그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외면하며

누구에게 분노하는지에 닿게 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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