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바다, 콩

(feat.아이스크림과 버스)

by Rachel

나는 내 영혼의 짝을 이미 만났다.
그건 내 남편이고, 지금도 곁에 있는 사람이다.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기로 선택한 사람.



그렇지만 내 영혼의 친구는 또 따로 있다.

콩이.

그 애는 내게 바다 같은 존재였다.

사랑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우정이라 하기도 부족한—

영혼끼리 닿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친구였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들으면 ‘사귀는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연애의 감정은 없었다.

그저 그 이상의, 그러나 다른 종류의 깊은 우정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친구를 대할 때, 한 겹의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했다.

웬만하면 다들 그 가면을 눈치채지 못했는데, 콩이는 그걸 알아봤다.

그리고 물어봤다.

"왜 그렇게 웃어? 너 진짜 웃지 않잖아."

그 말에 뜨끔해 아하하 웃어넘기자, 그 애는 진짜 웃음이 아니라고 지적하며,

내 안의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려 했다.

우리는 순수했고, 서로의 가장 안쪽을 꿰뚫던 시절이었다.



어두운 곳에 있을 때면, 나는 늘 그날을 떠올린다.
콩이와 함께 극복했던, 공포의 순간.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던 초등학교 운동장을 산책하던 우리.
서로의 호감 상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고,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사실 나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첫 학원 땡땡이를 감행한 날이었으니까.


그런데, 내 시야 한쪽에 갑자기 야광처럼 빛나는 소녀의 실루엣이 보였다.
초등학교 건물 3층쯤이었을까.

무엇보다도 끔찍했던 건—
그 소녀의 흰 원피스 아래에는 발이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그 자리에 멈춰서 돌처럼 굳었다.

그러나 콩이는 아무것도 안 보였는지 나와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콩이와 눈이 마주쳤다.

콩이는 왜 그러냐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고, 나는 그제야 돌처럼 굳은 내 몸이 풀리는 걸 느꼈다.

"저, 저, 저기 귀신.."

"귀신? 내 눈엔 안 보이는데."

"바, 발이 없는 여자애가 있었어.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그래? 난 안 보여. 근데, 너 괜찮아?"

"아.. 안괜찮아.."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흐엉, 하고 울어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놀라버렸으니까.

콩이는 그 자리에 서서, 내가 안심할 때까지 어깨를 잡고 토닥여 주었다.

그날, 나는 집에 가는 것도 무서워 할 뻔 했지만,

내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 준 콩이가 있어 안심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콩이와 있을 때만은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귀신보다 무서운 세상이었지만, 그 애의 손길만은 나를 붙잡아 주었으니까.




콩이가 군 복무를 할 무렵, 그 애의 면회를 간 적이 있었다.

ROTC였던 콩이는, 중대장과의 파티에서 파트너가 필요하다며 나를 초대해 줬다.

나는 뭣도 모르고, 강원도에 있는 콩이의 숙까지 갔다.

차비는 다 썼고, 꽤 밀리는 지역이라 그런지 가는데만 여섯 시간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그래서일까, 여섯시간 동안 공복이었던 나는 가서 뭘 먹지를 못했다.

속이 안 좋아서, 먹은 걸 토해내는 것을 반복했다.

결국 얼굴이 완전 하얗게 변해버린 나는, 미안하게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많이 먹으라고 초대한 자리였는데, 나는 지각까지 했고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미안함에 고개를 들 수 없던 나에게, 콩이는 오히려 “와 줘서 고맙다”며 등을 쓸어내리며 토닥여 주었다.

그 순간, 긴 여정의 피로와 서러움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나는 그날, 콩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사실 그 자리는 서로의 ‘여자친구’를 데려오는 자리였다.

동생을 데려온 사람도 있었고, 나 역시 여자친구라기보다는 여사친 자격으로 참가했다.

그래서 여자친구분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콩이 옆에 앉아 있으면 그 어색함이 금세 사라졌다.


다음 날, 콩이는 나를 데려다주며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다.
전날 아무것도 먹지 못해 서러웠던 내가, 이번에는 천천히, 제대로 맛을 볼 수 있었다.
차갑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마치 그 애의 마음 같았다.


우리는 오락실에 들러, 콩이가 좋아하던 철권을 하는 걸 구경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나는 집으로 내려왔다.
터미널에서 “와 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콩이에게, 나는 도리어 “나야말로 고마워”라고 답했다.

그때의 버스표를 나는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다.
일상에서 힘들 때마다 잠시 꺼내 쥐며, 그 애가 내 곁에 있어준다고 생각하면서 버텨내곤 했다.

내 바다 같은 친구들이, 그 버스표 안에 있었다.

희야, 빛나, 써니, 지나, 콩이까지-



나는 가끔, 지금도 콩이에게 연락을 한다.

내가 힘들었던 시절, 힘이 되어준 나의 친구에게.

나의 바다 중 하나이자, 힘이 되어준 내 친구-

사랑이 아니었기에 오래도록 지켜낼 수 있었던 관계였다.

그래서 지금도 웃으며 친구라고 말할 수 있다.



콩아.

내 바다가 되어줘서, 고마워.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오늘도.

힘내서 살아가는 네가, 자랑스러워.

나의 자랑이 된 친구야. 오늘도 너의 앞길에 행복만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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