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그래도 이어지는)
7월의 더운 날씨와, 하루 세 번 이어지는 먹고 운동하기.
젊은 20대의 청춘에게도 벅찼나 보다.
셋째 날 아침이 밝자, 나는 짐을 싸는 동기의 뒷모습을 보았다.
밤새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그 애는 끝내 버거웠는지,
딱 한마디를 남기고 합숙소 도장에서 퇴소했다.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기수는 그 말을 듣고, 그 친구를 말릴 수 없었다.
짐을 싸서 떠나는 친구의 방학이 즐겁기를 바라며 배웅을 했을 뿐이었다.
열심히 하던 친구는 아니었지만, 남은 합숙 잘 하라며 손을 흔들며 나가는 뒷모습이 아쉬웠다.
친구의 뒷모습은 담담했지만, 어쩐지 불길했다.
곧, 저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예감이 스쳤으니까.
불길한 예감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점심운동을 시작했다.
호면을 쓰고 하다가 내가 자세를 제대로 못 잡아서인지,
우리는 명상을 10분 더 하고 빠른머리 천번 치기를 하고 있었다.
내심 내 탓이라는 마음 때문인지, 도장 전면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어두웠다.
도통 표정 관리를 못 하는 나 때문일까.
왜 자꾸 500번에서 막히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 이유를 알았다.
선배들이 끊임없이 자세를 점검하는 걸 보며,
나는 심장을 조이는 끈을 바짝 당겼다.
더 긴장해야 했다.
앞으로, 뒤로. 점프, 점프!
자세를 지키면서도 일정한 호흡으로 기합을 내질러야 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머리이!”
호흡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횟수는 끝도 없이 늘어만 갔다.
그렇게 간신히 천 번을 마친 뒤, 마침내 첫 부상자가 나왔다.
단아한 외모에, 여리여리한 동기 란란이었다.
란란이는 계속 발목이 아프다며, 결국 총무인 라미 언니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다가, 나는 곧 깊은 낮잠에 빠져들었다.
천 번 치기의 후유증 탓이었을까.
그날의 낮잠은 유난히 달콤했다.
그리고, 낮잠 뒤 전해진 란란이의 복귀 소식은 모두의 궁금증을 불러모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합숙 세 번째 저녁, 란란이에게 내려진 판정은 단호했다.
운동 불가.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던 모습을 알기에, 란란이의 부상 소식은 사범님께도 큰 걱정이 된 듯했다.
사범님은 직접 수건을 뜨겁게 데워 란란이의 발목에 조심스레 대어 주셨다.
저녁 운동 내내, 사범님의 시선은 늘 란란이 곁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곁눈질하며, 부상을 입지 않도록 한동안 몸을 사렸다.
아킬레스건을 다친 란란이는 걷는 건 가능했지만, 뛰는 건 불가능했다.
그 부상은 발목이 얇은 나에게도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것이었기에
괜히 더 조심스러워졌다.
란란이를 대신해, 그 몫까지 채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계속 몸을 움직였다.
그날 운동을 마무리한 구호는 하나였다.
“동기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
그 뜻은 분명했다.
오늘 퇴소자와 부상자를 합쳐서,
우리는 여전히 하나라는 것.
그러니 남은 우리가 그들의 몫까지 해내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그 외침이 무색하게, 또다른 부상자가 생겼다.
운동이 끝나고 이리저리 다니는데, 끈적거리는 것을 보니 피였다.
누가 코피를 흘렸나 싶어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진진이가 샤워실에서 나오면서 무척이나 아파하는 걸 보았다.
“왜 그래? 어디 아파?”
“나, 발바닥 찢어졌어.”
“뭐? 어디 봐.”
“뭘 봐! 발바닥을 왜 보냐.”
“아프다매. 약은 발라야 할 거 아냐. 으— 진짜 아프겠다.”
알고 보니, 어제부터 잡혀 있던 발바닥 물집이 저녁 운동 도중 터져 버린 것이었다.
나는 물집이 잘 잡히지 않는 편이라, 그 애의 고통을 온전히 짐작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약을 발라주는 내내,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오싹해졌다.
몸을 바르르 떨고 있으니, 선배들이 샤워실에서 나오며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D야, 너 왜 그러냐?”
“진진이 발에 물집이 터졌어요. 아플 것 같아서요.”
“그래? 어디 보자. 흠, 이 정도면 심하지는 않네.
우리도 합숙 때 다 그랬거든.”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는 선배들을 보며, 나는 아픈 동기들을 하나둘 세어 보았다.
발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동기는 셋이 넘었고, 손에 물집이 잡혀 붕대를 감은 동기도 둘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새끼손가락 옆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힌 것 말고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꼭 내가 운동을 설렁설렁 한 것 같아 기분이 묘해졌다.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은 손바닥을 내려다보다, 도장 바닥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을 보며 눈을 감았다.
보름달이 환하게 떠오른 보름밤.
여름인데도, 풀벌레 소리가 찌르르 울려
마치 텐트 친 자연 속에 있는 듯했다.
‘나… 내일 다쳐야 하나?
아니, 그러면 아프겠지.
그렇다면— 아픈 애들 몫까지 더 열심히 해야지.’
여러 생각이 켜켜이 겹쳐졌다가,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누군가 펴둔 이불 위에 꼼지락거리고 있었고,
곧 선배들의 목소리가 네 번째 아침을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