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문턱, 아침 산책

(feat.눈부신 아침, 기나긴 오후)

by Rachel

우리의 첫 합숙날은, 실수투성이에 혼나는 일 투성이로 시작되었다.

게다가 한 번이던 운동이 세 번으로 늘어나면서, 체력적으로 더욱 버거웠다.


나는 하루 한번이던 운동이 세번으로 늘어나도 그리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 운동을 하고 나서 좀 쉬고, 점심 운동 하고, 쉬고 나서 저녁 운동을 하니까.

중간중간 쉬어주는데 뭐가 힘들겠어? 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그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다.
다음 날, 근육통으로 뒤엉킨 내 몸은 도무지 내 것이 아닌 듯 낯설었다.
천근만근의 무게를 안고 움직이는 순간마다,

나는 내 몸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스스로 의아해했다.


근육통은 둘째 날 아침, 정점을 찍었다.
하루 세번 운동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눈을 붙였던 전날 밤이 무색하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다리가 덜덜 떨려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내가 아무리 저질 체력에 유리 체력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못 버틸 줄이야…’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당황스러웠다.


내 마음은 당황으로 가득했지만, 합숙의 스케줄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도장 밖으로 나가, 좀비 군단처럼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다.


아침 햇살은 길게 뻗어 있었지만, 내겐 노을처럼 차갑게만 다가왔다.
천근만근의 다리를 질질 끌며, 어기적거리며 동네를 한 바퀴 돈 순간—
마침내 도장 앞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겨우 걸어 도착한 우리는, 거기서 아침밥을 먹을 수 있었다.


다리가 안 움직인다며 몇 번이고 울먹거리다가, 결국은 '아부지'의 손을 잡고

어기적 도착한 난, 밥을 먹는 게 내키지가 않았다.

벌써부터 혓바늘이 돋은 듯 모래알처럼 느껴지는 밥알 하나하나에-

아침식사임을 증명하듯 고기 없는 식당 메뉴는, 나에게 좀 힘들었다.

그 때의 나는 아침 고기를 무척 선호하던 20대였으므로.


그렇게 아침을 먹고 나니, 드디어 호구를 처음 쓰게 되었다.

합숙 첫날에는 호구의 각 요소를 배우고,

그동안 익혀온 ‘보법’과 ‘기본 자세’를 복습한 뒤
빠른 머리치기로 마무리했었다면—

이날은 처음으로 호구를 착용하는 날이었다.

우리는 모두 호구를 처음 써본다는 설렘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호구를 쓰고 대회에 나간 경험이 있던 산적은,

그런 우리를 바라보다가 툭 내뱉었다.

“—니네, 오늘부터 지옥 시작이야.”


“도대체 무슨 뜻이지?” 속으로 되뇌었지만, 곧 정신이 쏙 빠졌다.
호면을 쓰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머리를 보호하는 호면은,
먼저 머릿수건을 바르게 두르고, 끈을 단단히 묶는 일부터 시작한다.
처음 해보는 우리에겐 그 모든 과정이 하나같이 버겁기만 했다.


결국 점심 운동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는 호면 쓰기 연습만 하고 있었다.


손목을 보호하는 호완은 또 달랐다.
내 손보다 훨씬 커서, 죽도를 잡기도 전에 자꾸만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결국 선배들이 자기들이 쓰던 헌 호완을 내줄 정도였다.


허리와 배를 보호하는 장비인 갑은, 허리에 맞긴 했지만 가슴 부분이 너무 커서
훈련부장 선배가 직접 다듬어 주어야 했다.
게다가 갑상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길이 들지 않아 끈을 묶는 내내 낑낑대야 했다.


그렇게 겨우 장비를 모두 착용하고 일어서자—
순간, 장비의 무게에 눌려 휘청거리고 말았다.


‘억—’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휘청거리자,
훈련부장 선배와 사범님은 나를 보더니 잠시 숨을 고르라 했다.


숨을 고르며 잠시 서 있으니,
장비의 무게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듯했다.
그 순간, 사범님이 말씀하셨다.


“죽도를 중단세로 들고 서 봐.”

죽도를 들고 계속 중단세 자세를 유지하자,
곧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분명 가만히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은 자꾸만 휘청거렸다.

결국 자세가 무너지는 순간, 사범님의 호통이 날아왔다.

“정신 차리고 중단세 해라! 그러다 넘어진다!”



그렇게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장비에 익숙해지기 위한 몸짓을 시작했다.

점심나절에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동기들은 하나같이 호면을 벗고 싶어 했다.
호면을 쓰면 시야가 좁아지고, 숨쉬는 것마저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맞기수 라미 언니가 숨쉬는 꿀팁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도 숨을 쉬는데 물고기처럼 뻐끔거려야 했을지도 몰랐다.

턱을 들어올려서 조금이라도 틈을 만들어 숨쉬는 꿀팁은, 그 이후에도 유용히 쓰였다.



점심나절 호면 쓰고 운동이 끝나자, 나는 명상 시간에 모두의 얼굴을 살짝 둘러봤다.

선배들은 상기되어 있지 않은데- 우리 기수만 얼굴이 모두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물론, 우리 기수 중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산적은 고요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 말간 얼굴이 얄미웠다.


아침에 한 그 '지옥의 시작'이 이런 의미였으면 귀뜸이나 해주지.

그게 뭐야.


툴툴거리며 명상을 시작하다가, 사범님이 일침을 가하셨다.

"D! 뭐하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명상을 시작했다.


후우- 하고 숨결처럼 여름 바람이 도장을 쓸고 지나갔다.

그 날의 명상은, 길고도 깊었다.

그날 우리를 스쳐가던 여름 바람은, 습도가 높아서인지는 몰라도-

이상하게도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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