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고병희에 대해서)
아주 오래 전, 고현정과 천정명이 주연인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극의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건 화려한 주연 라인이 아니었다.
극 초반, 주인공 고병희의 독백이었다.
병희는 자궁암에 걸렸다고 오해하며, 그 두려움에 휩싸여 옆집 동생 철수 앞에서 통곡한다.
“나는 이제 시작도 못 했는데… 이제 겨우 뭔가를 살아보려 했는데…”
그 절규는 드라마 속 대사일 뿐이었지만, 오래도록 내 마음에 메아리처럼 남았다.
늦게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그때 처음 깊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빠와 이름이 같은 고병희의 절규는, 유난히 내 가슴을 더 아리게 했다.
그저 극 중 인물의 독백이 아니라, 마치 내 곁의 누군가가 흘린 눈물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병희는 난소 모형을 물에 띄워 보내는 기행을 하며 다짐한다.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자궁을 위해, 앞으로는 6개월마다 산부인과 검진을 받겠다고.
그때만 해도—무려 19년 전—산부인과를 찾는 여성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런 시대에 이런 서사가 드라마에 담긴 건 작은 파장이 아니라, 굉장한 반향이었다.
실제로 ‘여우야 뭐하니’ 이후로는 산부인과에 가는 일을 ‘수치스럽다’고 보는 시선이 눈에 띄게 줄어든 듯하다. 나 또한 그 전까지는 ‘산부인과’라는 단어에조차 묘한 거부감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극 중 병희가 비뇨기과 의사인 배박사를 만나는 장면이 내겐 더욱 묘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배박사는 당시만 해도 민망했을 법한 진찰 장면이나 환자들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며, 기피과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덜어주었다. 생각해보면,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모두 ‘묘한 시선’을 받는 과였기에, 그 미묘한 사회적 공기가 드라마 속에서 더 실감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 극을 보면서 나는 정말 실감나게 잘 만든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작품은 의료라는 프레임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요즘 말하는 ‘슈가 대디’, 일명 스폰서 문화에 대한 사회적 비판도 과감히 담아냈다.
손현주 씨가 연기한 박병각은 바로 그 ‘스폰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고준희 씨는 1인 2역으로, 고병희의 동생이자 스폰서를 받는 모델 지망생을 함께 연기했다.
모델 세계에서 ‘스폰서’를 받으면 껑충 올라설 수 있었던 시대—하지만 그 선택은 결국 가족과 갈등을 일으키고, 사회적 비난을 불러왔다.
당시 이 설정은 충격적이면서도, 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로코물이라고는 해도, 이 두 가지 면을 담고 있다는 면에서 나쁜 드라마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청소년에게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면에서, 15세 미만 시청금지가 왜 걸렸는지를 알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비로소 드라마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한 시대의 공기와 문제의식을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실감했다.
'와, 잘 쓴 드라마는 저렇게까지 모든 걸 담아낼 수 있구나.'
특히, 주인공 고병희는 야한 잡지, 일명 '19금 잡지'의 기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직업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프로정신을 잃지 않았다.
서점에 들러 자신의 기사가 잘 보이도록 잡지를 늘어놓는 모습마저,
현실을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와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녀의 절규를 떠올렸다.
“나는 이제 시작도 못 했는데…”
늦은 시작의 두려움보다, 지금의 시작을 붙잡는 용기가 더 소중하다는 걸,
그 드라마가 오래 전 내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그 때 나오는, 안미선 씨의 '늦은 시작'을 들으며, 나는 잠시 생각을 해 본다.
이 노래에서 나오는 늦은 시작이란 무엇일까.
남들보다 조금 늦게 출발하는 것일 수도,
때를 놓친 뒤에야 용기를 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병희의 절규가 내게 남긴 건 분명했다.
“나는 이제 시작도 못 했는데…”
늦은 시작은 슬픈 게 아니라,
비로소 ‘시작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시작이라는 말은, 아마도—
비로소 피어나는 꽃에서 비롯된 말이 아닐까.
오랜 시간을 기다려 500년 만에 피는 연꽃처럼,
나의 기다림 끝에 피어나는 순간이 바로 시작일 것이다.
노력 끝에 피어난 꽃이 더욱 아름답듯,
삶 속에서 피워낸 작은 꽃 하나하나가
결국은 나의 ‘늦은 시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