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와 바람으로 여는 기억들

(feat.H언니의 기억법)

by Rachel

어느 햇살 좋은 오후,
창밖으로 비치는 가을빛을 바라보다가
문득 H언니와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언니, 좋아하는 공기나 냄새 있어요?”

“음… 나는 새벽공기 냄새, 그리고 밥 냄새?”

“밥 냄새는 알겠는데… 새벽공기는 왜요?”

“별건 아니야.”


그렇게 말을 꺼내던 H언니의 표정에는 잔잔한 감성이 배어 있었다.

언니는 어린 시절,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고 했다.
가을이면 그 마당에서 철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새벽공기를 들이마셨던 기억이 선명하다고 했다.

폐부까지 시원하게 스며드는 그 공기,
그 푸르고 청명한 향기를 떠올리며 “그때가 가끔 그리워.”
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어릴 적의 감성을 고스란히 품은
그 시절의 H언니를 잠시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풍경이 또렷하게 그려졌다.

마당 한 귀퉁이, 평상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던 어린 소녀.
새벽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철새들이 날아가는 자취를 조용히 따라가던 모습.

가을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고요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소녀의 뒷모습이—
내 마음 속에도 선명히 찍혀 남았다.




언니의 향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내 마음 속에서도 오래전의 무언가가 조용히 깨어났다.

나는 그 시절, 바람의 냄새를 유난히 좋아했다.
풀 냄새, 특히 파란 논에서 스며 나오는 그 향이 스친 바람—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환하게 열리곤 했다.

그 애가 곁에 있었던 시절,
논에서 불어오던 그 바람의 향기는
어쩌면 향수보다 더 확실하게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가끔 바람이 스칠 때면 그때의 소리가 먼저 떠오른다.


푸릇푸릇한 벼가 일렁이던 논 어귀에 서서 눈을 감으면—
바람결을 따라 어릴 적의 향기가 조용히 되살아난다.

그날의 향기, 그날의 바람, 그날의 마음.
모두가 마음 속 사진처럼 선명하게 번져와
나는 또 한 번, 향기와 바람으로 기억의 문을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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