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오후의 윤회 이야기

(feat.병아리가 되고픈 곤죠왕자)

by Rachel

여느 토요일 오후,
곤죠왕자의 병아리처럼 톡 튀어나온 입술을 보며
“병아리 같다”고 장난을 치던 순간이었다.



문득 곤죠왕자가 고개를 들더니 물었다.


“엄마. 병아리는 죽을 때 왜 뾰욕 하는 거야?
병아리가 죽으면 왜 닭이 못 돼?
왜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나면 닭이 못 돼?”



“응? 죽으면 닭이 못 되는 건 맞지. 더 크지 못하니까.”

그러자 곤죠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근데… 다시 태어나서 닭이 될 수도 있지 않아?”

“아? 그런 뜻이라면, 다시 태어나면 닭이 될 수도 있지.”

“생명이 그렇게 돌아가는 걸 윤회라고 한대.”

“그런 말도 배웠어?”

“응, 윤회라는 말도 배웠어.”


작은 입술에서 ‘윤회’라니.
나는 잠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럼 윤회가 빙글빙글 돌아서… 파리가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야?”

아이의 세계는 언제나 이렇게 멀리 뻗어나간다.

“진짜? 그럼 파리가 죽으면 사람이 될 수도 있어?”

“응, 그럴 수도 있지.”


그때 곤죠왕자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졌고,
나는 며칠 전의 ‘젊은 호박 사건’을 떠올렸다.


어머님과 저녁을 함께 먹고 돌아오던 밤,
E-Mart 24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고 나오는데
입구에 놓인 늙은 호박이 곤죠왕자의 시선을 붙잡았다.


“곤죠 왕자는 늙은 호박 겉은 못 먹고, 속은 파서 먹는다는 거 알아?”

“응, 인제 알아. 근데 왜 늙은 호박이라고 불러?”

“음… 다들 그냥 그렇게 부르지. 길쭉하게 생겨서 된장찌개에 넣는 호박도 있어.”

그러자 곤죠왕자는 금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아! 그건 젊은 호박이겠네?”

그 내리막길 한가운데에서 곤죠왕자는 젊은 호박이라는 새로운 생명 분류 체계를 창조했다.

“젊은… 호박?”
산적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되묻자,

“응! 아직 어리고, 반질반질하고, 길쭉해서 ‘안녕!’ 하고 인사하는 호박!”

그 진지한 설명에 정말 어딘가에서 ‘젊은 호박’이 톡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정정해주려는 찰나, 산적이 말했다.

“곤죠야, 그건 ‘애호박’이라고 불러. 젊은 호박이 아니라.”

“그러면 늙은 호박은? 왜 늙은 호박이야?”

산적은 조금 생각하더니 다정하게 말했다.


“늙은 호박은… 세상을 오래 본 호박이라 그래.
속에 이야기가 가득 들어 있거든.
그래서 그걸 파내서 먹는 거야.”


다정하게 설명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늙은 호박의 호박씨도 까서 먹어. 볶으면 맛있다?”

“진짜? 다음에 꼭 먹어볼래!”

그날의 밤 산책은 결국 ‘호박씨를 까서 먹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죽은 병아리가 산 닭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고민하고,
파리가 어떻게 사람이 되는지 신비해하며,
젊은 호박과 늙은 호박을 분류해내는 아이.


아마 곤죠왕자의 세계에서는
윤회가 병아리와 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파리와 사람, 호박과 호박 사이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빙글빙글 이어지는 일일 것이다.



“젊은 호박 얘기 기억나?”

내가 묻자,

“응! 애호박이랑 늙은 호박 이야기! 근데… 호박도 나중에 사람이 될 수 있어?”

나는 웃음을 참으며 답했다.

“그럴 수도 있을걸?”

곤죠왕자는 눈을 크게 뜨더니 말했다.

“그럼, 나는 나중에 엄마랑 같이 태어나는 호박 될래!”


그 말이, 호박 속 오래된 이야기를 툭 꺼내놓는 것처럼
조용히 마음에 내려앉았다.


작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윤회 이야기.
병아리도, 파리도, 젊은 호박도 오가는 그의 세계 속에서—

아이의 다음 생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그 다정한 순환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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