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내보내기와 불러오기)
나는 요즘도 책을 읽고, 손에 익을 정도로 들고 다닌다.
내가 읽는 책들은, 확실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 꽉 막힌 감성의 결이나 마음의 결을 뚫어주는 일이 있다.
나는 그게 책이 가진, 가장 근사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자녀교육서를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서를 읽는 것처럼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마음이 정돈된다.
책 속에는 교육자들의 목소리가 배어 있기 때문일까.
교육서를 읽고 있으면 흐트러진 감성도, 복잡한 감정도 정제되는 기분이다.
이상하게도,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나의 감성도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대학생 시절 나는 늘 역사서를 읽었다.
역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 문체를 좋아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문체를 닮고 싶어 써 내려간 글은 생각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점점, 책을 읽고도 독후감만 쓰고 글을 쓰지는 않게 되었다.
논문 쓰는 법을 배우고, 기술적인 글쓰기를 연습하던 시간에도
내 문체는 문제였다. 시험을 보면 늘 하위권, 꼴찌.
결국 나는 대학 시절, 펜을 꺾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펜을 다시 들었다.
말이 되지 않던 마음을, 말이 되게 하고 싶어서.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넘치는 감성과 감정을 머릿속에 담아두기엔, 흘러넘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어떤 날은 넘침에 슬펐고, 어느 날은 담지 못함에 서러웠다.
그래서, 그런 날은 다이어리를 펼치고 계속 써내려갔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나만의 감정과 감성들을 기록하기 위해.
하루하루 썼고, 쓴 다이어리는 여섯 권이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많은 것을 지나왔고,
이 감정들은 다이어리로는 부족하다는 걸.
내 감성을 담기에는 다이어리 하나로는 부족했다.
올해부터는 두 개의 다이어리를 썼지만, 그것마저도 부족한 날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나온 모든 것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
글쟁이들에게 글은, 숨쉬는 것과 같다.
숨을 쉬듯, 글을 쓰고 그 글이 언젠가 타인과 연결되기를 바란다.
입력과 출력이 있어야 컴퓨터가 작동하듯, 감성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인풋(입력)이 있어야 하고, 그 감성을 흘려보내는 아웃풋(출력)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음악으로 감성을 받고, 그걸 그림으로 내보낸다.
누군가는 관계 속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그걸 시나 글로 흘려보낸다.
감성도 회로처럼 흘러야 멈추지 않는다.
계속 쌓이기만 하면 과열되고, 내보내지 않으면 언젠가 멈춰버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숨 쉬듯, 마음을 살리기 위해.
그 감성의 결을, 다시 들여다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