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눈을 보아요
가시덤불로 둘러 쌓인 곳에 작은 입구가 있다. 몸을 최대로 낮춰 들어간 곳에는 여러 작은 초가집들이 보인다. 그 집들 둘레에는 또 다른 가시덤불이 둘러 쌓여 있어 각각 자신의 집의 경계를 표시하는 듯하다. 무너질 듯한 천장에 낮에도 깜깜한 실내에는 먹을 음식도 제대로 된 잠자리도 보이지 않았다. 외양간보다 작고 어두운 그곳에 어린 쌍둥이 아이들과 10살 소녀 그리고 할머니가 살고 계신다.
주름진 그녀의 얼굴은 두 쌍둥이 아이들에게 젖을 물리기에는 나이가 든 듯했다. 그녀의 젖을 쌍둥이 아이들은 양쪽에서 빨고 있었다. 너무나도 연약하고 작은 아이들이 물고 있는 젖은 이미 말라버렸지만 아이들은 살기 위해 그렇게 그녀의 품에 안겨 있었다. 이미 이 세상에는 없는 아이들의 부모를 대신해서 할머니는 자신의 빈젖을 내어주고 있지만 일을 하러 나설 상황은 아니었다. 10살 소녀는 할머니와 어린 쌍둥이 동생을 위해 옥수수 가루를 만드는 일을 하고 아주 조금 양식을 받아 왔다. 빌려온 냄비에 물을 넣고 옥수수죽을 만드는 아이의 얼굴은 곧 배를 채울 동생들의 모습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컵에 담긴 죽을 먹는 작은 동생들을 보며 할머니와 아이는 자신의 배고픔을 달래는 듯 보였다.
너무 먼 세상 이야기 같다. 버튼 하나면 아이들 이유식까지 문 앞으로 배달되어 오는 세상에 사는 우리와 달리 냄비도 숟가락 하나도 없는 곳에서 사는 그들의 모습이 낯설다. 아픔을 넘어서 그들의 고통이 상상을 넘어서기에 아마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다. 아니 그들의 모습을 보려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배불러 남기는 음식을 거침없이 버리는 이곳에서는 위생과 교육열이 높다. 유치원과 학교에서는 위생을 위해 남겨진 음식은 무조건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성장을 위한 다양한 교육은 학교가 끝난 이후에도 아이들을 학원순례하게 한다.
최고로 키우거나 아니면 아이가 없는 삶을 택하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은 어느덧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아이를 낳으면 지원해 준다는 사회분위기에도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인구 고령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영양이 과잉이 되어 비만이 돼 버린 이들에게는 이상한 모습이 있다. 운동도 돈이 들고 먹는 것도 돈이 든다. 친구를 만나는데도 돈이 들고 배움에도 돈이 든다. 냉장고에 음식이 많아도 먹을 것이 없다 하고 옷장에 옷이 많아도 늘 입는 옷만 입으며 입을 옷이 없다고 한다. 집에서 직장으로 또는 카페나 음식점으로 자꾸 지붕이 있는 곳에서만 있으려 한다. 걷는 대신에 차를 타고 움직이는 대신에 말을 많이 한다. 풍요하지만 빈한 곳에서 사는 우리는 공허한 마음을 무엇으로 계속 채우려 한다. 그러니 음식을 가지고 갖은 장난을 친다. 온갖 양념에 입맛을 맞춘다. 있어도 디자인이 다르다고 구입한다. 쌓이는 택배상자로 가득한 분리수거함의 어수선함을 뒤로하고 쌓이는 물건으로 자신의 마음의 허기를 채운다.
생명의 기본 권리조차 허용되지 않는 곳에 사는 이들의 모습과 풍요 속의 빈곤으로 무감각해지는 우리들의 삶이 묘하게 닮아 있다. 할머니의 빈젖을 물고 있는 쌍둥이 아이들의 눈과 컴퓨터 게임으로 몰두한 아이들의 눈이 닮아 있다. 배고픔과 생존에 대한 아이들의 눈빛은 현실을 벗어나 온라인 세상에 몰두한 우리 아이들의 정서적 허함과 비숫해 보였다.
자신이 정확이 어디가 허기졌는지 알지 못하고 사는 이는 방황한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허한 마음을 음식과 술담배나 오락으로 채운다. 그렇게 채워야 숨이 쉬어지기 때문이다.
그 채움이 조금이라도 비워지면 여유가 없어진다. 다시 채우기 위해 동부서주한다.
겉으로 치장한 가면 뒤로 자신의 실체를 숨긴다. 친절한 척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신에 대한 관대함과 합리화는 상대에게 비난으로 이어진다.
극단적 모습의 양극화를 생각해 보았지만 어느 정도의 모습은 다 우리 안에 있다. 매일 쌓이는 먼지처럼 자신 안에 쌓이는 불순물이 자신을 오염시키고 있을음 알지 못하면 균형을 잃는다. 삶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버린다. 먹기 위해 살고 즐기기 위해 살게 된다.
빈젖을 빠는 아이에게 먹을 음식을 주고 아이가 학교를 다니게 한다면 그 아이의 눈은 허기에서 벗어날 것이다.
게임에 빠진 아이에게 마음을 전해주고 사랑을 표현한다면 그 마음의 허기가 가실 것이다.
서로의 허기가 채워지고 연결되기 위해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