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묵혀 있던 아이를 만나는 순간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기이다.
갱년기 증상처럼 가끔 욱하는 감정이 올라온다.
눌러 온 내 감정이 알아봐 달라고 한다.
내 감정을 먼저 살피기 위해 상대의 감정에 동감하지 않으려는 나의 오기도 느껴진다.
공감을 넘어서 동감까지 하며 살아온 세월에 대한 강한 보호막인 것 같기도 하다.
적절한 선에서 거리를 두고 나와의 시간을 가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 우연히 느끼면 풀어진다는 오디오북을 들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양과 음의 조화에서 선과 악에 대한 두 평행선이 하나가 되면 풀어진다는 이론이다.
처음에는 들었어도 이해가 안 갔다. 무슨 소리인지.
그러다 들려오는 말이 있었다. 억누르는 마음이 있으면 눌려지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렇다.
눌려지는 마음이 컸다는 것을 인정했다.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보호받고 싶다는 마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특별하다는 마음. 이 모든 마음이 누른 마음이 있었다.
화내면 안 돼, 요구하면 안 돼, 참아야 해, 뛰어나야 해, 더 노력해야 해, 더 일해야 해.
그것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았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떠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눌려진 나의 무의식의 세계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감정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감정일기를 써 내려가다 보니 내가 마치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물을 때마다 그 어린 자아가 대답해 오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난 많이 듣는 편이었지.
누군가에게 말하기보다는 늘 듣는 편이었어.
내 안의 감정이나 생각을 말하기보다 누군가를 들어준 입장이 많았어.
이제는 말도 많이 하는 편이지만 말이야.
가만히 들어주면 요즘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엄청 꺼내 놓는다. 다들 외롭다는 것이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신나 한다. 잘 들어주니 않는다는 것이야.
나 또한 그런 경험에서 오는 해소점을 알기에 나의 이야기도 하고 들어 주었지만 요즘은 말하거나 듣는 것을 자제해. 그냥 글로 풀어내고 있어. 특히 요즘 나는 나의 감정을 적어보고 있어. 느껴지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직면하고 있어. 이 감정은 비단 지금만의 감정이 아닌것 같은데, 감정아 넌 어디서 왔니?
어린 시절 학교 갈 때도 느꼈어.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었을 때도 느꼈어. 내 주변에 아무도 없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 학교도 두려웠고 집도 그리 따뜻하지 않았어, 엄마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포근함을 느끼지는 못했어. 어린 시절 반복되는 꿈을
몇 년 꾸었잖아. 그때도 나를 포근히 안아주던 손길은 없었어.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지. 그것이 몇 년 지속되다 언제부터는 희미해지고 멈춰졌어. 지금 생각하니 그 공허함이 20대 나에게 우울감으로 다시 찾아온 것 같네. 죽고 싶고 구멍에 빠지는 듯한 느낌을 가졌지. 내 생각이 맞지?
그래, 네가 맞아. 너의 그 고립감이 어린 시절에는 눌림으로 20대에서는 우울감으로 왔어. 아무도 묻지 않았어. 왜 그런지. 그냥 이상하다고만 생각했겠지. 묻지 않으니 난 그게 방치된 느낌이었어. 보호받지 못한 느낌이었지. 나의 감정이 존중받지 못한 느낌, 다뤄지지 않았던 느낌.
그랬구나. 보호받지 못했던 그 감정이 늘 잠재되어 있었구나. 그래서 문득 올라오는 그 감정을 지금도 떠올릴 수 있어. 상황에서 느껴지는 감정보다는 아주 오래전에 묵혀두었던 그 감정들이 어린 시절의 그 감정과 연결되어 있었구나.
그래서 이유도 알 수 없는 힘듦이 있었구나. 왜 힘든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네.
이제야 알아봤구나. 너의 그 마음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거야. 잘 돌봐지지 않는 그 마음은 여러 상황을 너에게 자아냈지. 그 모습을 넌 지금 떠올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왜 그렇게 네가 행동했는지도.
왜 표현하지 못하고 요구하지 못했는지도 알 수 있을 거야. 그때 화를 냈어야 했는데. 그때 요구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한 너의 모습이 보이지
그랬구나. 지금도 그때 모습이 선하지. 많이 슬퍼했어. 이후 몸도 아펐지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잘 살아보겠다는 오기도 있었던 것 같아.
오랫동안 내 마음에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네. 이제 좀 더 명확해지는 것 같아.
그래. 넌 이제 명확히 그 실체를 알아봤어.
너의 두려움의 존재를 말이야. 그 어린아이의 실체를 보았어. 그 아이가 이제 어떻게 느껴지니?
좀 편해진 느낌이야. 그 아이가 좀 작아진 느낌이기도 하고.
알고 나니 맘이 편해줬어.
잘못된 것이 아닌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
지금의 모든 과정은 내가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마음이 들어.
그래. 그렇구나. 너와 나는 하나인 듯 싶지만
나는 너의 일부에 불과해.
하지만 이 일부를 네가 느껴줘야 네가 풀려.
날 알아봐 줘서 고마워.
나의 감정일기의 일부이다.
감정일기를 쓰며 나의 내면자아와 만나게 되니
그동안 덮어 두었던 나의 감정의 실체를 느끼게 되었다.
감정은 나의 상태를 알려주는 지표인데 그것을 무시하고 보살피지 않아 내 안에 잠재되어 있었다.
피곤, 허무함과 두려움으로 잠재된 나의 알아보지 못한 감정들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상황들로부터 어린 내가 선택했었던 이전의 모습들이 지금 나에게 무수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것은 해결되기 위해 내 앞에 자꾸 반복이 되는데 그 많은 기회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실체를 몰라서였다.
내 감정의 실체를 알아봐 주지 않으니 그 감정은
늘 나에게 흔적을 남기곤 했다.
이제 쓰기 시작한 감정일기는 한동안 계속 써 나갈 것이다.
내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나누는 이야기 속에 느껴주고 풀어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삶에서 느껴지는 나의 감정을 수용할 것이다.
그렇구나. 그렇게 느껴지는구나. 그런 마음이구나.
그 수용하는 마음이 그 감정을 보살핀다. 보살피는 마음에 그 감정은 수그러진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느끼고, 돌봐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감정 조절이라는 말 이전에 감정을 알아봐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알아 본 감정은 내가 아닌
내가 바라보는 한 부분이 된다.
감정일기는 회복 여정의 기록이다.
스스로를 알아차리고 느껴주는 시간이다.
그 느낌의 시간은 선물같다.
자신의 감정에게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렇게 느끼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바라보며
감정일기를 계속 써 내려가려 한다.
나의 신호등이 잘 작동하면 감정조절에 늘 조화가 생기리라 기대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