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가치를 알아 본 나의 삶의 변화
누군가 태워주던 셔틀에서
고등학교 때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학교까지 가던 셔틀이 있었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10시에도 집으로 가는 길에 그 셔틀을 타고 가곤 했다. 등교길에는 부족한 잠을 채웠고 늦은 밤에는 간식을 먹으며 수다 떨던 추억이 남는 봉고차였다.
스스로 길을 찾기 시작한 시간
대학을 들어가니 누군가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셔틀이 아닌 내가 스스로 찾아가야 했다. 새벽 영어강의를 듣기 위해 버스를 타고 종로까지 나가던 기억이 난다. 출근 시간과 맞물린 시간에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며
나도 도시 한복판을 걸었다. 영어강의를 받고 다시 학교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영어청취를 하며 바삐 살던 나의 모습이 보인다.
처음 스스로 떠난 여행
막연히 떠나고 싶은 기억도 난다. 지금만큼 해외여행이 쉽고 자유롭던 시대는 아니었다. 쳇바퀴처럼 돌던 나의 삶이 답답했는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해서인지 우울해하던 시절이었다. 막연히 영어공부에만 열심이었던 내가 졸업 후 첫 배낭여행을 용기 내었다. 비행기를 타고 호주로 떠났다. 여권과 배낭 하나로 떠난 여행은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목적지를 향한 첫 여행이었다. 미리 계획했지만 참 막연했다.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했다. 한 번도 집을 떠나 혼자 스스로 결정한 경험이 없었다. 누군가의 결정을 얌전히 따르던 나에게 온전히 모든 선택의 지팡이가 맡겨졌다. 20대의 나는 무리를 벗어나고 싶어 하던 충동만 마음속에 숨기고 살았던 시기였다.
속도를 맞추느라 방향을 잃었던 나
지금 돌아보니 마라톤 페이스를 누군가에 맞게 달리던 시절이었다.
같이 달리는 그룹 사람들의 속도감에 맞춰 달리던 내가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던 시기였다. 남들이 모두 그 속도대로 달리니 나도 따라 같이 뛰던 시기였다. 자신에 대해 참 알지 못했다.
공부를 해야 했고 미래를 위해 영어를 배웠으며, 자녀양육과 일을 병행하느라 늘 벅찼던 시절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길에 대한 탐색이 채 끝나기 전에 누군가의 손에 선택의 지팡이를 맡겨 준 나의 모습이 보인다. 속도감은 있었지만 그것이 정말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인지 스스로에 물어 볼 여유가 없었다.
바쁘게 일터를 향하는 직장인들의 발걸음처럼 나의 하루는 분주했고 늘 눈앞에 보이는 일들로 허덕이며 깊은 숨을 몰아쉬곤 했었다.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나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는 가. 그것이 일치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산티아고에서 찾는 일상의 느림과 단순함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과 해 내야 한다는 나의 책임감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며 생각을 달리 하기 시작했다.
걷고 쉬고 먹고 자는 단순함에서 평소보다 훨씬 일상의 아름다움을 누린 경험이었다.
새벽공기를 마시며 밝아 오는 하늘을 만날 때면 그 아름다움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들판에 쭉 펼쳐진 해바라기를 보며 감탄했다.
비를 맞으며 걷다 도착한 숙소에서 처음 만난 이들과 함께한 저녁식사도 떠오른다. 하루의 피곤함보다 따뜻한 식사와 몸을 누일 침대가 있다는 것에 더 감사한 시간이었다.
다음 날이면 또다시 자신만의 페이스대로 걸으며 하루를 맞이하는 그때의 기억 속의 나는
공원에 앉아 바게트빵에 올리브 오일을 뿌려 먹어도 행복했다.
특별하지 않았던 일상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일상 속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의 선택을 스스로 한 것이다.
아마 순례길의 경험은 평범한 속의 특별함을 알게 한 경험이기에
평생 특별히 남을 것 같다.
그리고 깨달았다. 인생의 특별함은 아주 단순한 것에서 시작함을
삶의 가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하루 일과에서 나는 나의 가치를 보았다.
빨리빨리 목적지로 가는 삶이 아닌 목적지를 향하는 발걸음에 나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를 위한 식사나 또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식사를 위해 준비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목적지를 향해 걸으면서 자연을 느끼는 그 시간이 좋았다.
하루를 돌아보며 노트에 적어 내려 가는 글 쓰는 시간이 좋았다.
조용히 혼자 걸을 때도 좋았고 새로운 이들과 친구가 되어 보낸 시간도 좋았다.
친구들을 위해 선물을 사던 시간도 좋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냥 돌아다닌 시간도 좋았다.
지금 내가 가는 길
자유, 도전, 평온함, 사랑, 전문성 그리고 자기다움
나의 세포는 이 가치 속에서 더 행복해하고 기뻐한다.
내가 원하는 삶은 이 가치들의 외침 속에서 선택하길 원하고 그 속에서 나의 영혼은 춤 춘다.
나는 내가 최고급 리조트에서의 하루보다 자연과 함께하는 하루를 원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배움의 과정과 삶의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것을 원한다.
책상 앞에 앉아 있기보다는 걷고 있을 때 더 행복함을 안다.
낯선 곳을 여행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혼자 떠나는 경험을 즐긴다는 것을 안다.
내 삶의 어느 지점이 행복한 순간이었고 언제가 힘들었는지도 안다. 그때 왜 힘들었을까도 보게 된다.
나를 좀 더 이해하게 되니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된다.
지금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매일 반복되는 행동 속에 어떤 나의 가치가 숨어 있는가
지금 나의 삶에서 회복이 필요한 감정은 무엇인가
내가 나를 잘 이해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나는 지금 이 길을 왜 가고 있는가
내가 가는 길에 꼭 필요한 배낭 속 물건은 무엇인가
지금의 나는, 순례길 이후 스페인에서 살고 싶다고 떼쓰던 내가 아니다.
여행이 좋아 일상을 버리고 여행이 직업이 되는 나도 아니다.
여전히 이전과 비슷한 일을 한다.
하지만 전에는 해보지 않은 일을 한다.
음식을 요리하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고 여행 커뮤니티 운영도 한다.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외에도 코칭식 대화를 아이들과 하기도 한다.
오로지 한가지 길만 보고 가던 내가 내 앞에 다양한 길을 열어두고 있다.
호주를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연했던 내가 이제는 여행준비라는 것을 한다.
스페인어를 배우고 가고 싶은 나라들을 탐색해 본다.
그곳의 역사와 사람들에 대해 관심 두고 알아본다.
새벽하늘을 보고 감탄하고 바게트 빵 하나에도 웃음이 넘친 그때의 경험처럼
지금의 일상도 여기에서 느끼고 있다.
나의 삶의 가치를 느끼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보석을 스스로 손가락에 끼우고 살아가는 느낌이다.
내 눈에 이뻐 보이는 보석을 낀 나의 모습을 느끼며 걸어간다.
마주치는 이들을 만나면 '올라'라고 인사하듯 나의 하루도 누군가를 만날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속에 더 밝고 행복한 나의 미소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