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기록
혼자 여행은 나에게 신선한 느낌을 준다.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수다스럽지 않고 조용히 여행을 하며 느낄 수 있기에 지금의 나에게 더 편안하다.
아마도 그동안 많이 배려했던 내가 이제는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 듯하다.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날 때는 두려움이 컸다. 특히 낯선 곳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점이 낯설고 불안했다.
익숙한 잠자리가 아닌 곳에서 혼자 지내야 하니 안전에 대한 걱정도 컸다.
누군가를 쉽게 믿지 못하는 마음과,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떠나는 여행은 그런 두려움을 조금씩 풀어내는 연습이 되었다.
주변을 더 세심히 관찰하게 되었고, 사람을 만나면 어느 정도의 믿음과 거절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지를 배워 가게했다.
혼자만의 여행은 평범한 일상을 비범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비범한 순간을 다시 평범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선택된 침묵 속에서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혼자만의 여행을 지금 선택하는 이유다.
오늘은 춘천으로 떠났다. 청춘열차를 타고 간다는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
가끔 정차해 있는 청춘열차를 보며 타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는데, 오늘 그 기차에 올라탄다니 더 기쁘다.
춘천은 내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여행했던 곳이다.
그때는 자주 여행을 다니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때
온 가족이 춘천에 와서 캠핑을 한 기억이 생생하다.
계곡에서 수영하고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즐거웠던
그 순간들은 지금도 행복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또 여러 소설과 드라마의 배경으로도 익숙한 춘천에 대한 동경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에 망설임 없이 경춘선을 선택한 것이 분명하다.
아침에 별다른 준비 없이 일어나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붐비지 않는 역에서 곧바로 경춘선 열차표를 구매했다.
매표원이 아닌 QR코드로 티켓을 확인하는 것도 새로웠고, 경춘선 열차가 2층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2층 좌석에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밖을 바라보니 춘천에 도착하기 전부터 마음은 이미 신났다.
딱 한 시간 걸리는 기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은 평화로웠고, 떠나는 여행길이 한결 여유로웠다.
춘천역에 도착해 밖으로 나오니 날씨는 흐렸다.
구름 낀 하늘 아래 걷기 시작했다.
오른쪽 차도 건너편으로는 소양강이 펼쳐지고, 그 옆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한가한 거리, 바쁘지 않은 마음 덕분에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소양강을 바라보니 마치 넓게 펼쳐진 바다 같다.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을 위한 시설이 몇 군데 보이고,
저 멀리 작은 산들이 아스라이 보인다.
춘천은 마치 착한 아이 같다. 사납지 않고 순한 아이처럼, 물결은 잔잔하고 산도 자그마하다.
우리나라 배꼽이라 불리는 춘천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정서가 느껴진다.
물과 산이 어우러진 이곳은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다듬는 힘이 있는 듯하다.
소양강을 바라보며 걷는데, 곳곳에 호국기념비들이 눈에 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 청년들의 기념비부터 월남 참전 용사의 기념비까지 이어져 있다.
이분들 덕분에 오늘의 평화를 누릴 수 있구나,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70여 년 전, 처절한 싸움이 벌어졌을 이곳에서 현재의 평화를 느끼며 말이다.
춘천을 걸으며 느낀 것은 자연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마음을 정화한다는 점이다.
잔잔한 물결, 작은 봉우리처럼 솟은 산들, 습지 위를 나는 새들, 그리고 다리 위에서 낚시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자연을 느끼며 걷는 경험은 유명 명소를 보는 감흥보다 훨씬 깊은 울림을 준다.
첫 번째 목적지인 스카이워크는 한산했다.
흐린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몇몇 일행들만 매표소 주위에 있었다.
지역 문화상품권으로 교환한 입장권을 손에 쥐고 스카이워크 입구에 섰다.
잠시 망설였다. ‘아무 생각 없이 걷자’고 마음먹었지만,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다리를 건너는 일이 쉽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생각과 싸우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굳어지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스카이워크 정면에서 보이는 물고기 분수를 마주하며 사진을 찍었다. 무서움을 들키지 않으려 시선을 돌리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절대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은 채 하늘과 주변을 바라보았다.
잠시 머문 후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얼마 전 중국에서 산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는 영상을 떠올리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음을 내디뎠지만, 그 짧은 거리에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스스로 웃음이 나면서도 웃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스카이워크를 뒤로 하고 다시 평지 위를 걷기 시작했다.
바닥을 딛고 걸을 수 있음에 감사와 즐거움을 느끼며, 다음 목적지인 국립박물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스카이워크에서 박물관까지 거리는 꽤 멀었다.
걷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지만, 그냥 걷고 싶었다.
큰 다리 위에서 저 멀리 스카이워크가 보였다.
고소공포증에 떨던 내가 멀리서 바라본 그 모습은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멋져 보였다.
두려움을 걷어내니 주변이 보였다.
주변과 중심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그려낸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겉으로는 멋져 보이지만 가까이서는 두려움과 온갖 생각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위에서 길게 낚시대를 드리운 아저씨를 보았다. 상점과 아파트가 모여있는 춘천 동네를 지나쳤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발걸음마다 춘천의 공기와 바람이 스며들었다.
나의 의지대로 걷고 싶은 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여행의 숨은 묘미임을 새삼 느꼈다.
한참 걷다가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의 안내를 받으며 춘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드디어 국립박물관에 도착했다.
지난 전라도 광주와 나주의 박물관 여행이 너무 좋아 춘천에서도 박물관에 들렀다.
강원대학교 주변에 위치한 이곳은 한적하면서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현대적인 박물관 건축과 함께 우리나라 유적들을 둘러보며 잠시 시간 여행을 떠났다.
같은 공간이지만 수백 년 전 이곳에 살았던 이들의 체취와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물건과 흔적을 통해 그들의 삶을 떠올리는 시간이었다.
훗날 후세들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느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혼자 떠난 춘천 여행은 내게 새로운 시선과 마음의 평화를 선물해 주었다.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고요한 자연 속에서 만난 작은 행복들.
그 모든 것이 여행의 진짜 가치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