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보다는 서른이 더 가까운 나이. 지금 내 마음의 방에는 새로운 아이돌 그룹이 1년 넘도록 입주해있다. 학창 시절 수많은 아이돌 그룹을 스쳐 보내며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아이돌 덕질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이건 참 오만한 생각이었다. 비주얼, 노래, 춤 그리고 그들의 세계관과 멤버 사이의 관계성 그 모든 것이 이렇게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줄 누가 알았을까. 처음 이 그룹을 봤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좋아하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덕질 인생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다.
오랜만에 덕질을 하면서 옛날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SNS를 통해 같은 그룹을 좋아하는 덕질 메이트가 생겼다는 것이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기에 덕질할 때 전혀 외롭지 않다. 그래서인지 덕질을 하지 않는 친구들과 얘기할 때는 덕질 관련 이야기를 일부러 먼저 꺼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심을 주체하지 못한 채 의도치 않은 덕밍 아웃을 하게 되는 상황이 종종 생기는데 이때 친구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그룹인데? 누가 네 최애야?
새로운 덕질 대상에 대해 순수하게 궁금해하는 반응으로, 어떤 그룹인지 알려주면 대부분 관심을 보인다. 그럴 땐 최근 발매한 타이틀곡을 들려주기도 하고 뮤비, 무대 영상도 같이 보면서 소소한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너 아직도 연예인 좋아해...?
그 나이에 아직도 아이돌 덕질을 하냐고 되묻는 질문. 아주 미묘하지만, 어딘가 껄끄러운 뉘앙스. 특히 ‘그 나이에도’라는 부분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아이돌을 좋아할 수 있는 연령대가 따로 있나? 10대만 아이돌을 좋아할 수 있나? 나한텐 그저 아직도 철없다는 듯한 말로 들릴 뿐이다.
유독 아이돌 가수를 좋아한다고 할 때 이런 반응이 많은 것 같다. 보통 어떤 배우나 어떤 발라드 가수 혹은 스포츠팀을 덕질한다고 했을 때는 ‘그 나이에도’ 그 대상을 좋아하냐고 되묻지 않는다. 다 큰 어른은 K팝과 아이돌을 좋아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건지. 이상한 편견이라도 있는 듯 아이돌 덕밍 아웃을 할 때면 항상 나이 얘기가 뒤따른다.
‘아니, 도대체 덕질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한창 미스터 트롯 열풍이 불었을 때 친구로부터 친구 어머님이 임영웅 씨 덕질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시구나, 하는 내 반응에 친구는 엄마가 그냥 노래를 듣고 무대를 열심히 찾아보는 수준이 아니라고 했다. 임영웅 씨를 응원하는 색깔인 파란색 옷을 입으시고 팬들과 만나는 정기모임까지 나가시며 적극적인 덕질 활동을 하신다고 하셨다. 임영웅 씨가 광고하는 커피 두 박스씩이나 사 오는 바람에 친구는 몇 달간 그 브랜드의 커피만 마신적도 있다고 했다.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데 난 친구 어머님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와 연령대만 다를 뿐, 내가 덕질하는 방식과 똑같이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어머님의 덕질 에피소드를 단편적으로 전해 듣기만 했는데도 어머님이 느꼈을 행복이 간접적으로 느껴져서 기분이 괜히 좋았다.
이렇듯 덕질하는 데에 나이는 아무 상관이 없다. 덕질에 있어서는 무언가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마음, 그 열정이 가져다주는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타인의 이해를 바라며 덕질하는 사람은 없다. 덕질은 지극히 개인적인 만족감과 사랑으로도 충분히 지속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각자 자신이 덕질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푹 빠져있는 취미나 사랑하는 대상이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은가. 덕질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좋아하는 정도가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 더 깊을 뿐. 그리고 그것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그뿐이다. 나이 하나로 순수한 마음을 재단해서는 안 되며 하물며 그럴 수 없다. 그 누가 뭐라고 한들 나처럼 덕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