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 깜짝이야."
아이디와 비번을 찾아 들어간 미니홈피. 사진첩을 열어 보며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맙소사. 잊고 지냈던 내 과거가 용케 살아 있었다. 꽤나 많은 사진을 올려둔 덕분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 시절을 열심히 뒤적거렸다.
MZ에게 틱톡이 있다면 2000년대에 대학에 다녔던 80년생에게는 싸이월드('싸이'라고 불렀습죠)가 있었다. 모임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친해지고 나면 자연스레 '싸이 아이디가 뭐야?' 묻고는 일촌신청을 하던 그 시절.
지금 내 상태를 표현하기엔 미니홈피 대문 만한 게 없었다. 친구의 미니홈피 미니미가 등 돌리고 있다면 필시 무언가 심경이 복잡하다는 뜻이었다. 알바가 힘들었다거나 남친과 헤어졌다거나.
파도를 타고 넘어오든 일촌이 되어 방문하든 불특정 다수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기에 미니룸을 꾸미는 일, 배경음악을 까는 일 또한 관심사였다. 그 미니룸을 꾸미려고 도토리를 많이도 샀다.
도토리 하면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학교에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종종 외부 연사 초청 강연을 열었는데 가끔 회사 임원분들이 오기도 했다. 그때 싸이월드를 운영하는 회사에서도 한번 왔던 것 같다. 강의 후 참석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백 개의 도토리를 뿌리고 갔다는 어느 상무님의 훈훈한 일화가 아직도 기억난다.
이상하게도 중간고사 기간 도서관에서 하는 싸이는 더 즐거웠다. 공부하다 머리를 식힌다며 혹은 잠깐 확인할 메일이 있다며 컴퓨터에 앉으면 참새방앗간처럼 일단 싸이에 들어갔다. 대학교 때 인기 있는 언니, 오빠들의 미니홈피를 찾아 사진을 구경하고 근황을 알면 왠지 신기했다. 잘 생긴 친구 오빠의 미니홈피도 찾아가며 파도에 파도를 타다 보면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다모임에서 주고받은 쪽지를 끝으로 소식이 없던 초등 남자 동창은 그대로 잘 커서 훈남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따지고 보면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첫 번째 공간이 바로 싸이월드였다.
친한 무리들끼리 클럽을 만들어 요즘 지내는 근황이랄지 떠오르는 생각 등을 종종 올리며 안부를 묻곤 했다.
사진첩을 다 보는데 걸린 시간 만큼 이십대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미화되거나 잊힌 기억들이 실사로 등장하는 판에 귀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이랬나 싶기도 했다.
'그때 내가 저 옷을 입지 말았어야 했는데.'
'쟤랑 저런 사진을 찍었다니.'
'저건 쫌 괜찮았네.'
'저 표정.. 정말 나야?'
즐거웠던 추억이 있는 만큼 잊고 싶은, 그래서 잊었던 기억도 있는 법. 무심한 싸이월드는 지나간 세월을 고스란히 돌려주고 있었다.
삽 십 년 지기 친구에게 사진을 보냈다.
"내 싸이에 남아 있는 너야."
한참을 지나 답이 왔다.
"설마."